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약촌오거리 살인강도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자신을 수사했던 경찰관의 사과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다. 이 사건의 목격자였던 최모씨가 범인 누명을 쓰고 10년 동안 옥살이를 해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은 이 사건은 영화 ‘재심’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서울고법 민사20-3부(부장판사 박선영 김용하 홍지영)는 지난 22일 최씨와 전 익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이모씨가 조정에 합의했다고 24일 밝혔다. 조정은 법원이 판결보다 원·피고 간 타협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할 때 유도하는 절차다. 조정이 성립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최씨를 수사했던 경찰관 이씨는 “최씨가 진범이 아닐 가능성을 세심히 살피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관여자 중 한 명으로서 최씨와 그의 가족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씨는 사건 수사 당시 피해자 최씨를 불법 감금하고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최씨 측은 이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최씨 측 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이씨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고 뒤늦은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도 있지만, 그가 사과를 계기로 피해자들의 고통에 진지하게 공감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도 민·형사 소송 종결을 계기로 사건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며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법원 조정에 따라 마지막 피고였던 이씨에 대한 소송이 취하되면서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을 둘러싼 민사 소송은 약 5년 만에 마무리됐다. 사건 발생으로부터는 22년 만이다.
최씨는 16세였던 2000년 전북 익산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택시 운전기사 유모(당시 42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0년을 확정받고 복역했다.

경찰은 2003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에 따라 진범 김모씨를 긴급체포한 뒤 자백을 받고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기각됐다. 당시 담당 검사는 진범인 김씨를 조사하고도 2006년 무혐의 처분했다. 김씨는 2017년 4월 강도살인 혐의로 뒤늦게 재판에 넘겨져 2018년 3월 징역 15년형이 확정됐다.
만기 출소한 최씨는 2013년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했다며 재심을 청구한 끝에 2016년 11월 재심 무죄를 받고서야 살인범의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최씨와 가족은 이에 국가와 이씨, 김 검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지난해 1월 판결에서 “경찰은 영장 없이 최씨를 불법 구금·폭행해 자백을 받아냈다”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도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위법 수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을 향해선 “경찰에서 진범의 자백 진술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는데도 증거를 면밀히 파악하지 않고 경찰의 불기소 의견서만 믿었다. 검사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국가가 최씨에게 13억원을, 그의 어머니와 동생에게 총 3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당시 경찰관과 검사는 국가와 공동해 전체 배상금 가운데 20%를 부담하도록 했다. 정부는 항소를 포기하고 최씨와 그 가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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