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세 때 친구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사건 발생 2년 만에 다시 재판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영상에 증거 능력을 부여한 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여파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49)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의붓딸의 친구인 B양(당시 12세)을 상대로 유사성행위를 하고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추행한 적이 없고, 설령 그랬다고 해도 B양이 잠든 척하거나 잠들어있던 상태라 ‘충분한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지만 1·2심은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수사기관에서 한 B양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다만 재판부는 B양을 직접 법정에 부르지는 않았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조사 과정에 동석한 신뢰관계인이 법정에서 영상 속 진술이 틀림없음을 확인해주면 증거로 쓸 수 있다고 규정한 청소년성보호법 조항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소심 선고 두 달 뒤 헌재는 성폭력처벌법 제30조 6항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렸다. 이 조항 또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영상을 증거로 쓸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헌재는 피고인의 반대 신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봤다.
이후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위헌 결정 효력이 A씨 사건에까지 소급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결정을 내리던 지난해 12월 기준 A씨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였다는 점이 고려됐다. A씨 사건에 적용된 청소년성보호법 조항은 아직 위헌 판단을 받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해당 조항은) 위헌 결정의 심판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성폭력처벌법 조항의 위헌 결정 이유와 마찬가지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며 심리를 다시 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헌재 위헌 결정과 대법원 판단에 따라 미성년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서야 하는 일은 앞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영상 진술을 증거로 사용하는데 부동의하면 피해자가 재판에 나와 피해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 A씨도 B양의 진술과 조사과정을 촬영한 영상물을 증거로 삼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위헌 결정 당시에도 미성년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법원행정처는 피해 최소화를 위해 피해자들이 해바라기센터에서 영상재판으로 증인 신문을 받도록 한 시범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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