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직장 동료에 의한 ‘스토킹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 직장 내 스토킹 피해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직장 내 스토킹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고, 업무적으로 계속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소속 회사의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는 20대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직장 내 스토킹에 시달렸다. 타부서의 40대 팀장에게 명함을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보고 싶다”는 문자메시지가 계속됐다. 거절 의사를 분명히 전달해도 막무가내였다. 내선 번호나 사내 메신저를 통해 “업무상 할 말이 있다”며 불러낸 적도 있다.
스토킹 강도가 심해져 올해 초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이 시작된 뒤 직속 부서장에게 피해를 알렸지만, 조치는 가해자에게 “다신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는 정도에 그쳤다. A씨는 19일 “신당역 사건이 남 일 같지 않다”며 “내가 서 있는 모든 공간에서 위협을 느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직장 내 스토킹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특수성 탓에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1 여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 10명 중 1명 이상(13.5%)이 직장 동료(직장이나 학교 구성원)로부터 피해를 입었다.
스토킹 피해자 대부분은 ‘가해자를 안 마주치려 피해 다녔다’(44.5%)고 답했지만, 직장 내 스토킹 피해자들은 이마저도 어려웠다. 한 피해자는 “가해자가 휴게실까지 쫓아와 ‘왜 나를 피하냐, 답장 꼭 하라’며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장면이 CCTV에 찍혔지만 사측은 가해자에게 구두경고만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개인정보가 회사 내부에서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어 추가 피해로 이어지기도 쉽다. 또 다른 피해자는 “가해자가 사내 내부망으로 자취방 주소, 비상연락망으로 등록해놨던 가족 신상정보까지 모두 알고 있어 무서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직장 내 스토킹은 ‘업무상 소통’ 등을 빙자하는 경우도 많아 사측의 개입도 쉽지 않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공동대표는 “동료 사이 친밀감, 업무상 소통 등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사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부담스러워 한다”고 전했다.
회사에서 ‘스토킹 범죄 관련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령 경찰이 가해자에게 잠정조치 2호를 발동하면 피해자 집·직장 등 100m 이내에 접근할 수 없는데, 직장 내 분리를 위해선 사측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에게 접근금지를 통지할 순 있지만 사측에 직원들을 분리해달라고 강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 내 스토킹은 고용, 업무환경 등 문제가 얽혀 있다 보니 개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며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지 양한주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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