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이기영(31)이 검찰 송치 전 취재진 앞에서도 얼굴을 꽁꽁 감췄다. 현재 모습과 차이가 있는 과거 운전면허증 사진만 공개된 데다 송치 과정에서 이씨의 얼굴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으면서 신상 공개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이씨에게 강도살인 및 살인, 사체은닉, 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4일 검찰로 송치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9시쯤 동부서에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취재진 앞에 섰다.
포토라인 앞에 선 이씨는 직접적인 노출을 꺼린 듯 마스크를 쓰고 패딩 점퍼 후드를 눌러써 얼굴을 가린 모습이었다. 그는 이송되는 내내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고개도 푹 숙였다. 당초 경찰은 이씨의 얼굴이 공개될 수 있도록 마스크 미착용을 권고했지만 이씨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자신의 범행을 가족이 알게 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마스크를 벗어 달라’ ‘얼굴을 왜 가렸느냐’는 취재진의 요청이나 ‘시신 유기 장소 진술을 왜 번복했느냐’는 등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호송차에 올라탔다. 앞서 그는 지난해 12월 2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당시에도 마스크를 쓰고 패딩 모자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린 바 있다.
이씨의 얼굴이 끝내 제대로 공개되지 않자 온라인상에는 머그샷 공개 관련 규정과 법령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이미 신상 공개 결정이 난 피의자를 검찰 송치 과정에까지 얼굴을 가리도록 놔두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 과정에서 일부 누리꾼은 이씨의 진짜 얼굴을 찾겠다며 SNS 등에서 ‘신상털이’에 나서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2월 29일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이씨의 나이와 얼굴 사진을 공개했다. 하지만 촬영 시점이 확인되지 않은 운전면허증 사진이 공개되며 신상정보 공개의 효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정된 신분증 사진이 실제 모습과 달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나 범죄 예방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현재 법무부와 행정안전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결정되더라도 현재 모습이 담긴 ‘머그샷’은 피의자가 거부하면 경찰이 공개할 수 없다. 이씨의 신분증 증명사진이 공개된 이유도 그래서다. 신상공개가 돼도 이씨처럼 포토라인에 섰을 때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한다면 이를 제지할 법적 근거는 없다.
법무부는 머그샷 촬영과 관련한 경찰의 유권 해석에 2019년 ‘현행법상 강력범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후 행정안전부가 2020년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사진 공개는 법적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면서 지금과 같은 방식이 자리 잡았다. 최근 신상이 공개된 강력 범죄자 중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26)의 경우만 ‘머그샷’이 공개됐다.
이씨로 인해 신상공개 제도 실효성 논란이 재점화되자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3일 특정강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과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살인, 강간 등을 저지른 흉악범의 신상은 최근 30일 이내에 촬영한 얼굴 사진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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