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한 노인 무료급식소의 점심 메뉴가 단출해지기 시작한 건 약 한 달 전부터다. 매일 따뜻한 국과 밥에다 불고기나 제육볶음 등 고기 메뉴를 포함한 3가지 반찬이 제공됐는데 반찬이 한두가지로 줄었다. 종종 아무런 추가 반찬 없이 볶음밥이나 짜장덮밥이 나오기도 한다. 비빔밥에 들어가던 고기와 나물 고명은 콩나물과 상추로 대체됐다. 물가가 올라 급식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진 탓이다. 특히 ‘금달걀’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달걀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면서 1인당 한 개씩 나가던 삶은 달걀은 반쪽씩만 배급됐고, 지금은 이마저도 자취를 감췄다.
급식소 총무는 “어르신들이 좋아하셔서 음식에 표고버섯을 많이 넣었는데 이제 못 넣게 돼 속상하다”며 “잡채나 비빔밥에도 표고버섯 대신 양파나 당근을 더 넣어 드릴 수밖에 없다”고 5일 말했다.
식재료 물가가 치솟으면서 노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취약 계층에게 제공되는 ‘거리의 밥상’이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단체들은 저렴한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반찬으로 식단을 짜면서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어쩔 수 없이 배식 횟수를 줄인 곳도 있다. 강동구 행복한복지센터는 평일과 주말까지 일주일에 3번 식사를 대접했지만 주말 배식을 줄여 2회로 운영 중이다. 배급 양도 줄일 수밖에 없어 도시락 용기도 보다 작은 것으로 교체했다. 원래는 두 명이 함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게 식판에 담아줬지만 지금은 1인분 정량을 담는다. 이곳을 찾는 노인 한사람이라도 헛걸음하게 하지 않으려면 부득이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급식소 관계자는 “그간 고기나 생선조림이라도 드렸는데 지금은 호박이나 가지 같은 나물 반찬으로 대체해 드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쪼그라든 후원금은 회복되지 않은 반면 거리두기 지침 해제로 이용자들은 늘어나 재정적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박종범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 대외협력실장은 “물가 상승으로 고생하는 건 모든 무료급식소가 마찬가지”라며 “코로나가 풀리면서 밥퍼를 찾는 분이 더 늘어나고 있는데 먹거리 단가는 어마어마하게 올라서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밥퍼의 경우 지난달 특별히 늘어난 지출이 없었는데도 적자를 기록했다.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단체 손모 대표는 “한 달에 식자재 비용으로 한 800만원 정도 쓰고 있는데,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며 “예전에는 한 끼를 만들 때 3000원 정도 들었다면 지금은 최대 4500원까지 잡고 메뉴를 짜야 한다”고 전했다.
후원을 현금이 아닌 농산물로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천안봉사관 관계자는 “원래는 현금 기부가 많았지만 지금은 ‘급식 만들 때 쓰라’며 농산물을 보내주는 후원자가 늘었다”며 “원래 100명 정도가 급식소를 찾았는데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120명 가까이 늘어 후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5월보다 5.4%나 올랐다. 5%대 진입은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여만이다. 무료급식소의 시름은 갈수록 더 깊어질 수 있다.
그래도 급식소를 찾는 이들은 줄어든 반찬에 투정은커녕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종로구 급식소 관계자는 “반찬이 줄어 죄송한 마음이 큰 데, 오히려 어르신들은 ‘음식이 비싸져서 무료급식을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밥을 줘서 고맙다’고 매일 인사하신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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