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현대희곡 낭독공연 10회로 끝나지만 한·일 연극교류는 계속된다

Է:2022-02-06 12:52
:2022-02-0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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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연극교류협의회 심재찬 회장·이시카와 쥬리 전문위원 인터뷰

한일연극교류협의회 회장인 연출가 심재찬과 전문위원인 번역가 이시카와 쥬리가 지난 4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오는 11~13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리는 ‘제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지영 기자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는 해외문화홍보원 50주년을 맞아 해외에서 한국문화 홍보에 애쓴 개인 3명과 단체 1곳에 장관 표창을 수여했다. 유일한 수상 단체는 한국 연극의 일본 진출과 한·일 연극인 교류에 기여한 ‘일한연극교류센터’다.

2000년 일본연출자협회 등 일본의 7개 연극 단체가 공동으로 발족시킨 일한연극교류센터는 한국연극 정보를 담은 뉴스레터를 연 4회 발행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일본 문화청의 지원을 받아 한국 현대희곡을 일본어로 번역해 낭독공연하는 ‘한국현대희곡 드라마 리딩’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카운터 파트너로서 한일연극교류협의회가 발족해 2003년부터 일본 현대희곡을 한국어로 번역해 낭독공연 한 뒤 출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양국에서 각각 50명의 극작가와 50편의 희곡이 소개됐다.

두 단체는 지난 20년간 서로 번갈아 가며 행사를 진행하며 한·일 연극 교류의 중요한 창구가 됐다. 하지만 앞서 각각 10회까지만 진행하기로 했던 합의에 따라 오는 11~13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리는 ‘제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을 끝으로 행사 자체는 일단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일 연극 교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난 4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한일연극교류협회의 회장인 연출가 심재찬과 전문위원으로서 양국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해온 번역가 이시카와 쥬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시카와 전문위원의 경우 3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수많은 한·일 연극 교류에서 번역가는 물론 통역가, 코디네이터, 스태프 등을 해왔다.

양국 연극계, 교류 방식의 변화에 대한 고민 중

지난해 일본에서 치러진 10회 한국 현대희곡 드라마 리딩 포스터와 올해 한국에서 치러질 예정인 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포스터.

“한·일 연극계에서 낭독공연 및 출판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3회까지 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양측에서 반응이나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5회까지로 늘렸다가 다시 10회까지로 늘린 거예요. 다만 10회까지 마쳤다고 해서 한·일 연극 교류를 끝내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이번 서울 행사를 끝낸 뒤 양측이 회장단의 세대교체와 함께 교류 방식의 변화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심)

한국은 대학로 연극 동네의 맏형으로 통하는 심재찬 한일연극교류협회장이 임기 2년의 회장직을 2004~2008년 역임한 데 이어 2019~2022년 맡았다. 그리고 일본에선 원로 연극 평론가인 오자사 요시오가 일한연극교류센터 발족부터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양측 단체 모두 예술계의 국제 교류로 공적 지원을 받아서 운영됐는데요. 한국의 경우 일본과 비교해 지원의 지속성이 부족한 편이라 행사를 개최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국제 교류는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반복해야 의미가 생기는데, 한국에선 오히려 행사가 반복된다고 예산이 깎이더라고요. 사실 심재찬 회장님이 그다지 내색하지 않으시지만, 한일연극교류협회장은 외부 후원을 받아와야 하는 피곤한 자리입니다.”(이시카와)

한일연극교류협회의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은 2년 전 9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지원 금액이 점점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1번은 블랙리스트 여파로 아예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본 연극 전문가로서 희곡 선정 및 번역에 참여하는 전문위원들의 재능 기부는 물론 갹출도 빈번했다. 10회 행사의 경우도 올해 국제교류 사업 지원 공모 및 발표가 지난해 말까지 이뤄지지 못하고 올 1월 공모 및 4월 발표로 미뤄지는 바람에 지원금 없이 행사를 치르는 상황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여파로 일본 연극계 관계자들이 직접 오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관객과의 대화나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면서 숙박비 등의 경비가 들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다.

지난 2020년 한국에서 열린 제9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포스터와 당시 포함된 '다스 오케스터'의 일본 공연 장면(오른쪽). (c) WATANABE Ryuta

“한·일 양국에서 희곡 낭독공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데는 공공극장이 공동개최로 나서준 공이 큽니다. 덕분에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연습실과 극장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요. 일본에서는 도쿄의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와 자코엔지 극장, 한국에서는 서울의 국립극장·명동극장·남산예술센터·국립극단이 공동개최로 힘을 실어줬습니다. 희곡 번역과 낭독 공연이 본 공연에 비해 사람의 이동이나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지만 이런 공공극장의 이해와 협력 없이는 양국 연극계의 채산성 없는 풀뿌리 교류가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이시카와)

한국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었던 일본 연극계

사실 한·일 연극계가 이토록 끈끈한 교류가 이뤄지기까지는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일본연출자협회가 1987년 한국 연출가들을 대거 일본에 초청해 대화의 물꼬를 튼 뒤 이듬해에는 일본 연출가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등 서로 연극계에 대해 알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1992년 한국연극협회와 함께 ‘한일연극인회의’를 만든 뒤 번갈아 가며 심포지움을 열거나 상대 연극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2 한·일 공동 월드컵을 앞두고 양측의 다양한 문화교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극계에서 현대희곡 낭독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1980~90년대 한국 연극계는 일본 연극계와 비교해 많은 부분이 열악했죠. 당시 교류할 땐 일본 측에서 경비를 거의 다 댔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일본 문화에 대한 민족적 정서 때문에 한국 연극계는 적극적일 수가 없었어요. 지금부터 불과 20년 전의 일입니다. 그래도 1999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에 이어 2002 한·일 공동 월드컵을 치르는 것을 계기로 양측이 서로를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게 됐죠. 그동안 양국 연극인들이 서로서로 방문해 희곡 낭독공연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가 됐습니다. 특히 한국에선 우수한 일본 희곡들이 많이 소개돼 한국 연극계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심)

양국의 낭독공연에서 소개된 희곡은 본 공연으로도 많이 이어졌다. 다만 한국 희곡이 일본에서 공연되는 것보다 일본 희곡이 한국에서 공연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의 경우 일본의 영향을 받은 ‘조용한 연극’ 붐이 한동안 이어졌으며, 연말에 발표되는 ‘올해의 연극상’ 후보로 일본 희곡을 무대화한 작품이 적지 않게 올라갔다. 2000년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대학로에서 일본 희곡이나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 연극계의 일류(日流)’라는 표현이 나왔을 정도다. 아무래도 한국에선 ‘현대일본희곡집’이 정식 출판돼 서점과 국회 및 대학 도서관에 언제든 볼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정식 출판이 안되는 바람에 일한연극교류센터를 통해서만 구입이 가능한 배경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1970년대부터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강한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한·일 연극교류가 이런 분위기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1972년 일본의 연출가 가라 주로가 한국 시인 김지하와의 친분으로 서강대에서 게릴라 공연을 펼친 것이 한·일 연극교류의 그 시작이죠. 그런데, 일본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희곡의 무대화가 매우 제한적이고 대중적이지 못했습니다. 일본 연극인들은 대중보다 역사의식이 높은 사람들이라 전쟁이나 가해의 역사가 일본에서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만큼 사회성 강한 한국 연극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강해요. 그래서 희곡 낭독공연에서 남북문제나 광주항쟁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일반 관객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극단 워크숍에서 주로 공연됐습니다.”(이시카와)

지난 2019년 일본에서 열린 한국현대희곡 드라마 리딩에서 선보인 이보람의 '소년B가 사는 집'의 한 장면(왼쪽)과 2020년 본 공연 포스터. '소년B가 사는 집'은 2020년 일본 문화청예술제상 연극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c)Okuaki Kei-일한연극교류센터

최근 일본에서 한국 희곡에 대한 관심 높아져

하지만 일본에서도 근래 한국 희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대중적으로 좀 더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16년 대형 프로덕션인 호리프로가 이강백의 ‘북어 대가리’를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날 보러 와요’ ‘꽃의 비밀’ 등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작품을 일본 제작사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리고 2020년엔 나토리사무소가 제작한 이보람의 ‘소년B가 사는 집’(연출 마나베 다카시)이 일본 문화청예술제상 연극부문 우수상을 받았는데, 한국 희곡을 무대화한 작품이 일본에서 권위 있는 연극상을 받은 첫 사례로 기록됐다. ‘소년B가 사는 집’은 일한연극교류센터가 2019년 희곡 낭독공연에서 처음 소개된 작품이다.

“최근 일본의 여러 제작사가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큰 한국 희곡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 작품을 일본에 꾸준히 소개해온 단체들의 노력과 한류 붐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또 한국 희곡의 저작권료가 영미권과 비교해 높지 않은 데다 일본과 정서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도 한 부분입니다.”(이시카와)

한·일 연극교류를 통해 양국의 근대사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일본 극작가들이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내놓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일한연극교류센터 위원으로 일본에서 주목받는 극작가 겸 연출가 시라이 게이타는 지난 2020년 윤동주를 소재로 한 ‘별을 스치는 바람’, 지난 1월엔 명성황후 시해를 다룬 ‘어느 왕비의 죽음’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심재찬 회장은 “한국 연극계가 일상성과 개인의 감각에 주목한 일본 희곡에 영향을 받았다면 일본 연극계는 한국의 묵직한 정치 사회적 주제의 희곡에 감화를 받았다”면서 “한·일 연극계는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는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제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에선 선보이는 이시하라 넨의 ‘하얀 꽃을 숨기다’ 일본 공연 장면. NHK방송이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바꾼 사건을 다뤘다. P-company

한편 올해 ‘제10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은 NHK방송이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다큐멘터리 내용을 바꾼 사건을 다룬 이시하라 넨의 ‘하얀 꽃을 숨기다’(11일)을 비롯해 우연한 사고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요코야마 다쿠야의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12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니 겐이치의 ‘1986년: 뫼비우스의 띠’(13일) 등 최신 화제의 희곡 3편을 소개한다. 연출가 설유진, 이양구, 부새롬이 각각 연출을 맡아 다채로운 무대로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마지막 날인 13일 공연 종료 후 ‘팬데믹과 연극-위드 코로나, 애프터 코로나 시대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개최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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