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이게 푸르르게…잘 만든 숲이 도시를 바꾼다

Է:2021-09-01 05:31
:2021-09-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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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청정 제주, 숲이 도시의 경쟁력이다’
⑵공간을 변화시키는 숲의 힘

지난 달 한 무리의 가족이 무더위를 피해 제주시 한라수목원을 걷고 있다. 문정임 기자

숲은 무더운 여름 행인에게 한 평의 시원한 그늘을 내어준다. 푸른 빛과 피톤치드로 사람의 심신을 안정시키고 도심의 온도를 낮추며 대기 중의 먼지도 흡착한다. 이로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숲은 ‘초록 DNA’를 가진 현대인을 모여들게 하고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어줌으로써 도시의 풍경을 전혀 새롭게 바꿔 놓기도 한다.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난지도 월드컵공원
서울 마포구 한강 변에 자리한 난지도. 1970년대 말까지 이곳은 고니와 흰뺨검둥오리 등 수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 드는 자연의 보고였다.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난지도가 좋은 풍수 조건을 가진 땅이라고 기록돼 있다.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의 한성부 지도인 ‘경조 오부도’에는 꽃이 피어있는 섬이라는 의미의 ‘중초도’로 기재됐다. 난지도는 구한말까지도 중초도로 불렸다. 나룻배로 접근할 수 있는 섬이었고 1950~1960년대 상암동 주민들은 이곳을 찾아 야유회를 즐겼다.
15년 간 서울시 쓰레기를 매립한 난지도가 도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문정임 기자

월드컵공원 하늘공원 정상부에서 내려다본 풍경. 하늘공원은 98m 높이로 하단부 전체가 매립 쓰레기다. 문정임 기자


월드컵공원 산책로. 수종에 따라 다른 풍경이 만들어진다. 문정임 기자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 성장기를 맞이하면서 서울 인구는 1959년 100만명에서 1968년 400만명으로 급증한다. 서울시는 인구가 폭증하면서 동시에 늘어나는 쓰레기를 처리할 곳을 찾게 되었는데 그 곳이 난지도였다.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 간 서울시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쓰레기가 묻혔다. 당초 서울시는 매립장의 높이를 45m까지 계획했으나 새 매립지 건설이 늦어지면서 95m 높이의 쓰레기 산 2개가 생겨났다.

이 무렵 쓰인 소설 ‘난지도’(정연희)는 당시 난지도의 처참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쓰레기 산 위로 쏟아져 내리는 불볕은 저주였다. 인간의 삶에서 부스러기가 되어 나온 주검들의 산이다. 그 산에는 살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맹렬하게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썩어가는 일과 썩어가는 냄새 뿐이다. 그것만이 죽음도 정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1993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포화되면서 폐쇄됐다. 3년 뒤 2002 월드컵 한국·일본 공동 개최가 결정되자 서울시는 이를 기념해 난지도를 복원하기로 결정한다.

죽음의 땅에 생명의 옷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시는 쓰레기 매립층 위에 겹겹이 흙을 쌓아 매립 가스를 억제하고 침출수가 토양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립지 지하 사방에 총 6㎞가 넘는 차수벽을 설치했다. 상부에 흙을 쌓고 총 228만㎡ 면적에 녹화 사업을 추진해 식물과 야생 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생태 환경을 만들어갔다. 인공 녹지대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적으로 천이(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 군집의 변화)가 이뤄졌다. 생태계 모니터링에서 확인된 생물 종이 2000년 559종에서 2019년 1381종으로 20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붉은배새매 등 천연기념물과 큰고니·삵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 줄장지뱀과 맹꽁이 등의서울시 보호종도 다수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 완공된 월드컵공원에는 100m 높이의 쓰레기 산 2곳을 포함해 모두 4개의 테마 공원이 들어섰다. 누에·반딧불이 등을 소재로 한 생태관과 낮에는 천문도서관, 밤에는 별자리와 행성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교육장, 유아숲체험원, 모험놀이터, 창작스튜디오, 여가센터 등 다양한 복합문화공간도 조성됐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외면하던 쓰레기 매립장은 거대한 숲을 조성함으로써 맹꽁이가 울고 노루가 뛰어다니는 생명의 땅으로 변신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시민들에게 자연 쉼터를 제공하게 된 월드컵공원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의 기운을 만끽하기 위한 시민들이 하루 평균 2만5000명, 매년 920만명씩 이어지고 있다.
한 시민이 광주 푸른길공원을 걷고 있다. (사)푸른길 제공

광주 푸른길공원 일부 구간의 모습. 푸른길공원은 기차 운행이 중단된 광주역~남광주역~효천역 구간에 약 8.1km 길이이 조성됐다. 하루 이용자는 2만명에 이른다. (사)푸른길 제공

‘슬럼화된 원도심에 생기를’ 광주 푸른길공원
광주시 동구에서 남구로 이어지는 푸른길공원은 1934년 개통된 경전선 도심구간이 도시외곽으로 이설되면서 8.1㎞의 길이(전체 면적 12만227㎡)로 조성된 도시숲길이다.

경전선은 경상남도 밀양시 삼량진에서 광주를 연결하며 영호남 교류 확대와 남부지방의 산업·경제·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철도변 주민들의 주거 여건을 낙후시켰다.

폐선된 광주역에서 효천역까지의 공간은 읍성이 있던 광주의 원도심. 낡은 동네에 도심철도가 거주 환경을 더 악화하자 주민과 시민사회, 정치권에서는 철도 이설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1990년 철도 이설이 결정되고 주차장 건설을 원하는 광주시와 공원 조성을 요구하는 주민간 대립이 수년간 이어졌다. 2000년 광주시는 공원화를 결정했다. 주민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행정의 움직임은 더뎠다. 시민들이 먼저 움직였다.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찰나 지역 기업이 일부 구역을 공원화해 시에 기부채납하며 행정을 압박했다. 시민사회단체는 헌수 기금을 모으고 ‘내 나무’ 심기 운동을 벌이며 푸른길공원 조성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 2014년 마침내 광주시 구도심에 전국 최초로 폐선 부지를 활용한 선형 도시공원이 조성됐다.

공원 주변으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던 주민들이 산책을 하며 동네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숲으로 사람들이 모이자 주변부에 상점과 공방 등 문화 자원이 하나둘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일본 지주들이 거주하던 동명동은 주말마다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계림동 독립서점 거리에도 사람들이 늘었다.

주민들의 삶도 풍요로워졌다. 철도가 걷히면서 소음과 분진, 사고 위험이 줄었다. 그 자리에 숲이 들어서면서 노쇠해가던 도시에 점점 생동감이 얹혔다.

일대 행정동의 도시 재생도 탄력 받고 있다. 푸른길공원이 조성된 뒤 동구 계림동과 광산구 산수동, 광주역, 백운광장 일대에는 낡은 주택을 걷어내는 재개발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인구도 조금씩 늘고 있다. 계림동은 공원이 조성되기 전인 2005년 1만7784명에서 2020년 1만8182명으로, 산수동은 2005년 2만3174명에서 2010년 1만8914명으로 20% 가까이 감소한 뒤 2020년 1만9251명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

광주 푸른길공원은 낡은 도심 시설을 숲으로 조성해 정주 여건을 개선해낸 사례다. 주민 스스로 철도로 인한 주거 환경 악화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환경을 결정하는 정책적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 7월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 산책로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문정임 기자

보행자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경의선숲길공원에는 일정 구간마다 벤치 등 휴게시설이 설치돼 있다. 백서에서 발췌

상공에서 바라본 경의선숲길공원. 도시숲이 적은 서울 마포구 지역에 주요 녹지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백서에서 발췌

모든 이들을 위한 산책로 기능에 집중, 경의선숲길공원
서울 경의선숲길공원도 광주 푸른길공원과 마찬가지로 폐선부지에 조성된 선형 공원이다.

경의선은 1906년 서울 용산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철길로 개통돼 오랜 시간 서울 시민의 애환과 추억이 깃들었으나 2005년 용산~가좌를 연결하는 용산선 구간이 지하화되면서 지상부 6.3㎞가 나지로 방치되자 서울시가 도시재생을 목표로 시민공원을 조성했다.

낙후된 철길은 다른 한편 일반 도시지역과 다른 차별화된 지역성을 갖게 했다. 녹지면적이 부족한 마포구는 서울시에 공원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2012년 마포구 대흥동 일대를 시작으로 2016년까지 연남동, 염리동, 새창고개 등 전 구간 공사가 완료됐다.

서울시는 경의선숲길공원을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설계했다. 어른과 아이, 어른과 어른, 휠체어와 보행자가 함께 걸을 수 있도록 그에 적정한 도로 폭을 설정하고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병행 개설했다.

걸으면서 충분히 쉬고 소통할 수 있도록 일정 구간마다 휴게 시설을 설치했다. 느티나무·메타세콰이어·단풍나무 등 경관 창출 효과가 큰 수목을 식재하고 배롱나무·황매화·명자나무 등 계절감이 풍부한 특화 수종을 수목 주변에 배치해 도심 산책로를 더 풍성한 녹지 공간으로 채웠다.

경의선숲길공원의 가장 큰 특징은 물길이다. 경의선을 지하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지하 용출수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길을 따라 흐르게 함으로써 공원의 생태성을 높이고 건조한 도시에 풍부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인위적 시설물 도입을 최소화하고 녹지 확보에 중점을 뒀다. 주변 주택과의 연결성 강화에도 주력했다.

홍대입구역에서 홍제천까지 이어지는 연남동 구간(1.3㎞)과 같이 사람들이 특히 몰리는 구역에는 유동 인구가 늘면서 소음 민원이 제기되고 지역이 과잉 상업화되며 주택이나 세탁소·슈퍼마켓과 같이 정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가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마포 일대의 집값이 전체적으로 오르면서 돈이 없는 임차인들이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하는 상황도 빚어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도시 재생이 쇠퇴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사업인 만큼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사람과 돈이 몰리고 결과적으로 원주민이 밀려나게 현상)은 하나의 후속 현상으로 우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에 적합한 대응 수단을 찾는 작업은 별도로 필요하다.
부산시민공원. 문정임 기자

한 시민이 부산시민공원 산책로를 걷고 있다. 문정임 기자

부산시민공원 벤치.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에서 쓰던 유류탱크를 재활용해 장소의 역사성을 살렸다. 문정임 기자

숲세권의 매력을 알려준 부산시민공원
부산진구에 자리한 부산시민공원은 일제가 경마장으로 사용한 이후 한국전쟁 시기 주한미군부산기지 사령부(캠프 하야리아)가 주둔하는 등 우리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 속에 지난 100년 간 이방인의 공간으로 남아있던 곳을 부산시가 돌려받아 도시공원으로 조성했다.

국·공유지 47만3911㎡에 국비와 시비 6679억원을 투입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시민공원을 완성했다.

교목 1만4000그루 등 총 110만 그루의 수목을 식재하고 수경시설과 휴양시설, 운동시설을 갖췄다. 넓은 부지에 시원한 연못, 계절마다 각기 다른 질감을 뽐내는 나무와 미로정원, 북카페, 극장, 뽀로로도서관 등 다양한 시설도 설치했다.

공원이 시민들의 문화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부산진구가 부산시 도심 개발의 새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도심 허파’ 부산시민공원 주변에는 숲세권을 활용해 분양 가치를 높이려는 민간 아파트들의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부산진구 범전동과 연지동, 부암동 등 부산시민공원 주변으로 8건의 주택건설사업이 진행돼 총 2217세대 입주가 예정돼 있다. 총 9000세대에 달하는 부산시민공원 재정비촉진지구사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이주, 철거를 거쳐 빠르면 2023년부터 일반 분양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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