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포장지 좀 줄이는 게 뭐 대수냐구요?” [굿굿즈]

장을 보러 마트에 들어서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과 손을 잠시나마 멈추는 곳 중 하나가 스낵 코너다. 몇천 원 안팎의 돈이면 달콤·짭짤, 바삭·촉촉 같은 다양한 맛을 고르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수십·수백 가지 스낵들이 진열대에 빽빽이 놓여 소비자 선택을 기다리며 경쟁한다. 제과업계에선 눈에 확 띄는 색감과 커다란 글씨를 앞세운 디자인, 경쟁제품보다 조금이라도 많아 보이게 하는 포장을 중요한 과제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하는 제과업체가 있다. 포장 크기는 조금씩 더 작게, 인쇄는 흐리고 밋밋하게 바꾸는 시도를 하는 곳, 바로 오리온이다. 최근 ESG 경영이 필수과제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이 앞다퉈 친환경 시도를 하고 있지만, 오리온 포장의 변화는 더 앞선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주력 인기제품 ‘포카칩’의 포장에 질소를 많이 넣어 내용물보다 부풀렸다는 이른바 ‘질소포장’ 논란이 불거진 게 계기였다. 생감자칩 특성상 과자가 부서지지 않도록 한 질소포장이었지만, 소비자들은 ‘과대포장’이라고 질타했다. 오리온은 이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제품 포장재 크기를 줄이고 양은 늘리는 ‘착한포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소비자에게 더 많은 가치를 돌려주자는 윤리경영 차원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7년 넘게 이어져 온 프로젝트는 어느새 친환경 경영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달 12일 서울 용산구 오리온 본사에서 만난 류근하 오리온 포장개발팀 부장은 ‘착한포장’ 프로젝트에 대해 “아직 친환경 소재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오리온은 ‘친환경 같아’ 보이는 일 대신 실제로 줄일 수 있는 것을 줄이는 노력을 해 왔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확실한 친환경 노력은 쓰레기를 될 수 있으면 줄이고(reduce) 재활용을 잘하고(recycle) 다시 쓰는(reuse)’ 것인데, 이 중 기업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노력이 ‘줄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리온이 지난 7년간 프로젝트를 통해 포장재 크기를 줄인 건 포카칩을 시작으로 스윙칩과 오징어땅콩, 왕고래밥 등 21개 제품이다. 포카칩의 경우 포장 사이즈는 줄인 대신 용량은 60g→66g으로, 124g짜리는 137g으로 각각 증량했다. 제품 내 빈 공간 비율을 25% 미만으로 낮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환경부가 제한하는 기준 35%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빈 공간 비율을 낮췄다는 건 쉽게 말해 과자 봉지 안에 내용물을 좀 더 빡빡하게 넣었다는 의미다.


‘다이제샌드’와 ‘까메오’ 등 비스킷 제품은 패키지 크기와 용량을 줄이면서 가격을 그만큼 인하했다. 통상 더 크게 만들어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과 정반대 시도를 한 것이다. 다이제샌드의 경우 용량은 82g에서 70g, 가격은 12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추는 등 비스킷 제품의 그램(g)당 가격을 3% 낮췄다. 케이스 높이도 제품 용량이 줄어든 것보다 더 큰 폭인 약 2㎝가량 낮춰 포장재 빈 공간율을 줄였다. 그만큼 개당 포장재가 줄어든 셈이다.

포장을 줄이는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당장 생산 파트에서는 작업이 어려워진다고 난색을 보였다. 예를 들어 포카칩의 경우 내용물이 감자 슬라이스 모양이라 포장 공정에서 내용물이 겹쳐지며 꽉 쌓여서 불량이 나기 쉽다. 류 부장은 “포장 크기를 줄이면 불량이 날 위험은 더 커진다. 양을 줄이지 않고 포장 크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정말 여러 사람이 함께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줄어든 포장재 양은 어느 정도일까. 주력 제품인 오징어땅콩, 스윙칩, 포카칩 세 가지 제품 기준으로 한 해 83t 가량, 면적 기준으로는 약 1.2㎢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오리온이 2017년 이 세 가지 제품 생산량 등을 반영해 크기 축소 전 사용량과 비교해 계산한 결과다. 줄어든 포장재만큼 줄인 비닐 쓰레기는 단순 계산하면 여의도 전체 면적(2.9㎢)의 40%에 달한다.


포장재 크기만이 아니다. 오리온은 2020년부터 70억원을 투자해 도입한 플렉소 인쇄설비로 포장재를 생산하고 있다. 플렉소 인쇄 방식은 기존 그라비어 인쇄와 달리 양각 인쇄를 하는 방식으로 잉크 사용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잉크를 포장재에 입히기 위해 쓰는 화학용품 유기용제 솔벤트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인체에도 이롭다.

초코파이나 촉촉한 초코칩, 후레쉬베리 등 겉 상자가 있는 제품의 경우 낱개 속포장재의 포장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인쇄도수를 낮췄다. 더 흐린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얘기다. 가급적 소비자 눈에 띄도록 해야 하는 게 포장인 만큼, 겉 상자는 안 되더라도 속포장까지 화려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점에 착안해 설득한 결과다.

이를 통해 포장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잉크 사용량은 기존 대비 연간 178t 가까이 줄었다. 유기용제를 안 쓰는 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게 오리온의 설명이다. 류 부장은 “플렉소 인쇄는 유럽에서는 많이 쓰이지만 국내에선 오리온이 처음 도입했다”면서 “겉으로 봐서는 크게 티 나지 않지만, 잉크사용량뿐 아니라 인체에 해로운 유기용제를 거의 안 쓴다는 점에서 정말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부연했다.



오리온의 ‘착한포장’ 사례들은 ‘기업에서 친환경을 추구하면 비용부담이 늘고, 이에 따라 제품 값이 비싸져 결국 소비자 부담은 커진다’는 고정관념을 깼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류 부장은 “포장재나 잉크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회사로서도 비용 절감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그렇게 생겨난 이익을 가격이나 용량으로 소비자에게 나눈 것이 ‘착한포장’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물론 비닐과 플라스틱은 여전히 제품 포장의 중심에 있어서 오리온이 지금까지 노력으로 포장재를 최대한 줄였다고 해도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다. 비닐을 대체할 만한 포장재, 완벽하게 외부 습기나 빛 등을 차단하면서도 저렴한 포장재를 찾기는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늘어나는 한편에선 1인 가구 증가로 소포장 수요가 증가하고, 온라인쇼핑 확산으로 배송 포장이 더 커지는 식의 모순적 흐름도 있다.

류 부장도 “가장 친환경적인 포장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실 포장을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거겠죠”라면서 “다만 제품을 안전하게 보관해 소비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포장의 가치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류 부장은 그러면서 “오리온 내부에서도 영업이나 생산 파트 모두 걱정부터 했지만, 다양한 시도를 통해 우리 (기업)도 소비자에게도 ‘윈윈’이라는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은 각 부서에서 조금 더 개선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한다”며 “결국 균형점을 계속 고민하면서 꾸준히 친환경이라는 방향을 진정성 있게 밀고 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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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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