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은 7일(현지시간) “올겨울 난방비로 미국인들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겨울철 난방비 대란 현실화 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야기한 글로벌 공급망 대란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9일 발표되는 에너지 데이터를 지켜본 뒤 가격 안정 등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가 기존 증산 방침을 고수하기로 한 만큼 전략비축유(SPR) 방출 등 단기적 조치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비관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난방비와 휘발유 가격 동반 상승은 미국인들의 실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쳐 바이든 행정부 지지율 하락을 견인하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그랜홈 장관은 이날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럽에 비해 약간 유리한 위치에 있지만 같은 공급망 문제가 있다”며 “올해 난방비는 지난해보다 더 비쌀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가정의 경우 올겨울 난방비가 지난해보다 30%가량 더 오를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는 가정 당 난방비로 평균 746달러가량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소매 천연가스 가격은 2005~2006년 겨울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EIA는 프로판 54%, 가정용 난방유 43%, 전기 난방 6% 등 다른 연료도 올해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주요국들은 최근 수년간 석탄 화력 발전소를 폐쇄하고 천연가스 의존도를 높여왔다. 하지만 중국의 석탄 파동 이후 에너지 대란이 심화했고, 중국과 유럽 등의 수요가 급증해 가격이 크게 치솟았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량 감소도 영향을 미쳤다.
유가 상승세도 매섭다. 그랜홈 장관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갤런당 4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불행히도 OPEC이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42달러로 1년 전보다 60% 이상 급등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갤런당 4.44달러(지난 1일 기준 EIA 전국 휘발유 가격 데이터)까지 치솟았다. 휘발유 가격이 가장 비싼 샌프란시스코는 갤런당 평균 4.66달러에 달한다. 워싱턴DC도 3.79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65 달러)보다 43% 올랐다.
그런데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유가가 내년 6월까지 50% 더 오를 수 있다고 최근 예측했다. 그랜홈 장관 발언은 이런 예측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랜홈 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한)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 9일 나올 가격 데이터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로 SPR 방출, 정유업체에 대한 에탄올 혼합 요건 완화, 원유 수출 제한 등의 옵션을 꼽았다. 그랜홈 장관 역시 최근 한 세미나에서 가격 상승 억제를 위한 수단으로 이런 선택지가 거론되자 “검토 중인 수단”이라고 말했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국제비상경제권법은 미국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 발생 시 원유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원유 수출로 인해 미국 노동자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벤 케이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배럴당 80달러 수준은 국가비상사태를 구성하는 요건이 되기 어렵다. 수출을 금지하면 미 정유업체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동부해안 정유소는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해 소비자에게 높은 비용을 전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케이힐 선임연구원은 “원유 수출 금지는 재앙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R 방출은 좀 더 현실적이다. 지난주 OPEC+의 추가 증산 거부 결정에도 국제유가는 오히려 소폭 하락했는데, 이는 시장이 백악관의 SPR 방출 조치 시행 가능성 등을 높게 봤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하지만 SPR 방출은 단기 시장 혼란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이어서 유가 상승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케이힐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휘발유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올겨울 평년보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면 예상치를 넘는 난방비 폭등을 목격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에버소스에너지는 최저기온이 이미 영하로 내려간 코네티컷주 지역 난방비가 이달 14%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매사추세츠의 경우 최대 21%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스트 데일리 캐피털 어드바이저스 켄드릭 레아 분석가는 “올겨울이 정말 추워진다면 가격은 극단적으로 급등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는 “소비자 물가 상승과 경기 회복에 따른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