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센터 건립까지… 이름만 균형발전, 내용은 나 몰라라 [이슈&탐사]

Է:2021-06-21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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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조 균형발전예산 대해부] ④ 태생적 한계

수도권에 인구와 기업이 몰리고 지방은 소멸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논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정부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참여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웠고 정부 예산에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가 있습니다. 해마다 약 10조원이 ‘균형발전’ 명분으로 쓰입니다. 꽤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을까요. 국민일보 이슈&탐사2팀은 정부 균형발전예산에 관한 심층분석 기사를 5회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현판식이 2018년 3월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리고 있다. 2003년 참여정부 시절 출범한 균형위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9년 지역발전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문재인정부 이후 9년 만에 원래의 명칭을 되찾았다. 뉴시스

①유기동물을 구조하고 돌보는 경기도 동물보호센터 ②제주도에서 열리는 보훈의 달 기념행사 ③전남 완도 무역항 직원에게 지급하는 복지 포인트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①②③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정부 예산 가운데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가 투입된다는 것이다. 균형발전예산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지역 간 격차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2005년 만들어진 예산이다. ①②③은 모두 균형발전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왜 이런 일에 균형발전예산이 쓰이는 걸까.

동물보호센터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균형발전사업인 ‘반려동물 산업육성 사업’ 중 반려동물인프라구축의 일환이다. 유실·유기동물을 돌보는 센터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 건립·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올해 균형발전예산 35억2600여만원을 이 사업에 투입한다.

제주도 보훈 행사는 국가보훈처가 균형발전예산의 제주계정으로 추진하는 사업의 일부다. 모두 21억원 규모로 관용차량 유지비 등 청사 관리에 1억8000만원, 보훈의 달 정부 행사 등 기념·선양사업에 3400만원이 잡혀 있다.

완도 무역항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복지 포인트는 전라남도가 편성한 항만 경비 가운데 일부다. 전라남도는 완도항 경비 비용 1억3000여만원을 온전히 균형발전예산으로 편성했다. 항만 운영을 위한 기본경비로 8000만원을 쓰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10여명의 성과상여금으로 2400만원을, 공무원맞춤형 복지포인트로 710만원을 사용할 예정이다.

세 예산 모두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완도 무역항 복지 포인트에 대해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지출 근거가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완도항을 포함한 전국 17개 지방관리무역항의 운영비를 균형발전예산으로 일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37억원이 책정됐다.

균형발전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균형발전 이름으로 관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은 이밖에도 많다. 국가균형발전종합정보시스템 ‘나비스’(NABIS)의 균형발전 사업 내역을 보면 ‘수출용 신형연구로 개발 및 실증(R&D)’ ‘5G 시험망 기반 테스트베드 구축’ 등이 올라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취지에 안 맞는 사업들이 (균형발전예산에) 우르르 들어와 있다”면서 “현재의 균형발전 사업들은 각 부처가 원래 하려고 했던 사업을 균형발전예산으로 잡아놓은 것들이다. 균형발전특별회계에 있든 일반회계에 있든 어차피 돈을 써야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 구상은 달랐다

균형발전예산은 온전히 균형발전에 쓰이기 힘든 한계를 갖고 태어났다. 김재훈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교수가 2007년 작성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평가와 향후 과제’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애초 균형발전을 위해 재원 5조원을 별도로 조성해 회계를 마련하려 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마련하기에는 너무 큰돈이었다. 당시 기획예산처의 반대로 5조원 조성은 무산됐다.

참여정부는 지역 관련 사업을 수행하는 7개의 회계를 조정·통합해 균형발전예산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3조6000억원 규모의 국고보조금 사업 126개가 균형발전예산으로 이관됐다. 김 교수 보고서는 “사업 내용이나 예산은 전과 같으면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라는 타이틀만 달았다”고 평가했다.

짜깁기처럼 만들어진 균형발전예산의 구성은 그동안 큰 변화 없이 관성적으로 유지됐다. 16년간 균형발전예산 144조가 투입됐지만 지역 간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진 이유다. 김 교수는 “균형발전예산의 명칭과 실제 하는 일이 다르다. (균형발전에) 별 효과가 없는 사업을 모아놓고 균형발전에 10조원씩 투자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균형발전예산은 태생적 문제뿐 아니라 구조적 문제도 지니고 있다. 이 예산은 지역자율계정, 지역지원계정, 세종특별자치시계정, 제주특별자치도계정 4개로 나뉘어 운영된다. 지역자율계정은 정해진 18개 포괄보조사업 중 특정 사업을 각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하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집행된다. 지역지원계정으로는 여러 권역의 협력·지원이 필요한 대규모 사업을 한다. 자율계정과 달리 중앙부처가 직접 예산을 편성한다. 2019년에는 자율계정이 약 5조5000억원, 지원계정이 약 4조7000억원이었다. 세종 및 제주계정은 특별자치시·도를 위해 별도로 편성한 회계다.

문제는 지원계정 사업뿐 아니라 자율계정 사업도 중앙부처가 기획한 틀 안에서 운영된다는 것이다. 각 지자체에 자율성을 줬다고 하지만 중앙부처 지침을 벗어나기 힘들다. 충남의 한 기초 지자체 관계자는 “가능한 사업 목록 안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을 신청하면 위(중앙부처)에서 심사한 뒤 (사업 여부를) 결정해준다”며 “목록이 정해져 있으므로 지역마다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행률 낮고 컨트롤타워 부재

균형발전예산으로 진행되는 사업은 집행률이 낮은 경우가 많다. 취재팀이 일부 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2017~2020년 균형발전예산 투입 사업의 집행률을 확인한 결과 전남의 한 기초단체는 전체 사업 가운데 성과부진 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45.3%였다. 75개 중 34개 사업이 집행률 60%에 못 미쳤다는 뜻이다.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안 편성 지침에 따르면 집행률(예산현액 대비 집행액)이 60% 이하면 ‘성과부진 사업’으로 분류된다.

이 지자체가 지난해 추진한 ○○면 기초생활거점육성 사업은 9억8400만원 예산이 확보됐지만 300만원만 집행됐다. 복합커뮤니티센터건립, 공영주차장 조성, 전천후게이트볼장 설치 등 15개 사업은 집행률이 0%대였다.


대구의 한 기초단체도 184개의 사업 중 76개(41.3%)가 성과부진 사업이다. 이 지자체가 지난해 지역·산업맞춤형일자리창출 사업을 위해 편성한 균형발전예산 1억1100만원은 한 푼도 쓰이지 않았다. 지역공동체일자리 사업 예산도 1억4000만원 중 97만원만 집행됐다.

감사원은 2019년 ‘국가균형발전사업의 추진실태와 주요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균형발전 사업의 집행률이 저조하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군・구 단위에서의 예산 집행률은 2012년 평균 68.2%에서 2018년 51.5%로 낮아졌다. 보고서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계획이 자주 변경되며 (집행이) 지연되는 일이 잦다”며 “예산 집행에 대한 관리체계 미흡 등도 집행률 저하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균형발전예산을 둘러싼 또 다른 문제는 이 예산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존재하지만 대통령 자문기관에 불과해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균형발전예산 편성과 관련해 정부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균형위 의견이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의견 제시 권한마저도 역대 정부에 따라 달라졌다. 노무현정부 당시 균특법에는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의견을 반드시 수렴하도록 했지만 이명박정부에선 ‘의견을 들으면 된다’로 완화됐다. 그러다 박근혜정부에서 다시 ‘의견을 들어야 한다’로 강화됐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의견을 감안해야 한다’로 또 바뀌었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열린 균형위 개편 토론회에서는 ‘단기 파견 공무원 위주로 구성돼 업무수행의 추진력, 실천력, 일관성이 부족하다’ ‘업무의 포괄성으로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한다’ 등의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균형발전정책과 예산을 총괄할 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균형위를 균형발전예산을 구체적으로 편성·집행하고 부처 간 협업을 유도하는 기구로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거시적인 균형발전 정책이 제대로 수립돼야 균형발전예산도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선 대통령의 정책 추진 의지가 중요한데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균형발전을 정권의 핵심 과업으로 삼은 대통령은 없다. 김 교수는 “(취임 전에는) 누구나 균형발전하자고 말하지만 막상 돈을 쓰려고 하면 복지나 국방 등 다른 분야가 우선이 된다. 모든 대통령이 집권한 다음 ‘나 몰라라’ 식으로 정책을 팽개쳐왔다”고 했다.

문재인정부는 참여정부를 계승한다고 주장하지만 균형발전은 정책에서 후순위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균형위 본회의에 한 번도 참석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9차례, 박근혜 전 대통령은 2차례 회의를 주재했다.

초대 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성경륭 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참여정부 시절엔 대통령이 (균형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균형위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들이 모두 왔다. 그런데 지금은 과장급 공무원들만 온다더라”며 “청와대와 대통령이 큰 틀에서 균형발전정책의 방향을 잡고 총리가 주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extreme@kmib.co.kr

[114조 균형발전예산 대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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