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의 염전노예 사건’으로 최근 입건된 염전 사업주가 2014년 신안 염전노예 사건 당시 준사기, 감금 등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살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7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사업주가 노예처럼 부린 대상도, 장소도, 수법도 그때와 판박이였다.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된 것은 신안군과 지역 경찰 등 염전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역기관이 2014년 이후 실태 파악 및 대책 마련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014년 지적장애인 노동 착취한 염전 사업주… 징역 2년6개월
1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신안군 증도면에서 염전을 운영하는 장모(48)씨는 2014년부터 7년간 자신의 염전에서 일한 박영근(53)씨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박씨의 신용카드 등을 사용한 혐의로 지난달 입건된 상태다. 어렵게 탈출한 박씨의 폭로로 2014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염전노예’ 관행이 근절되지 않은 채 지금껏 계속돼 왔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사회 각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장씨는 2014년 이미 염전노예 사건과 관련해 준사기, 감금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항소해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해당 판결문에 따르면 2014년 당시 장씨의 아버지는 전남 신안군에 있는 한 염전회사에서 일부 구획을 임차해 염전을 운영했고, 장씨는 목포시에서 호프집 등을 운영했다.
장씨의 아버지는 2006년 1월 대구에 있는 한 직업소개소에서 보호자가 없는 고아로 지적장애 3급인 피해자 A씨를 소개받았다. 그는 A씨의 지적장애를 이용해 “우리 염전에서 일하자, 돈을 벌게 해 주겠다”며 속여 자신의 염전으로 데려와 일을 시켰다. 그때부터 2014년 6월까지 수년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장씨의 아버지는 준사기,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고 2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피해자 A씨는 장씨가 운영하던 호프집에서도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씨는 2011년 5월 “호프집에서 일하면 나중에 통장으로 모두 입금해 주겠다”며 A씨를 속인 후 종업원으로 약 한 달 동안 일을 시켰다.
장씨는 A씨를 감금하기도 했다. 장씨는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있는 자신의 업소에서 A씨를 자게 하고, 해당 업소 직원에게 “어디 나가지 못하게 잘 감시해라. A가 어디 나가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라”라고 지시했다.
또 장씨는 2014년 염전 섬 노예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신안군 염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A씨를 목포로 데리고 나와 모텔에 숨겼다. 그는 호프집 직원 등에게 A와 함께 모텔에 머물며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장씨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과거의 사건이고 세월이 많이 지났다”며 “과거 사건이 박영근씨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피해자 A씨와 달리) 박씨는 장애인도 아니면서 장애인인 척한다”고 반발했다.
2021년 '염전노예' 피해자 폭로… 과거 수법과 판박이
하지만 ‘2021년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인 박씨가 증언한 내용은 장씨 부자(父子)의 과거 재판 기록에 등장하는 염전노예 수법 그대로였다.
박씨의 증언에 따르면 박씨는 2014년 7월 목포의 한 직업소개소에서 장씨의 아버지를 만나 장씨 부자가 임차해 운영하는 염전에서 일하게 됐다.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는 시기였고, 장씨는 과거의 범행으로 실형을 살던 때였다.
염전 일은 계약 내용과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박씨는 “완전히 노예생활을 했다. 사람 취급도 아니고, 동물 취급도 아닌 짐승 취급을 받았다”며 “하루에 17~18시간씩 일하는데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치아가 다 빠지고 피부에 소금 독이 오르는 데도 기본적인 치료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던 하루하루”가 7년간 이어졌다.
매달 140만원을 받고 일하기로 명목상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으나 임금은 제대로 지급된 적이 없었다. 박씨는 사업주인 장씨가 식비·담뱃값 등 명목으로 임금을 제했고, 남은 임금마저도 지급 이후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시키고 바로 가져가는 수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염전에서 사실상 감금을 당했다고 말한다. 박씨의 변호인에 따르면 개인시간은 허락되지 않았고 섬을 떠나 외출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염부들이 5명씩 조를 짜서 1년에 한두 차례 회식 등을 하러 2시간가량 외출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마저도 사업주 장씨가 동행하며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출 과정도 험난했다. 지난 5월 박씨는 감시를 피해 염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염전 사업에 종사하는 지역주민에게 들킬까봐 대로변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박씨는 섬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산을 타고, 허리까지 잠기는 펄을 넘어 섬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지난달 박씨는 상습준사기, 감금, 근로기준법 위반 등 혐의로 장씨를 고소했다. 시민단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경계선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박씨는 현재 장애인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염전사업주 “임금체불, 감금 사실 없다”
염전사업주 장씨는 박씨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고 있다. 장씨는 “지난해 소금값이 안 좋았기 때문에 임금을 적게 준 것은 사실이지만 임금을 체불한 적은 없다”고 했다. 체불 임금 등에 대해서도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 근로감독관 입회하에 두 달 치 월급과 퇴직금 등 400만원을 지급하고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씨에게 추후에 어떤 이의제기도 하지 않겠다는 확인도 받았다”고 했다.
당시 목포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은 진정인인 박씨가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박씨에 대한 조사 없이 유선상으로 진정을 종결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회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관계부처 간담회에선 목포고용노동지청이 서류 검토에만 의존해 400만원을 받고 합의로 사건을 종결토록 한 것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장씨는 감금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장씨는 “증도는 육지나 마찬가지다. 전화 한 통화면 택시가 왔다 갔다 하는데 감금이 될 수 있느냐”며 “박씨도 마트, 병원 등을 자유롭게 다녀왔다”고 주장했다. 또 장씨는 지난해 7~8월 박씨가 지병으로 지역병원 등에서 치료받을 당시 박씨의 누나에게 직접 전화해 소식을 알렸고, 가족들로부터 박씨의 진료비 등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기 등 혐의로 장씨를 입건해 수사 중이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은 지역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을 정도였고 그만큼 경계해 왔다”며 “이번 사건은 과거 사건들과 비교할 때 수법 등 면에서 더 교묘해진 부분이 있고, 이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4년 염전노예 사건이 발생했던 지역에서 7년 만에 또다시 노동착취 의혹이 일면서 목포고용노동지청, 신안군, 지역 경찰 등 관계기관이 염전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신안군은 지난 7월부터 두 달 동안 장애인 노동자들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해 1차에서 의심사례 15건을 찾고도 2차 조사에서 ‘문제없음’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김강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정책국장은 “현장에서 탈출한 피해자의 증언은 7년 전과 단 하나 달라진 게 없다. 그동안 사업자 근로감독이나 인권 실태 점검이 이뤄진 것이 맞는지 묻고 싶다”며 “고용노동부와 자치단체 공무원들은 7년간 이 일을 정말 몰랐던 것인지, 알면서도 내버려 뒀는지 책임 소재를 찾아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김미진 인턴기자 박채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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