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투왈의 영광을 얻게 된 것 같아요.”
‘발레의 종가’ 파리오페라발레에서 동양인 최초로 에투왈(étoile·수석무용수)이 된 박세은이 11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소감을 밝혔다. 국민일보는 전날 파리 바스티유 극장에서 개막한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공연이 끝난 뒤 줄리엣 역의 박세은이 에투왈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국내 언론 가운데 가장 먼저 보도한 바 있다(국민일보 10일 온라인판).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이 끝난 뒤 오렐리 뒤퐁 파리오페라발레 예술감독과 알렉산더 네프 파리오페라극장장이 무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을 때 ‘올 게 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제 이름을 불렀을 때는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리더라고요.”
아시아 출신으로는 처음 에투왈로 지명
1669년 설립된 파리오페라발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최정상의 발레단이다. 150여 명의 정단원은 5단계로 구분되는데, 카드리유(군무)-코리페(군무 리더)-쉬제(솔리스트)-프리미에 당쇠즈(제1무용수)-에투왈(수석무용수) 순이다. 주역급인 프리미에까지는 승급 시험을 통해 선발되지만 에투왈은 예술감독과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 지명된다. 에투왈은 ‘별’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파리오페발레에서 수석무용수가 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에투왈에 비프랑스인이 된 경우는 매우 적으며 아시아 출신으로는 박세은이 처음이다. 발레계에서는 352년 역사의 파리오페라발레에서 박세은이 에투왈이 된 것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발레단에서 동료들이 에투왈로 지명되는 순간을 몇 차례 지켜봤어요. 동료의 감격스러워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곤 했는데요. 에투왈은 제겐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면서도 ‘내가 저 자리에 서면 어떤 기분일까’ 늘 궁금했습니다. 막상 제 이름이 관객과 발레단의 모든 관계자가 보는 가운데 불렸을 때는 너무 벅차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파트너였던 폴 마르케와 함께 무대 앞으로 같이 나가려고 했는데, 폴이 웃으면서 제게 혼자 나가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좋으면서도 긴장돼서 영광의 순간을 100%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10일 개막한 루돌프 누레예프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은 파리오페라발레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1년여 만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는 전막 발레다. 그동안 코로나19가 주춤해져서 잠시 극장을 열었을 때 소규모의 갈라 공연만 했던 만큼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은 파리오페라발레가 본격적으로 공연을 재개한다는 신호다. 파리오페라발레는 현재 객석의 65%를 받고 있는데, 7월 1일부터는 100%를 채울 계획이다. 9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에서 줄리엣 역은 5명의 발레리나가 맡았는데, 박세은을 제외하곤 4명 모두 에투왈이다. 박세은은 당초 16, 19, 23일 공연에만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개막을 앞두고 레오노르 볼락 대신 10일 공연 출연이 결정됐다. 그래서 프랑스 현지에서도 박세은이 에투왈로 지명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파리오페라발레에서 그동안 전막 발레를 올릴 때 개막 공연의 주역으로 에투왈이 맡지 않는 경우는 못 봤어요. 프리미에도 주역을 맡지만 개막 공연에 캐스팅되지는 않거든요. 게다가 코로나 이후 첫 전막 공연이기 때문에 발레단으로서는 정말 신경 쓰는 공연이었는데요. (저로) 캐스팅이 변경되면서 주변에서 제가 에투왈로 지명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 남편도 이날 회사에 반차를 내고 공연을 보러왔습니다.”

“에투왈 지명 소문 있었지만 공연 당일 신경 안썼다”
하지만 박세은은 개막 공연 당일 발레단에 (에투왈을 지명하는 날 흔히 보이는) 대형 꽃다발들이 있었지만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동안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갈라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장면 등을 춘 적은 있지만 전막에 캐스팅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누레예프 버전은 무용수가 쉴 새 없이 춤춰야 하기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을 늦췄다가는 실수하기에 십상이다.
“극장에 도착한 뒤 ‘들뜨지 말자’고 계속 생각했어요. 누레예프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치 마라톤 같은 작품이라 무용수가 모든 힘을 다 소진하도록 만듭니다. 다행히 무대 리허설을 많이 한 덕분인지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의 전막 공연이라서 발레단이 연습 기간을 길게 가졌었거든요. 제가 실제 공연처럼 연습한 것도 3~4번이나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개막 공연 자체는 편하게 췄던 거 같아요.”
에투왈 지명이 이뤄진 개막 공연을 한국의 부모님이 보시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남편을 비롯해 시어머니, 시누이 등 시댁 식구들이 열정적으로 축하해 줬다. 박세은은 파리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한국인 남편과 6년간의 열애 끝에 2019년 결혼했다.
“남편은 사귈 때부터 지금까지 든든한 제 버팀목이 돼 주고 있어요. 남편 외조를 받을 때마다 결혼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시댁 식구들도 제가 발레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응원해 주세요. 이번에 에투왈 지명됐을 때 시누이는 기뻐하며 눈물까지 흘렸어요. 외국 발레단에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은데, 결혼으로 새로 생긴 가족이 제게 큰 안정감을 줘요. 덕분에 발레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습니다.”

파리오페라발레에서 겪은 기쁨과 좌절의 순간들
박세은은 에투왈 지명 이후 수많은 지인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박세은의 에투왈 지명 직후 시차 등을 고려해 전화 대신 이메일과 개인 SNS로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성사되지 않다가 뒤늦게 전화 인터뷰가 성사됐는데, 너무나 많은 문자와 이메일을 읽을 엄두가 안 났었다고.
“정말 많은 분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 주셨는데요.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모두 마친 뒤에 천천히 읽고 싶었어요. 그분들의 정성을 하나하나 느끼고 싶었고, 답장해야 할 곳에 제대로 하고 싶었거든요. 우선은 발레단의 친한 동료들과 축하 파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특히 개막공연에 원래 캐스팅됐던 레오노르 볼락은 발레단에서 가장 친한 친구예요. 레오노르는 이번에 제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자신의 SNS 등에 제 에투왈 지명 소식을 전하며 누구보다 기뻐해 줬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한 박세은은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 재학 중 영재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박세은의 별명 ‘빡세’는 이름 ‘박세’에서 나온 것이지만 ‘빡세게’ 열심히 한다는 뜻을 담았다. 독종으로 불릴 정도로 열심히 춤춘 그는 2007년 스위스 로잔 콩쿠르 1위,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금상 등을 수상하며 ‘콩쿠르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로잔콩쿠르 1위 특전으로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Ⅱ에서 1년간 활동한 박세은은 2009년 국립발레단에 특채됐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었던 그는 2011년 오디션을 통해 파리오페라발레 준단원으로 입단했다. 파리오페라발레는 매년 7월 초 입단 오디션을 치러서 한 자리 숫자의 정단원을 뽑는데, 부설학교인 파리오페라발레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먼저 뽑은 뒤 정원이 비면 준단원을 포함해 외부 지원자를 대상으로 다시 선발한다. 그리고 정단원은 되지 못했지만 가능성 있는 일부 외부 지원자들에겐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준단원 기회를 준다. 박세은은 당시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솔리스트로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파리오페라발레 준단원 입단이라는 결정을 내려 주변을 걱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던 그는 2012년 정단원으로 카드리유가 된 것을 시작으로 2013년 코리페, 2014년 쉬제, 2016년 프리미에로 초고속 승급했다. 특히 2014년 쉬제로서 ‘라 수르스’(장-기욤 바르 재안무) 전막 공연의 주역을 맡았고 2015년 ‘대지의 노래’(존 노이마이어 안무)와 ‘백조의 호수’의 주연을 맡았다. 또 같은 해 ‘라 바야데르’로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엔 ‘발레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무용수상을 수상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버틴 게 오늘의 영광으로”
하지만 박세은이 파리오페라발레에서 늘 행복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2015년은 그에게 가장 괴롭고 힘든 시기였다. 한 해 전 가을 파리오페라발레의 신임 예술감독으로 벤자민 밀피예가 부임한 이후 그의 출연기회가 다소 줄어든 데다 발과 이마에 부상까지 입은 것이다. 특히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안무의 ‘레인(Rain)’ 재공연 연습 중 동료 무용수의 구두에 이마가 찍혀 6㎝나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그해 승급시험도 치르지 못했다. 하지만 묵묵히 재활과 연습에 매진한 그는 그해 12월 ‘라 바야데르’의 주역으로 캐스팅되면서 부활하기 시작했다. 2016년 승급시험에서 프리미에가 됐지만 에투왈까지는 5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한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나 선후배 중에 20대 중반에 이미 해외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그에 비하면 파리오페라발레 정상에 오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죠. 중간중간 괴로운 시간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버텼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예술은 끊임없는 배움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기회가 오지 않더라도 그저 묵묵히 연습하고 자신을 다잡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의 후배 무용수들이 저를 보면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에투왈 승급을 계기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흔들렸던 마음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은퇴(정년 42세)할 때까지 발레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코로나로 공연이 계속 취소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연습을 다 하고 막판에 취소될 때는 무력감이 오더라고요.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무용수로서 언제까지 무대에 서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에투왈 지명으로 다시 열심히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 것 같아요. 파리오페라발레에서 좀 더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은 것 외에 바람이 더 있는데요. 바로 파리오페라발레 내한공연의 주역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파리오페라발레 소속 무용수들이 갈라 공연 차 내한한 것은 종종 있었지만 파리오페라발레의 전막 내한공연은 1993년 ‘지젤’이 유일했다. 한국 발레의 역사를 새로 쓴 박세은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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