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 그룹 ‘아이콘’의 전 멤버 비아이(본명 김한빈)의 마약 투약 혐의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제보자를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제보자이자 협박 피해자인 아이돌 연습생 출신 한서희씨의 피해 진술이 시간이 지날수록 첨언되고 자세해진 상황을 들어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조병구)는 2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표는 2016년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한씨가 YG 소속 가수인 비아이의 마약 구매 및 투약 사실을 진술하자 수사를 무마하려 한씨를 회유하고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양 전 대표가 협박과 함께 진술을 번복하면 사례비를 주겠다고 했다는 게 한씨 입장이었다. 비아이는 한씨에게서 LSD·대마초 등 마약을 구매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양 전 대표가 진술 번복을 요구하며 한씨에게 했다는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는 발언이 실제 존재했는지 여부였다. 보복협박과 강요죄가 성립되려면 피해자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해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해당 발언을 해악의 고지로 봤고, 발언의 실재 여부가 유무죄 판단을 가르는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별도 녹음 파일 없이 한씨 진술에 기반한 해당 발언에 대해 신빙성이 낮다고 봤다. 한씨는 2019년 6월 이 사건을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제보했고 이후 경찰에서 9번, 검찰에서 5번 조사를 받았다. 그는 2019년 9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는 양 전 대표가 “어차피 연예계에 있을 것 같은데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고 진술했는데, 같은 해 10월에는 “화류계나 연예계에 계속 있을 것 같은데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며 진술을 보강했다.
한씨는 앞서 2017년 8월 양 전 대표가 “사례를 줄 테니 진술을 번복해라. 연예계에 있을 애 같은데 너 못 뜨게 할 수 있다”고 했다고 언론에 제보했었는데, 재판부는 “2년이 지나고 공익신고 이후부터는 표현이 자극적으로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경험칙상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기 마련인데 한씨는 조사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구체적이고 상세한 진술을 하고 있다”며 실제 해악의 고지가 있었는지 신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이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피해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해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암시를 줘서 진술을 왜곡·강화시킨 게 아닌지 매우 의심스러운 정황도 있다”고 했다.
한씨가 진술 번복의 대가로 5억원 요구 발언을 하는 등 대가를 요구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경찰 조사에서 진술 번복을 강요받아 의사결정의 자유를 억압당했다고 했던 2016년에도 YG의 다른 그룹인 ‘빅뱅’의 탑(본명 최승현)에게 마약을 제공한 점 등도 양 전 대표 무죄 판단의 근거로 거론됐다. 재판부는 “한씨가 양 전 대표에게 의사결정의 자유가 침해될 정도로 공포심을 느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도 양 전 대표가 소속 가수의 형사 사건을 무마하고자 진술 번복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수사 등 형사사법 기능을 침해하는 행위로 비난받을 일이 맞다”고 질타했다. 다만 제출 증거만으로는 양 전 대표가 한씨를 진술 번복하도록 설득하거나 심리적으로 압박한 수준을 넘어 협박으로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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