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현실적인 제도들은 다 철폐해나가도록 하겠다.”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한 마디에 한국 사회는 들썩였다. 중소기업인들로부터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제가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덧붙인 말이었다. 임금 노동자들 피부에 가장 와닿는 제도를 거론한 까닭에 해당 발언은 당선 이후에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윤 당선인이 제 20대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국내 노동정책은 적잖은 변동이 예상된다. 현 정권의 기조와 어긋나는 노동관을 반복해서 내비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최저임금제와 주 52시간제를 비롯해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집중되고 있다. 국민일보는 17일 당선인 공약집과 후보 시절 발언을 종합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었다.
노동시간 유연화, 어떻게 적용될까

공약집 노동공약의 핵심은 노동시간 유연화다. 주 52시간제 후퇴·폐지 여부도 이 연장선에 있다. 논란이 된 발언 이후 해명을 종합해도 그렇다. 당선인은 지난달 3일 후보 토론회에서 “주 52시간 폐지를 말한 적 없다”며 “노사 합의를 통해 유연하게 정하게 해달라는 중소기업계 요청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먼저 당선인은 현행 1~3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1년 이내로 확대한다고 공약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단기 대형 프로젝트가 잦은 게임 등 IT업계가 주로 쓰는 제도다. 독일에서 시행 중인 ‘근로시간저축계좌’를 연 단위로 도입한다는 약속도 했다. 초과근로시간을 수당 대신 장기휴가로 보상 한다는 내용이다. 두 공약 모두 짧은 기간에 일을 몰아서 할 수 있게 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윤 당선인이 ‘폐지’ 발언을 했던 게임 스타트업의 경우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이 1년으로 늘 때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3개월간 1주 평균 근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면 과로사를 인정하는 현 산업재해 기준과도 맞지 않다. 이날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넥센과 엔씨소프트 등 게임 대기업은 현 정권 들어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1개월 단위로 정착되어 있지만, 인력 규모가 적은 스타트업은 법이 바뀌면 이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노무법인 사람과산재 유연주 노무사는 “지금도 초과근무 수당조차 정상 지급이 안되는 회사가 많다. 포괄임금제가 불법인데도 다수 기업에 쓰인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연차 쓰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추가근무를 저축했다가 쉬게 한다는 건 현실에 맞지 않다. 1년 단위로 기간을 늘린다면 52시간제 자체가 무력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로사가 늘어날 우려도 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노조 조직율이 10% 밖에 안되는 현실에서 계약서상 피고용자에게 선택권을 준다고 해도 실제 그리 되는 경우가 드물다”고 했다. 그는 “노동시간을 총량의 개념으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면서 “사람의 몸은 무리해서 쓰고 쉰다고 곧장 회복되지 않는다. 치료가 필요하게 되거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저임금 후퇴, 가능성 높아…중대재해법 운명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한 건 최저임금제 후퇴다. 다른 공약의 경우 국회가 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최저임금의 경우 정권 의지로 손쉽게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걱정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최저임금 업종·지역·외국인 차등화나 후퇴 등은 최저임금위원회 결정만으로 가능하다. 정권이 마음먹고 추진하면 저지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여성이 출산·육아로 풀타임 정규직 근무가 어렵다는 이유로 ‘시간선택형 정규직’을 도입한다고 약속했다. 또 육아휴직 기간을 1년 6개월로 확대하고 육아 재택 근무를 도입한다고도 했다. 이 역시 전문가들의 우려를 사는 공약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에게 시간제 일자리가 필요한 건 가임·육아기 일부 구간”이라며 “제도화 하면 해당 일자리에 고착되는 현상이 생긴다. 영국에서 여성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가 있다”고 했다. 그는 “현 1년씩 적용되는 육아휴직도 ‘독박육아’의 현실상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 단순히 육아휴직 기간만 확대하고 육아 재택을 도입하면 같은 현상이 심화된다”고 덧붙였다.
중대재해법과 관련해선 공약집에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폐지나 수정을 시사하는 발언은 대선 기간 수차례 했다. 이 법은 지난 1월부터 시행돼 아직 적용 초기 단계다. 한 사무처장은 “일단 검찰이 기소한 사례 자체가 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실제 적용될지 확인된 바도 없고 검증도 안됐다”면서 “제 기능을 하는지를 일단 지켜봐야 하는데 벌써 거론하는 자체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외 윤 당선인은 근로장려세제(EITC) 적용 대상과 액수를 늘린다고도 했다. 저소득 노동자에게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이다. 다만 이 역시 우려가 되는 부분은 있다. 이 교수는 “자칫 운영을 잘못하면 취지와 달리 저임금 일자리를 당사자가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공통으로 내세웠던 공무원·교원노조 타임오프제는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정면으로 반대해온 제도라 시행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