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길 항아리 속 금속활자· 총통·종…피난길 시전 상인이 묻었을까

Է:2021-06-29 15:09
:2021-06-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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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정시의 및 동종 출토 모습.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이 29일 공개한 서울 종로구 인사동 79번지 옛 피맛길 옆 공평 구역 유적에서는 깨진 항아리에서 1600점의 조선 초기 금속활자 등이 무더기로 나왔다. 또 총통, 자동 물시계 주전과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등 조선 시대 과학기술을 집대성한 유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항아리 내부 금속활자 및 주전 출토 상태. 문화재청 제공

그런데 누가 언제 왜 이 유물을 땅속 깊이 항아리에 묻었을까. 발굴된 지역은 조선 시대 생활지층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있는 땅속 깊이 16세기 지층이다.

유물이 묻힌 시점은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으로 미뤄 1588년 이후로 추정된다. 이후 땅속에 오래도록 묻혀있다가 433년 만에 21세기 후손에 의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들 유물은 세종 때의 찬란했던 인쇄문화, 세계를 압도했던 과학기술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모두 구리(동)로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금속활자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 항아리 안과 옆에 의도적으로 묻어둔 흔적이 역력하다고 발굴을 책임졌던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말했다.

오 원장은 “동은 조선 시대 아주 비싼 금속이었다. 총통 등 유물이 고의로 절단돼 묻혀 있는 것으로 봐서 아주 급한 상황에서 금붙이처럼 이를 묻었다가 이후 꺼내지 못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실용적 가치가 아니라 재화적 가치 때문에 이를 묻었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 공평 구역 유적은 관가 건물터가 아니고 시전 관련 중인 등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등 전란이 있었던 16세기의 유물을 발굴하면 항아리 등에 이처럼 고철이나 제기 등을 묻어둔 경우가 왕왕 발견된 적이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세종 때 한글 금속활자 등 1600여점, 인사동 항아리서 쏟아졌다
433년전 급히 묻은 항아리서 조선 초기 활자 1600점 우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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