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뒤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종일 충격에 빠졌다. A씨의 지인이 불륜을 저지른 상황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 캡처 사진이 여러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새벽 시간대부터 공유된 탓이다. 단체대화방에서는 지인의 불륜을 비난하고 욕하는 대화가 이어졌고, 지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 등 신상정보도 공유됐다. A씨는 23일 “단체대화방에서 오가는 지인의 불륜 소식과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 비난과 조롱을 보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며 “실시간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인의 사생활을 알게 되는 것 같아 충격이 컸고, 지인이 잘못된 선택을 할까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나 카카오톡과 같은 개인 메신저를 통해 타인의 불륜 사실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일부에선 당사자가 상대 측의 불륜 사실을 지인들이나 SNS에게 알리는 망신주기가 일종의 ‘사적 제재’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불륜 사실을 폭로하는 행위가 심해진 것은 ‘간통죄 폐지’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2015년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불륜은 법적인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면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불륜이 범죄에 가까운 부도덕한 행위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이에 당사자들은 민사소송으로 대응하는 것과 별개로 주변 지인들이나 대중들에게 자신이 불륜의 피해자라고 알리고, 상대의 죄가 얼마나 큰지 묻는 ‘여론재판’식 대응을 선택하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간통죄 폐지로 사법적인 처벌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를 대체할 대안적인 감시시스템이나 사적 제재로서 불륜 폭로를 활용하는 모습”이라며 “상대 측이 저지른 불륜이 불공정한 행위라는 점을 직접 알리고 이를 대중들이 평가내리도록 하는 게 정당한 제재 과정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대중들은 폭로된 불륜에 대해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비난을 가하면서 불륜 행위를 한 이들을 심판했다는 성취감을 얻는 양상이기도 하다. 김상학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인의 불륜 사실을 전해 듣고 전하는 과정에서 상당수는 본인이 사생활 침해를 전파하는 데 대한 불편이나 꺼림직함을 느끼게 마련이지만 타인의 부도덕함을 평가하면 그 책임감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도 불륜 생중계 현상이 나타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불륜을 일방적으로 폭로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까지 덧붙이면서도 ‘아니면 말고’식으로 흥밋거리 취급하는 것이다. 최근 한 제조업체에서 아내가 외박을 한 남편을 찾으러 갔다가 불륜 여성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식의 폭로가 당사자들의 사진과 이름, 근무지, 가족관계 등의 개인 신상정보와 함께 SNS로 퍼졌다. 김 교수는 “SNS를 통하면 익명성이 일부 보장되고 불특정 다수가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도덕한 행위를 알릴 때 갖는 부담감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불륜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행위라고는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이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될 정도로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행위는 제재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폭로에 허위 정보나 불필요한 개인신상 정보들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면 쉽게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 교수는 “이미 여론의 뭇매를 맞은 개인은 쉽게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다.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침해에 가까운 폭로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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