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히말라야산맥에서 영원히 잠든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산악대장을 찾는 데 투입한 수색·구조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외교부가 고 김 대장이 소속된 광주시산악연맹에 1년여 만에 비용 상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를 취소하라는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광주시의회와 체육회, 산악연맹, 지역구 국회의원 등은 구상권 취소를 일제히 촉구하고 나섰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구을)은 지난 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외교부의 구조비용 청구는 영혼 없는 행정”이라며 가장 먼저 불씨를 지폈다.
이들은 “국위 선양을 위해 장애인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고 김 대장의 업적이 외교부 구상권 청구로 개인의 영달을 위한 도전으로 의미가 퇴색했다”는 성명을 냈다.
광주시의회는 24일 “외교부 구상권 청구는 행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당시 상황과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되지 않은 섣부른 판단이다”며 “구조비용에 대한 구상권 청구는 반드시 취소되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김 대장의 삶과 도전은 국민의 꿈과 희망을 짊어진 위대한 발걸음이었던 만큼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내려오다가 실종된 김 대장의 수색·구조 비용은 국격 유지를 위해 공적 예산이 투입돼야 옳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김 대장 구조작업 중단 직후 치른 발인식에서 1등급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돼 국위 선양의 공이 인정됐다며 구상권 행사는 부당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 대장이 2021년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 선정될 만큼 국가의 명예를 세계적으로 떨쳤다는 논리다.
피길연 광주시산악연맹 회장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국위 선양을 위한 산악 원정을 떠났는데 조난사고 구조비용까지 떠넘기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 행정절차나 관련법이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광주시회와 산악·체육단체, 지역구 국회의원 등 지역사회의 들끓는 반대에도 외교부는 행정적 절차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해 7월 김 대장의 조난 직후 파키스탄 육군 항공구조대에 구조·수색 작업과 베이스캠프에 남은 원정대원 이송을 위한 헬기 투입을 요청했다. 3차례의 헬기 투입 등에 사용된 비용은 모두 6800여만원.
당시 주파키스탄 한국대사관은 전체 직원을 구조지원 관련 업무에 투입했다. 외교부도 중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영사를 포함한 주중한국대사관 직원들을 현장에 급파하기도 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외교부가 파키스탄에 선지급한 구조비용의 부담 주체를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다.
조난사고가 수습되자 외교부는 파키스탄 항공구조대에 지급한 비용을 광주시산악연맹이 부담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광주시산악연맹이 “너무한 것 아니냐”며 반발하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외교부가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여론이 잠잠해지자 외교부가 관련법을 근거로 1년여 만에 뒤늦은 구상권 청구 소송에 나섰다.
외교부 소송 근거는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 조력법’이다. 이 법의 제19조(경비의 부담 등)는 재외국민을 긴급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하게 돼 있다.
재외국민을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비용은 외교부 장관이 대신해 지급하되 이후 재외국민은 외교부 장관이 합리적 범위에서 청구한 비용을 상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광주지역 국회의원들은 김 대장의 구상권 논란을 계기로 외교부의 불합리한 구상권 저지를 위한 가칭 ‘김홍빈 대장법’을 발의했다. 정부 훈장 등을 받은 이가 국위 선양을 목적으로 활동하다 발생한 해외 위난 상황 비용은 상환을 면제하는 내용이다.
광주시산악연맹 자문인 정준호 변호사는 “구상권 청구에 앞서 최소한의 청문 또는 심사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국민 정서와 부합되지 않는 구상권 청구는 철회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고 김홍빈 대장은 지난해 7월 18일 해발고도 8047m의 브로트피크를 정복하고 하산하다가 조난사고를 당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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