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러 성향 국가 정상에게 반지를 선물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의 악역 사우론에 빗대는 등의 조롱이 쏟아졌다.
AFP통신은 28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옛 소련 국가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 지도자 8명에게 금반지를 나눠줬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6∼27일 이틀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8개국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이들에게 금반지를 선물했다. 마지막 9번째 반지는 푸틴 대통령 본인이 간직했다. 반지에는 ‘러시아’ ‘해피 뉴 이어 2023’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CIS는 친러 성향 협력체로 대표된다. 과거 소련을 구성했던 15개국 중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을 제외하고 구성돼 있다.
푸틴 대통령에게 반지를 선물받은 정상 중 곧장 반지를 낀 모습이 포착된 인물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1994년부터 지금까지 29년간 ‘철권통치’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 푸틴의 일흔 번째 생일 당시 자국산 트랙터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행보를 두고 정치 평론가들은 ‘반지의 제왕’ 속 절대 악역인 사우론과 비교하며 노골적인 조롱을 쏟아냈다. 사우론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 왕들에게 자신의 탐욕이 담긴 반지 9개를 나눠주고 노예로 삼았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 예카테리나 슐만은 푸틴 대통령이 반지를 나눠준 것이 ‘반지의 제왕’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반지가 푸틴 대통령의 헛된 꿈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러시아 정치 평론가 율리아 라티니나는 개전 후 국제적으로 고립된 러시아의 현실을 지적한 뒤 “푸틴 대통령이 힘이 아닌 ‘무기력의 반지’를 나눠줬다”고 비꼬았다. 그는 “이 반지를 끼는 지도자의 국가는 미치광이가 다스리는 어둠 속으로 떨어질 것”이라면서 “푸틴 대통령은 이 반지를 혼자서만 끼고 다닐 것이다.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하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부터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올렉시 곤차렌코 우크라이나 의원은 SNS에 올린 글에서 푸틴 대통령을 ‘21세기 히틀러’로 규정한 뒤 “이제는 반지의 제왕을 연기하기로 한 모양”이라고 냉소했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이후 러시아를 ‘반지의 제왕’ 속 사우론의 왕국 ‘모르도르’(어둠의 땅)로, 러시아군을 사우론의 군대 ‘오크’라고 불러왔다.
다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반지는 단순한 새해 선물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9번째 반지를 끼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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