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구자홍회장 추모

Է:2022-02-1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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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점심 식사후 사무실 컴퓨터를 켜니 주요 키워드에 구자홍별세가 떴다. 설마 싶어서 눌러보니 내가 존경하는 바로 그분이 아닌가! 올해 76세…. 떠나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었다. LS니꼬동제련 명예회장이 되셨다는 기사를 보고 회장님께서 이제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으시겠구나 싶어서 내심 반가웠다. 작은 협회를 운영하는데도 회장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버거운데 큰 기업을 이끌어가시려면 얼마나 신경쓰실 일이 많을까 싶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시다니 믿기질 않는다.

2011년 조선일보에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 80호를 어렵게 이끌어온 방귀희’라는 기사를 보고 연락을 주셔서 처음 뵙게 되었는데 회장님께서는 약속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 배려가 깊으셨다. 내가 일하는 여의도로 오셨다. 그때 동석자는 직원이 아닌 사모님이셨다. 장애인화가가 그린 엽서를 드리자 너무 예쁘다고 하시며 손녀에게 주겠다고 진심으로 좋아하셨다.
그후 1년에 한번씩 종교와 철학 저서를 쓴 작가들과 LS미래원에서 저녁을 하며 저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길벗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단 한사람을 위해 LS미래원 이동 경로 곳곳에 경사로를 설치해주어 나를 감동시켰다.

회장님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솟대문학>에 이어 에 협찬 광고로 가난한 잡지를 후원해주셨다. 책을 보내드리면 그 바쁜 가운데도 꼼꼼히 읽고 장애예술인에 대해 말씀하시어 나를 놀라게 하셨다.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시는 분이었다. 2017년 5호에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흔쾌히 응해주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손가락 세 개가 없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것을 놀려서 그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린 구자홍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친구는 할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그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가 가장 맛있었다며 그때 할머니께서 해주신 멸치를 넣은 김치찌개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장애인 분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도 하셨다. 저렇게 노력하며 열심히 사는데 우리 사회가 그분들을 제대로 대우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다며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사모님과의 러브 스토리는 더욱 감동스럽다. 사모님은 7살 때부터 왼쪽 귀의 청력이 떨어져서 왼쪽에서 하는 얘기는 그 내용을 3~40% 정도 밖에 파악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구회장님이 반드시 왼쪽에 앉아 왼쪽 편에서 하는 이야기 내용을 아주 작게 전달해주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었다. 두분은 미국 유학시절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만났는데 회장님이 사모님께 첫눈에 반해 작업을 걸었다며 그 시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하신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웃으셨다.

20대 아가씨 눈에도 청년 구자홍의 진정성이 보였던지 자신은 왼쪽 귀가 약해서 오른쪽에서 말을 해줄 것과 오른쪽에서 큰소리가 나면 많이 놀란다고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다른 친구들에게도 해주었지만 바로 잊어버리고 자기 습관대로 행동했는데 청년 구자홍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왔던 사람처럼 아주 능숙하게 자신을 배려해주었다며 역시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나는 그날 이후 구자홍회장님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에 대기업 재벌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인터뷰 기사 제목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독서왕 LS니꼬동제련 구자홍 회장”처럼 회장님은 정말 책을 즐겨 다독하시는 독서왕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시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지식인이다. 아…. 그토록 멋진 분을 어떻게 보내드린단 말인가?(글=방귀희 사단법인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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