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암산 자락에 자리 잡은 현대종교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한국 이단 연구계의 선구자 고(故) 탁명환 소장의 사진과 함께 그가 생전 현장을 누비며 사용하던, 손때가 고스란히 묻은 수첩과 사진기 등의 유품이 전시된 유리 장이다.
지난 2일 이곳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사무실에서 만난 탁지원(55) 현대종교 소장은 유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부친께선 절대 이 사역을 물려주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사역을 이어온 지도 벌써 1만500여일, 30년 가까이 돼간다”고 말했다.
유품을 뒤로하고 돌아서서 어두운 공간 한쪽으로 들어가니 마치 도서관처럼 각종 책과 서류철들이 정리된 서고가 늘어서 있었다. 탁명환 소장이 활동하던 1960~70년대부터 수집된 이단 자료의 총체로 한국교회 이단사의 정수가 담긴 수장고다.

탁명환 소장의 둘째 아들인 탁 소장과 첫째 탁지일 현대종교 이사장, 셋째 탁지웅 일본성공회 신부는 이 수장고의 주인이 아닌 관리자란 생각으로 국내 이단 역사를 켜켜이 쌓아가며 부친의 사역을 잇고 있었다.
탁 소장은 최근 책 ‘탁 소장님! 여기가 이단인가요?’를 펴냈다. 1994년 부친이 이단 신도의 습격으로 소천한 뒤 물려받은 사역의 지난 1막을 정리했다. 어느덧 부친이 작고한 나이에 이르자 맏형 탁 이사장을 중심으로 삼 형제가 연구하고 기록해온 이단 자료를 한국교회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탁명환 소장이 치열하게 이단에 대처했던 분투의 기록도 생생하게 담았다.
일례로 책 뒤에 담긴 탁 소장이 부친과 나눴을 법한 짧은 대화가 인상 깊다. 이단 대처 사역과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아들에게 탁명환 소장은 “영적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공격에는 조금만 힘을 쓰고, 대부분의 힘은 한국교회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의 공감을 위해 써야 한단다”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탁 소장의 기억에도 부친은 몸을 뉠 곳만 있으면 잠에 곯아떨어질 정도로 늘 전국 팔도를 바삐 다녔지만, 그 와중에도 한국교회와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만큼은 모든 걸 내던지던 사람이었다.
“부친께서 전라도의 한 장애인을 섬기는 작은교회에 강의 차 내려가셨을 때였어요. 교회에 차가 없어서 불편하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자신의 차를 내어주고는 본인은 버스를 타고 귀가하셨던 일이 기억에 남네요.”
약자나 이단 피해자들의 도움 요청이라면 늘 마다하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나갔던 탁명환 소장이기에 탁 소장이 사역현장에서 내미는 건 칼이 아니라 따뜻한 온기다. 오로지 성경을 중심으로 객관적으로 이단을 연구·평가하도록, 또 사역의 실수와 한계를 극복하고자, 직원들과 매일 밤낮으로 성경·기도 모임도 한다. 하지만 때론 탁 소장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이단의 공격보다 한국교회의 외면이다.
“2000년 6월 부산에서 연 집회가 10개 이단이 연합한 신도 300명의 방해로 무산됐을 때였어요. 3000여명의 한국교회 성도는 사분오열 다 떠나고, 행사를 섬기던 권사성가대분들과 청년 스태프 몇몇 만이 강사로 나선 절 보호해주셨어요. 겨우 그들에게 짧은 강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얼마나 실망했던지 내내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 소장이 여전히 사역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뜻하지 못한 한국교회 곳곳에서 보내오는 격려와 응원의 손길이다.
“중·고등부 집회에 가면 강의 후 아이들이 찾아와 ‘이단과의 재판에 하나님께서 재판장이 되어달라고 기도해주겠다’는 얘기를 듣거나, ‘나중에 변호사가 돼서 돕겠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큰 위로가 됩니다. 다음세대를 위하는 마음은 제가 이 사역을 끝까지 놓지 못하는 이유죠.”

요즘 이단들의 근황을 묻는 말에 탁 소장은 미소를 거두고 말했다.
“이단들은 발 빠르게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대면과 비대면 포교를 혼합한 ‘하이브리드’ 전략이죠. 미디어 중심인 다음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한국교회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탁 소장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일상에서 늘 이단에 경각심을 갖는 것이 이단 대처의 첫걸음이라 말한다.
“유튜브를 보거나 장을 볼 때, 동아리에 가입할 때 등등 일상 속 선택의 순간마다 이단인지 아닌지 살펴본다면 이단으로 인해 겪는 아픔은 사라지리라 봅니다.”
남양주=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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