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세 박모씨는 지난해 11월 19일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모 살균제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다 폭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집안의 큰아들로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국문과 출신으로 시인을 꿈꿨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서둘러 들어간 회사였다.
사고가 난 그날 제조업체 공장에서 화학물질 배합 기계인 ‘교반기’ 수리작업이 있었다. 당시 박씨는 작업을 검수하며 다른 동료들을 보조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작업 중 가해진 충격 때문에 산화성 물질인 아염소산나트륨이 가연성 물질인 한천 등과 반응했고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에는 지정 수량의 4배가 넘는 아염소산나트륨(약 240㎏)이 있었고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제조업체 대표 A씨(65)와 화학물질 배합 기계 납품업체 대표 B씨(58)는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7일 열린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우리 가족의 시간은 사고가 난 그날에 멈춰 있습니다”
박씨의 유족은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명이 숨졌다. 엄청난 폭발 사고였는데 징역 1년과 8개월이 용납할 수 있는 처분인가”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박씨의 외삼촌 C씨는 “우리는 아직도 사고 당일에 멈춰 있다”며 “누나는 재판 결과를 받은 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조카가 썼던 방은 아직도 그대로다. 하나도 안 치워져 있다. 누나와 매형은 거의 매일 조카가 잠들어 있는 가족 공원에 찾아가 슬퍼한다”면서 “합당한 처벌로 정신적으로나마 위안받기를 기대했는데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어하는 누나에게 ‘판결은 우리 능력 밖이다. 어쨌든 일차적으로 업체 대표들에게 벌을 준 것 아니냐’라고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C씨는 숨진 박씨에 대해 “기특한 조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사정 때문에 취업을 했다”며 “취업하고 1년도 안 돼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얼마나 기막힐 노릇이냐”고 되물었다.
C씨는 1심 판결에 대해선 “검찰 구형은 3년6개월이었다. 그런데 1년이라니 그 차이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범죄 사실이 없고, 일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감형이 크다니 억울하다”고 했다. C씨는 “액수를 떠나 합의를 통해 사건을 매듭짓고자 했다”며 “하지만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록 합의금에 절반에 달하는 금액을 아직 받지 못했다”고 했다.
C씨는 “합의도 이행되지 않고, 제대로 된 법적 처벌도 없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다”며 “더군다나 A씨와 B씨는 형이 과하다며 재판부에 항소했다. 반성은커녕 자신들의 잘못에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인천지법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다만 별도의 항소 이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검찰도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마지막으로 C씨는 “내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처벌이 약하면 어느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하겠느냐”며 “피고인들이 죗값을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조카와 같은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82년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는 징역 7년 이하 또는 1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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