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반정부 시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히잡 규정 완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일각에선 하메네이가 히잡 강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끝내 말하지 않아 시위 종식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란 국영 IRNA통신은 하메네이가 4일(현지시간) ‘어머니, 모범 여성’을 대상으로 1시간 동안 진행한 연설에서 “히잡은 종교적이며 어길 수 없는 필수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히잡을 완전하게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종교를 벗어나거나 이슬람혁명에 반한다고 여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메네이는 이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는 여성들 또한 우리의 아내이자 딸”이라며 “이들도 종교적·혁명적 의식에 참여한다”고 했다.
중동매체 알모니터는 하메네이가 머리카락을 완전히 가리지 않는 히잡을 두고는 ‘헐렁한 히잡’이라고 처음 칭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메네이는 “헐렁한 히잡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헐렁한 히잡을 쓴 개인을 종교와 혁명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게 해선 안 된다”며 “우리 모두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알모니터는 ‘헐렁한 히잡’이라는 단어를 이란 언론이 조만간 대중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하메네이가 처음으로 화해의 메시지를 표명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설을 두고 스탠퍼드대 이란연구 책임자 아바스 밀라니 교수는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행법을 수정하겠다는 약속도 아닌 모호한 것”이라며 “하지만 히잡 이슈가 얼마나 강력한지 인정하는 발언이었다”고 평했다. 또 “(하메네이는) 히잡 착용 의무에 대한 여성들의 거부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하메네이의 발언을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란 반체제 매체인 이란인터내셔널은 “그는 히잡에 대한 여성의 반란을 인정하지 않았을뿐더러 현재의 시위 물결에 대한 정권의 선전을 반복했다”며 “여성과 히잡에 대해 얘기했지만 이란 사회에서 히잡을 강제하는 것에 대한 최종의견은 밝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알모니터도 “이번 연설은 반정부 시위를 종식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란의 히잡 관련법 또한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많은 이란 관찰자들은 최근 몇 달 동안 국가의 히잡법 집행이 느슨했다고 말하지만 정책의 변화라기보다 전술적 후퇴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이란 반정부 시위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끌려간 마흐사 아미니(22)가 의문사한 지난해 9월 16일부터 시작됐다.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지난 3일까지 시위대 516명(추정)이 사망했으며 이 중 최소 70명이 미성년자라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에서 구금된 이들의 정확한 숫자를 제공하지 않고 있지만, HRANA는 학생 687명을 포함해 최소 1만9200명의 시위대가 체포됐다고 밝혔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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