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년간 가정 밖 남자 청소년의 임시보호소 역할을 해온 서울 강남구 청소년쉼터가 폭등한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오는 12월 문을 닫는다. 전셋값 폭등에 더는 들어갈 건물을 찾지 못함에 따라 거리의 청소년을 보호할 안전장치 하나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강남구 청소년쉼터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27일 강남구청으로부터 시설을 폐쇄한다는 공문을 전달받았다”면서 “공문에는 구체적인 폐쇄 사유가 적시되어있지 않았으며 이전에 구청과 쉼터 간의 구두 대화에서도 폐쇄조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강남구청이 내놓은 폐쇄 이유에 대한 설명은 ‘시설이 이전할 장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폐쇄 위기에 처한 강남구 청소년쉼터 상황은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부동산값 폭등으로 인한 사회복지시설(청소년쉼터) 폐쇄를 막아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공론화됐다. 당시 청원인은 글에서 “가정 밖 청소년들의 인권 보호를 위하여 강남구 청소년쉼터 존치 및 지속 운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간 강남구 청소년쉼터는 강남구로부터 운영위탁을 받은 태화복지재단이 무상으로 제공한 복지관 건물 6층을 시설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재단이 내부 사정으로 위탁운영을 종료키로 하면서부터였다. 종료가 결정된 2018년부터 새 장소를 찾고자 했지만, 장소를 고르긴 어려웠다.
이에 부동산 가격 폭등이 문제를 더 키웠다. 청소년복지 지원법 시행령 제17조에 따르면 청소년 복지시설은 입소 1인당 11㎡ 이상의 공간을 확보해야 해서 정원이 15명인 강남구 청소년복지센터는 165㎡, 약 50평 정도의 크기를 갖춘 부지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강남구청은 지난해 12월 구의회 심의를 통해 쉼터 임차보증금 예산을 9억원으로 책정했다. 청소년쉼터를 이전하려면 강남에서 9억원에 50평의 공간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비슷한 평형 공간의 시세가 약 15~20억으로 형성돼있는 강남에서 청소년 쉼터가 새로운 터를 잡기란 불가능했다.
청소년쉼터가 새로운 장소를 찾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는 청소년쉼터에 대한 선입견이다. 집 밖 청소년을 위한 쉼터가 ‘혐오시설’로 비치기 때문에 청소년쉼터에 공간을 빌려주기를 꺼린다. 강남구 청소년쉼터 측 관계자는 “청소년쉼터에 전세를 주는 것에 민원이 한 건이라도 생기면 장소를 얻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비용 문제는 물론 사회적인 편견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에 청소년 인권 보호 차원에서 꼭 필요한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남구 청소년쉼터는 1998년 서울의 1호 구립 청소년 복지시설로 개소했다. 10~19세 남자 청소년을 위한 단기 쉼터로, 3개월에서 최장 9개월까지 머무를 수 있다. 지금까지 3260명이 이곳을 거쳐 갔다. 가정에서 지속한 학대를 견디지 못해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이 상당수다. 올 한해만 해도 이곳에 입소한 청소년 절반 이상이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현 상태로는 오는 12월 시설 폐쇄가 불가피해 이대로 가면 청소년쉼터에 머무르던 청소년들은 당장 거리로 나가야 하지만 뾰족한 수는 아직 없다.
이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자취를 시작하거나 빠져나왔던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다른 시설로 보내지는 것뿐인데 다른 시설도 부족해서다.
현재 서울시엔 이곳 외에 남자 청소년을 단기 보호하는 쉼터는 단 두 곳뿐이다. 8명 수용 가능한 강서청소년쉼터와 20명 수용 가능한 신림청소년쉼터다. 총 정원 28명은 서울 시내에서 쉼터가 있어야 하는 가정 밖 청소년의 숫자에 턱없이 모자라다.
강남구 청소년쉼터 측은 “강서·신림은 서울의 서쪽에 있는 쉼터이기 때문에 강남·서초·송파 같은 지역이나 중구·강북에서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 발생한 경우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상태”라며 “해당 청소년들이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학대나 중장기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 처해 있을 경우 이 친구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제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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