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6일(현지시간) ‘종전선언’ 시기나 조건에 대해 한·미가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서두르며 적극적 행보를 펼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은 신중론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전제조건 없는 대화’ 입장을 고수하며 북한이 먼저 외교 테이블로 나오기를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재차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이 대북 정책에 있어 종전선언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느냐.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한·미)는 각 단계별로 정확한 순서, 시기, 조건에 관해 다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외교를 통해서만 효과적인 진전을 이뤄낼 수 있고, 외교는 억지력과 짝을 이뤄야 한다는 전략적 이니셔티브에 대해 (한국과) 근본적으로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뤄진 한·미 북핵 수석대표 간 협의에 대해서는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미 고위 관계자가 종전선언에 대한 자국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다. 한국은 그간 수차례 미국에 종전선언에 대한 아이디어와 전략적 입장을 설명했지만, 미국은 “계속 논의하겠다”는 원론적 반응만 내왔다. 성 김 미 대북특별대표는 최근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협의 후 “종전선언 제안을 포함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탐색하기 위해 계속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만 언급했다.
한국은 종전선언을 위한 구체적 진전을 위해 미국을 계속 설득하고 있지만, 미국은 파급 효과를 걱정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백악관은 특히 종전선언이 주한미군과 전략무기 철수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구체적 문구 등 세부 사항에 관한 법률 검토도 진행 중이다. 종전선언이 동북아 안보지형 전체에 실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그 반도우 케이토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최근 내셔널인터리스트 칼럼에서 “(종전선언으로) 전쟁이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에서 계속되는 군사 훈련 및 배치, 대북 제재 반대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종전선언은 법률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인 선언’이라고 보는 한국 입장과는 결의 다르다. 한국은 종전선언이 대화 재개를 위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제안도 미국에 전달했다.
설리번 보좌관 발언은 종전선언에 대한 이러한 한·미 간 온도 차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임기 말 상황을 감안해 내년 대선 때까지 더욱 신중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미국 내 일부 기류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설리번 보좌관이 ‘외교와 억지력’을 함께 언급한 것 역시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북 제재 완화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은 최근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이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언급하자 “북한 정권 자체가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다. 북한에 대한 안보리 결의는 유효하고, 회원국은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과 관련해 광범위하게 말해왔던 것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 외교가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일련의 메시지를 통해 (대화 제의에 대한)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말했다. ‘전제조건 없는 대화’라는 기존 접근법을 강조한 것이다.
한편, 토머스 스워지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이석현 민주평통 수석부회장을 만나 “종전선언등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적극 지지한다”며 “종전선언이 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고, 주한미국은 북한에 대한 억제를 넘어 동북아 안녕과 힘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민주평통 측이 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