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필)의 1월 1일 신년 음악회는 자국인 오스트리아는 물론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다. 빈필의 홈그라운드인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리는 신년 음악회는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의 흥겨운 왈츠와 폴카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직접 볼 수 있는 티켓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지만 전 세계 40여 개국에 생중계되며 4억여 명의 시청자가 본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랐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신년 음악회가 1939년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무관중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오스트리아에서 코로나19 상황이 다소 완화되면서 대면 공연을 재개했던 빈필은 가을부터 다시 상황이 악화하자 크리스마스 콘서트 등 여러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불리는 신년 음악회를 취소할 수는 없었던 만큼 무관중으로나마 진행한 것이다.
신년 음악회의 지휘자는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리카르도 무티(80). 180년 전통의 빈필은 1954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사후 특정한 음악감독 없이 객원 지휘자 제도를 두고 있는데, 무티는 1971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처음 만난 이후 50년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둘의 관계는 무티가 생존 지휘자로는 가장 많은 6번이나 신년 음악회를 지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무티는 현지 인터뷰에서 “우리는 희망을 품을 필요가 있다. 1월 1일 음악이 없는 무지크페라인은 무덤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 세계에 부정적인 징조가 될 것이다”라며 빈필 신년 음악회의 의미를 강조한 바 있다.

무티가 이끄는 빈필이 한국을 찾았다.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15일 대전 예술의전당,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17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공연하는 일정이다. 그동안 빈필이나 무티나 각각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함께 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첫 자가격리 면제로 성사된 내한공연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빈필은 원래 일본, 한국, 중국을 잇는 아시아 투어를 기획했다. 하지만 엄격한 방역정책을 고수하는 중국이 상업적 공연이라는 이유로 불허하면서 위드 코로나에 도입한 일본과 한국에서만 성사됐다. 단원을 포함한 120명이 백신 접종을 완료한 빈필은 지난 3일 전세기로 일본에 도착해 도쿄 등 4개 도시에서 7회 공연을 마친 후 12일 한국에 들어왔다. 호텔 및 공연장 동선 이외에 외부 출입 금지 등을 조건으로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 단원 등을 포함하여 총 120명이 자가격리 면제를 승인받았다. 일본에서 무료 공개 리허설, 단원들의 마스터 클래스, 청소년 대상 특별 프로그램 등이 열린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호텔 및 공연장 동선 이외에 외부 출입 금지 등의 조건이 붙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백신 예방 접종이 시작되기 전인 11월 4개 도시 투어 공연을 무사히 치러냈던 자신감과 함께 위드 코로나가 한국보다 한 달여 먼저 시작한 것, 일본에 대한 무티 및 빈필의 오랜 친분이 작용한 듯하다.
빈필 내한 투어의 첫 무대가 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원래 객석은 약 3000석이지만 4연석까지 가능한 거리두기를 적용한 객석 2400석 모두 일찌감치 매진된 상태였다. 이날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35번 ‘하프너’ K.385와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Op.944였다. 두 작곡가 모두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빈에서 활동했다.

하프너 교향곡은 원래 잘츠부르크의 하프너 가문의 축전을 위해 썼던 세레나데를 나중에 편곡한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후기 걸작 교향곡들의 개막을 보여준다. 빈 고전파의 황금시대를 여는 하이든에서 영향을 받은 엄격한 구성 속에 활기 넘치는 선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레이트 교향곡은 슈베르트의 최후이자 최대 교향곡이다. 어렵다는 이유로 생전에 연주되지 못하다가 사망한 지 10년 뒤에 슈만이 발견한 뒤 멘델스존 지휘로 세상에 첫선을 보이게 됐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가교 역할을 했던 슈베르트의 작품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후배 작곡가들이 빛을 보게 만든 것이다.
빈필은 이날 ‘빈필 사운드(Wiener Klangstil)’로 불리는 특유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제대로 보여줬다. 빈필의 경우 관악기를 19세기 후반 빈에서 사용하던 악기의 전통을 유지하기 때문에 개량이 많이 이뤄진 요즘 악기를 쓰는 여타 오케스트라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빈필 사운드에 대해 ‘황금빛’ ‘벨벳 같다’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사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다목적 공연장인데다 규모가 크다 보니 빈필 사운드를 느끼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지만 빈필과 무티의 50년 호흡 앞에 문제 될 게 없었다. 무티는 청중의 환호에 콘서트 마지막 즈음 미소를 띠었으며 빈필 단원들은 발을 구르며 답례했다. 이어 빈필은 자존심과도 같은 왈츠를 콘서트 앙코르곡으로 마무리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경쾌한 ‘황제’ 왈츠 Op.437은 관객들이 코로나 팬데믹의 피로감을 잠시나마 잊도록 해줬다.
빈필은 이번 내한공연에서 각각 세종문화회관과 부산, 예술의전당과 대전으로 나누어 다른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예술의전당과 대전의 경우 슈베르트의 교향곡 4번 ‘비극적’ Op.417, 스트라빈스키의 디베르티멘토 ‘요정의 입맞춤’,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Op.90을 연주할 예정이다. 특히 부산 공연의 경우 백신 패스를 적용해 거리두기 없이 객석을 오픈하기로 했다. 백신 접종 완료자(2차 접종 후 2주 경과)와 48시간 내 PCR 검사 음성 확인자만 입장할 수 있다. 국내에서 유료 공연으로는 백신 패스가 처음 적용되는 사례여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