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옷, 장난감, 학용품, 책, 운동기구, 샴푸, 비누…. 약간 과장하자면 446㎡(약 135평) 크기의 매장엔 없는 게 없었다. 주로 중고 상품을 취급하는 가게였지만 물건 대부분은 새것처럼 보였고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저렴했다. 매장 안은 시종일관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작업복 조끼를 입고 고객을 안내하는 직원들이었다. 이들의 작업복 뒷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자선이 아닌 기회를.’
지난 3일 찾은 이곳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굿윌스토어 송파점이었다. 굿윌스토어는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쓰지 않은 물건을 기증받아 되파는 가게로 사회복지법인인 밀알복지재단이 운영한다. 판매 수익으로 매장에 취업한 장애인 직원에게 월급을 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송파점에 근무하는 장애인 직원은 55명이나 됐다.
현장에서 만난 이는 굿윌스토어 실무를 총괄하는 한상욱(63) 굿윌본부장이었다. 한 본부장을 만난 이유는 굿윌스토어의 성공 스토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2011년 5월 송파점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전국 각지에 생긴 굿윌스토어 매장은 14곳이나 된다. 주로 발달장애인들이 공개채용 절차를 통해 직원이 되는데, 지금까지 이런 과정을 통해 일자리를 얻은 장애인은 282명에 달한다. 4대 보험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자선이 아닌 기회를’ 제공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발달장애인계의 삼성’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지난달엔 기획재정부가 주관한 ‘2022 사회적 경제 활성화 유공 정부 포상 수여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의 대표 모델이 된 셈이다.
한 본부장은 굿윌스토어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이유를 묻자 “사회복지 모델과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적으로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굿윌스토어는 수익이 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든 모델”이라며 “대기업 출신 유통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이 일에 참여하면서 사업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굿윌스토어 지난해 매출은 119억원에 달하며, 올해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이 굿윌스토어를 만든 이유를 설명하려면 이 단체가 과거 벌인 사역부터 소개해야 한다. 밀알복지재단은 1995년 장애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부모들에게 안식을 선사하기 위해 ‘밀알학교’를 세웠다. 취학 연령이 된 장애인을 상대로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는 교육 과정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교육 과정을 모두 수료해도 직장을 구하는 장애인은 별로 없었다. 한 본부장은 “모두가 기뻐해야 할 졸업식이 ‘슬픈 졸업식’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는 한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에 굿윌스토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엔 직장인으로, 중년이 돼서는 사업가로 살던 한 본부장은 2013년 지인의 초청으로 송파점을 방문했다가 굿윌스토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장애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즈음 그는 은퇴를 앞두고 크리스천으로서 세상에 이바지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었다.
이듬해 그는 사업을 접고 굿윌스토어 구리점 점장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2018년 굿윌본부장에 부임했다. 경기도 고양 충정교회(옥성석 목사)에 다니는 그는 “하나님의 시선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은 장애인일 것”이라며 “굿윌스토어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부모가 웃는 모습을 볼 때”라고 말했다.
“장애인 대다수는 처음 볼 땐 웃음기가 없는 얼굴이었어요. 하지만 일을 하면서 자존감을 느끼게 돼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웃는 얼굴이 되더군요. 그들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고요.”
굿윌스토어의 목표는 단 하나다. 바로 장애인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밀알복지재단은 오는 2035년까지 매장을 100곳으로 늘리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렇게 매장 규모가 커지면 장애인 일자리가 2000~3000개 정도 생길 거로 내다보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매장에서 고객을 상대하거나, 건물 2층에 있는 작업장에서 중고 물품을 분류하는 일을 하는 직원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매장 의류 코너에서 마주한 윤승현(35)씨도 그중 하나였다. 발달장애가 있는 그는 2011년부터 송파점에서 근무한 ‘원년 멤버’였다. 윤씨는 “일하는 것 자체가 정말 재밌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지하철 택배 업체에서 일했어요. 하지만 빨리 일을 처리하지 못해서 회사에서 잘렸어요. 굿윌스토어에서 처음 일할 땐 계속 서 있어야 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됐어요. 부모님도 이제 저를 대견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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