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서울시립남부노인전문요양원 원장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에 붙은 ‘낙상 제로’ ‘욕창 제로’ ‘학대 제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휴머니튜트 케어기술 5가지’란 제목과 함께 ‘노크하기’ ‘눈 마주치기’ ‘말을 많이 하기’ ‘만지고 안아주기’ ‘스스로 하게 하기’라고 적힌 포스터로 이내 시선이 옮겨졌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한철수(64) 원장은 “무엇보다 어르신 사고 예방에 초점을 둔 지침이다”며 “직원들이 위험요소를 미리 파악하고 공유해 사고를 예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휴머니튜트 케어기술 중 ‘스스로 하게 하기’의 경우 모든 걸 다 해줘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신체 기능을 최대한 유지해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11월 발표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의 19.8%가 독거가구이며, 부부 가구는 58.4%에 이른다. 또 노인의 13.5%는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돌봄을 받는 노인의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 보고서는 노인 관련 정책의 주요 과제로 사회적 고립 위험이 큰 홀몸 노인이나 노인 부부를 상대로 한 사회의 집중적인 관심과 지원을 꼽았다. 이는 고령화 사회 속 교회도 필요한 역할 감당에 나서야 함을 시사한다.
이날 만난 한 원장은 초고령화 시대로 가는 이 시점에 정작 한국교회의 관심이 다음세대에만 맞춰져 있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한 원장은 “한국교회에 다음세대를 유치하려는 프로그램은 많지만, 정작 늙어가는 성도를 보살피는 프로그램은 얼마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다음세대 유치만큼 중요한 것은 교회에 평생 헌신한 신자들의 노후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며 “교회에 평생 헌신하다 노인이 된 부모 세대를 교회가 잘 돌봐드리는 모습을 젊은 세대가 본다면, 교회에 희망을 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서울시립남부노인전문요양원은 1988년 여의도순복음교회(당시 담임 조용기 목사)가 사회복지 향상을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의 정신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설립한 ‘엘림복지타운’을 전신으로 한다. 현재는 사회복지법인 굿피플우리복지재단(이사장 이영훈 목사)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기초수급권자 우선 입소시설로 종교 여부와 상관없이 장기요양등급 1~5등급(시설급여)으로 인정받은 자라면 입소할 수 있다. 2010년 서울시 노인학대 보호 전문기관으로 지정됐으며, 2015년 장기요양기관 평가에서 최우수 기관(A등급)으로 선정됐다.
서울시립남부노인전문요양원은 수리산 바로 밑자락에 자리 잡아 노인들이 답답한 병실에만 머물며 요양하기보다는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지친 심신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코로나19가 유행한 최근 3년 동안 이곳 입소 노인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텃밭 가꾸기 등 충분한 야외활동이 가능했다.
지난 12월부터는 요양원 내 치매 전담 시설도 새롭게 증축했다. 점점 느는 치매 노인의 수요에 맞춰 쾌적한 공간에서 전문가의 돌봄 아래 양질의 치료 프로그램 운용이 가능해졌다.
보통 자녀들로서는 부모의 요양원 입소를 마치 ‘사지(死地)’로 내모는 것과 같아 죄책감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원장은 “요양원은 죽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소망, 꿈을 갖는 곳이 돼야 한다”며 “평생 예수를 위한 삶을 살았던 신자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해주는 곳으로 만들어주려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그 필요성과 중요성이 느는 노인 복지에 있어서 교회가 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필요한 한 축을 담당해야 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이기도 한 한 원장의 요양원 운영 철학도 기독교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한 원장은 “어르신들이 여생을 좀 더 자기 주도적으로 살도록, 또 그들의 존엄성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요양원을 운영하려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어르신 돌봄의 세 축인 요양원 운영진과 종사자, 보호자 가족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양원 종사자가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 그 행복이 요양원 입소자들에게 전해지는 곳, 또 보호자 가족들은 시설 프로그램과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어르신들을 어떻게 돌봐드릴지 함께 토의하고 대화 나누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마지막으로 한 원장은 “하루를 더 살더라도 어르신들이 여기에서 생활이 ‘행복했었고, 감사했다’는 마음을 갖고 천국에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그런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섬기려 한다”고 말했다.
군포(경기)=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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