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도발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이며 미국을 자극하고 있지만, 미국은 좀체 반응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대북 정책 검토를 완료한 뒤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접근’을 강조하며 ‘전제 조건 없는 대화’만 반복해 제안하고 있다.
북한은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언급하는 등 평화 제스처도 동시에 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비핵화와 무관한 인도적 지원만 거론할 뿐 제재 완화 등의 다른 조치는 일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북한 양측이 서로의 의도와 한계를 파악하기 위한 탐색전을 지속, 단기간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로버트 매닝 전 미 국무부 선임자문관은 29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만나자고 말했지만, 지금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전제 조건을 제안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북한은 유엔에서 연설하는 동안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평화를 언급하며 동시에 긴장을 높이는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미국이 반응하기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닝 자문관은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미끼를 물 것 같지 않다. 남북 간, 혹은 북·미 간 진지한 외교를 볼 수 있을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실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외교적 접근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남북연락선 복원 등에 관한 북한 성명에 대한 서면질의에 “미국은 북한에 적대적 의도를 품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이 우리 접촉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남북 협력을 강력히 지지하며 (남북 협력이) 한반도에 좀 더 안정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보니 젠킨스 미국 국무부 국제안보·군축차관은 이날 스위스에서 열린 ‘안보정책 제네바센터’ 행사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외교 증진을 계속 시도하고 있으며, 그들(북한)이 테이블로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 정부 당국자는 전날 북한이 최근 시험 발사한 무기가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이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라는 반응을 내놨지만, 하루 만에 다시 ‘외교적 접근’ 전략으로 돌아갔다. 성 김 미 대북특별대표도 북한 미사일 발사를 유엔 결의 위반으로 규정하며 규탄했지만, “우리가 외교적 길을 계속 추구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며 거듭 대화를 촉구했다.
폴리티코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지 않는 한 긴장을 크게 고조시키지 않는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을 바이든 행정부가 암묵적으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계속 고조시킬 경우 ‘대응’ 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북한이 일상적으로 유엔 결의를 위반했어도 새로운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의 행동은 미국의 구체적 반응을 얻어내기 위한 과정의 일환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을 떠보고 있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미국이 규탄 성명을 내면서도 대화를 언급한 점을 거론하며 “만약 당신이 김정은이라면, 추가적인 제재가 거의 혹은 전혀 없이 대부분의 무기를 ICBM까지 시험할 수 있는 승인을 얻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협조를 촉구하기 시작할 때까지 점진적으로 긴장을 높이는 전략을 강화하며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는 전문가 관측을 전했다.
북한이 문재인정부의 임기 말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이날 화상 좌담회에서 “김정은은 낮은 강도의 도발 실험을 번갈아 하고 동시에 피스 필러(peace feeler·평화 협상 타진)를 보내는 등 혼합된 신호를 보낼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협상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동맹국을 분열시키려는 벼랑 끝 전술”이라고 설명했다.
테리 선임연구원은 “북한과 돌파구를 마련할 시간이 부족한 문재인정부와 바이든 행정부 사이에 균열이 있는지, 혹은 또 긴장감을 이용해 서울이 워싱턴을 압박할 수 있는지 등을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며 “(이런 전술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이날 “북남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나가는가 아니면 계속 지금과 같은 악화 상태가 지속되는가 하는 것이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며 압박한 것도 같은 취지로 해석된다.
폴리티코도 “북한은 남북 교섭을 위한 한국의 열망을 이용, 바이든 행정부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도록 서울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는 명백히 외부의 양보를 얻기 위해 평화 제안과 무기 시위를 혼합하는 (과거) 패턴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했다.

시드니 사일러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은 “북한은 ‘자신만의 길’ 유형을 제시했다. 외교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협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고립했다. 그 속에서 (미사일) 프로그램을 확장해 왔다”며 “북한은 전략적으로 한국과 지속해서 개선된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고 말했다.
사일러 담당관은 “사람들이 북한이 언제 미사일 발사시험을 하고 다음 정상회담이 언제일지에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좀 더 장기적인 전략적 과제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AFP통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30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관한 비공개 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속보] 北김정은 “10월초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의사”
▶북 극초음속미사일에 미 “정보 파악중”-유엔 “충격적”
▶김여정, 北국무위원 승진…김덕훈 국무위 부위원장
▶[속보] 美국무부 “北에 적대의도 없어…긍정반응 희망”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