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교회의 유엔이라 불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1차 총회가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열린다. 2013년 10차 부산총회에 이어 9년 만이다. 총회에는 140여개국에서 5000여명의 총대가 참가해 전 세계와 교회가 당면한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불평등, 디지털 혁명, 평화와 정의 문제 등을 주제로 선교적 방향을 모색한다. 하지만 WCC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운동의 대표적 기구라는 점에서 적잖은 오해와 의심을 받아오기도 했다. WCC는 과연 공산주의를 지향하고 하나의 단일 교회를 만들려 할까. 총회에 앞서 WCC를 톺아본다.
△단일교회를 만든다고?
오랜 논란이다. WCC가 ‘세계 단일 교회’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는 오해는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가 통합과 합동으로 나뉘었던 명분이기도 했다. 사실과 다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WCC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지향하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의 독립성을 존중해 왔다. 창립 2년 뒤인 1950년 WCC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연 중앙위원회에서 이미 “WCC는 단일교회도 아니고 결코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고 규정했다.
다양한 모습의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지체들이다. WCC는 강령 8항에서 이를 분명히 했다. “WCC 회원교회는 서로의 영적 관계 속으로 들어가 서로를 배우고 도우며 그리스도의 몸을 굳건히 세우고 교회의 삶이 갱신되도록 한다”고 밝혔다.
WCC가 지향하는 건 ‘가시적 일치’다. 이는 정통 기독론을 규정한 451년 칼케돈 신조와 381년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지향하는 정통 삼위일체론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들(정교회, 로마가톨릭, 개혁교회)이 ①사도적 신앙의 공동이해 ②성례전의 상호인정 등 교회의 협의회적 친교를 추구하는 걸 말한다. 쉽게 말해 성찬식을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치를 이루자는 의미다.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 생겨난 교회는 유럽에서 부흥한 뒤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뿌리내리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까지 닿았다. 한국에서 생긴 종교가 아니다. 세계의 교회들과 교류해야 하는 이유다. 우린 혼자도 아니고 유일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WCC의 일치는 결국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거룩한 교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그 보편적 교회성을 온전하게 성취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한다?
WCC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지향한다. 전 세계 교회들이 지닌 교회들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WCC에서 3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잇는 매우 보수적인 교회다. 반면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하는 교회들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50개가 넘는 회원교회들이 각자 지닌 다양성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게 WCC에서는 상식과도 같다. 따라서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한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 다만 다양한 모습의 교회가 어울리는 모습 자체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비칠 수는 있다. 결론은 다양성이 있을 뿐 하나의 길을 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종 전도를 금지한다는데
선교는 WCC의 정체성이다. 191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선교사 대회에 뿌리를 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11년 WCC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로마 가톨릭교회와 함께 ‘선교에 대한 행동강령’에 합의했다. ‘교회의 본질이 선교’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에는 “다종교 사회 속에서 복음을 전할 때는 타인에 대해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되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도를 할 때 ‘속임수’나 ‘물질 공세’ ‘강압적 수단’ 등 부적절할 방법을 사용하는 건 복음을 배반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양 훔치기 전도’를 지양하라는 지적이었다. 전도와 경품을 연결하는 건 복음을 상품화하는 행위라는 게 WCC의 선교 입장 중 하나다. 이런 가이드 라인이 개종 전도를 원천 봉쇄 하는 것으로 여겨진 셈이다.
△‘선교 유예’의 진실은?
선교 유예는 ‘선교 모라토리엄’으로 통용된다. 마치 WCC가 선교를 포기했단 거로 비친다. 하지만 선교 유예는 WCC가 아니라 케냐의 동아프리카 장로교회 지도자 존 가투 목사의 선언이었다. 가투 목사는 “오랜 식민지 경험을 한 데다 선교사들에게 의지했던 아프리카 교회가 독립과 자립성을 길러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 자금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선교 유예를 선포했다. 일정 기간 동안 서구 선교사들의 지원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었다.
WCC는 1982년에 발표한 선교선언문 ‘선교와 전도-에큐메니컬 확언’에서 “선교 유예란 있을 수 없지만, 더 좋은 선교를 위한 선교 유예는 언제든 가능하며 어떤 때는 필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결국, 선교 유예란 선교 중단이 아니라 더 나은 선교를 위한 정책적 결정인 셈이다.
자생적 선교 방식은 이미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채택된 바 있다. 역사상 드문 성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자치’ ‘자립’ ‘자전’을 골자로 하는 ‘네비우스 선교 정책’을 따랐다.

△WCC가 공산주의 집단이라는데
‘정체성은 용공’이며 ‘공산 게릴라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오해는 WCC 주변에 오래도록 드리운 그림자다. 러시아 정교회를 위시한 공산권 국가 교회가 가입해 있기 때문에 생긴 논란이다. 회원이 전체를 대변할 수 없는 WCC의 특성상 공산권 국가 교회가 가입한 사실만 놓고 WCC가 용공이라고 지적하는 건 억측이다. 회원 중 그렇지 않은 국가 교회가 훨씬 많은 걸 고려하면 이런 비난은 무리수다.
WCC도 특정 정치 이념에 경도되는 걸 창립 때부터 경계했다. 초창기 WCC는 ‘교회의 연합체’를 지향하면서 “어떤 인간의 문명이나 이념도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면서 “복음은 인간의 이념을 우선하며 기독교인은 어떤 체제 속에 있더라도 책임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산 게릴라 단체에 자금을 댔다는 건 미국의 극우 반공주의자 칼 매킨타이어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가 이끈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는 줄곧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백인 정권을 두둔했다.
WCC는 1968년 스웨덴 웁살라 총회에서 열린 4차 총회에서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결의했다. 당시에도 인종차별 분위기는 팽배해 있었다. 웁살라 총회에서 주제 연설을 할 예정이던 미국의 마틴 루서 킹 목사도 총회 직전 암살당한 일도 있었다. 그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부를 대변하던 출판문인 ‘아프리카 인스티튜트 불레틴’에 실린 ‘테러 후원’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유엔을 비롯해 WCC와 영국교회협의회, 미국장로교까지 테러 후원 세력으로 분류했다. 결국 인종차별 정책을 지지한 모두를 테러 후원 단체로 규정했고 이 꼬리표가 지금까지 따라다니는 것이다.
이런 오해를 받으면서도 공산권 국가 교회는 줄곧 WCC 회원으로 활동했다. 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구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에서 세례를 받으려는 이들이 급증한 것도 이런 관계의 끈 속에서 피어난 결실이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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