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신앙과 페미니즘을 이유로 현역병 입대를 거부해온 30대 남성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니면서 개인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에게 무죄를 확정했던 전례는 지난 2월 있었다. 다만 이때는 예비군 훈련 거부를 인정한 것이고, 현역 입영 거부까지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34)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24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A씨의 현역 입영 거부를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봤다. “A씨의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다.
A씨는 2017년 11월부터 현역 입영을 거부해 기소됐고 재판 과정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그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니었고, 대한성공회 교인이다. A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획일적인 입시교육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집단문화에 반감을 느꼈고, 이 과정에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게 됐다”고 했다.
A씨는 실제로 이스라엘의 무력 침공을 반대하는 기독교단체 긴급 기도회나 한국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 반대 시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수요 시위 등에 참여했다. 성소수자인 그는 자신을 ‘퀴어 페미니스트’로 규정했다. “다양성을 파괴하고 차별과 위계로 구축되는 군대 체제와 생물학적 성으로 자신을 규정짓는 국가권력을 용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 여부에 대해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는 A씨에 대한 1심과 2심 선고 사이에 큰 전기가 있었다고 분석한다.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헌법불합치 결정, 대법원의 종교적 병역거부 인정 등이 1심 이후 내려졌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결국 A씨의 신념을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A씨가 형사처벌을 감수하며 입영을 거부한 점, 36개월간의 대체복무 의지를 보인 점도 판단에 고려됐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상태에서 본인의 비폭력주의·반전주의 신념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무죄가 확정된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단순히 기독교 신앙(교리)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사건은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사안과는 구별된다”고 했다.
A씨 측 임재성 변호사는 대법원 선고 뒤 기자회견을 열어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도 매우 좁은 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다만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 법조인은 “종교 이외로 양심 판단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신중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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