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4조각, 값싼 햄버거…당신의 밥상은 안녕한가요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네 삶에서 밥은 힘이고 안녕이고 때로는 위로다. 한끼로부터 얻는 소박하고도 든든한 힘은 저마다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연료다. 밥심은 모두에게 공평할지언정, 밥상의 모습은 다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권인 한국에서 ‘밥 못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2021년 한국 사회의 밥상 불균형은 ‘끼니의 유무’가 아니라 ‘끼니의 종류’로 나타난다.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지 못하는 취약 계층은 영양 부족에 시달린다. 국민일보는 취약계층 이웃들의 밥상을 들여다 봤다. 한 아이는 채소 하나 보이지 않는 도시락으로 점심 저녁을 해결한다. 어떤 엄마는 매일 점심으로 급하게 햄버거 하나를 욱여넣는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겐 떡 몇 조각이 한끼 식사의 전부다. 이들에게 따뜻한 밥, 맛있는 반찬, 신선한 과일은 왜 허락받는 선택지가 되지 못할까.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의 개미마을. 지난달 31일 버스를 타고 마을 어귀에서 내려 한참을 경사진 도로를 걸어 올라간 곳에서 70대 강말순(가명)씨를 만났다.


강씨의 아침은 떡 4조각과 복지관에서 가져다준 반찬이다. 강씨는 “떡 한 팩에 여덟 개가 들었다. 남편이 반 먹고 출근하면, 내가 남은 떡을 먹는다”며 “저녁 메뉴도 똑같다”고 했다. 강씨는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두 차례 반찬을 지원받는다. 그는 “김치 두 종류랑 다른 반찬 두 가지를 준다. 고기를 볶아 주기도, 계란말이를 주기도 한다”며 “간이 심심해서 떡이랑 먹다 보면 사흘이면 다 먹는다”고 했다.

강씨는 매달 쌀을 10kg씩 지원받지만, 집에 수도가 끊겨 조리할 수 없다. 필요한 물은 최소한으로 약수를 구해와 쓴다. 강씨는 “복지관에서 집으로 사람을 보내주기도 한다는데 우리처럼 조리가 어려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사업대상이어도 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아침으로 먹은 떡을 볼 수 있냐는 요청에 강씨는 “다리가 아파 (가지러) 가기 힘들다”며 직접 집으로 들어가서 보라고 했다. 5평 남짓한 집 안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난 흔적이 그대로 남은 이부자리만 보일 뿐 식탁이나 냉장고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어디에서 하냐고 물었다. 그는 “이부자리에 앉아 무르팍에 올려둔 채 먹는다”며 “다 먹고 나면 큰 물티슈 한 장으로 얼굴도 닦고 그릇을 훔친다”고 했다.

강씨의 사례처럼 노인의 빈곤한 밥상은 건강 문제와 직결된다. 동아대 식품영양학과 윤은주 교수팀은 ‘식품 안정성 수준에 따른 한국 노인의 건강 상태와 영양 섭취 현황’ 논문에서 노인의 5%가 경제적으로 곤궁해서 원하는 식품을 사 먹지 못하는 식품 불안정 상태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윤 교수팀은 “노인은 신체적 요인 및 심리적,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영양결핍 상태에 놓이기 쉽고 영양결핍으로 유발된 질병은 결국 의료비 증가로 이어져 노인에게 이중고로 작용할 수 있다”며 “영양가 높고 건강한 식품에 대한 접근성과 이용성을 높이고, 식품 안전성을 확보해 노인의 건강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적극적인 영양교육과 노인 특화 프로그램의 도입 및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4살 아이를 기르는 30대 미혼모 박소영(가명)씨는 거의 매일 점심 메뉴로 햄버거를 먹는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햄버거는 어플리케이션(앱) 쿠폰을 사용해 최대한 저렴하게 사고 음료는 따로 준비해간다. 박씨는 “밥을 먹고 싶지만 비싸다”며 “아주 힘든 날 보상으로 사 먹는다”고 전했다.

아이와 함께 먹는 아침과 저녁 식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씨는 “한 달 식비가 30만원 정도 된다. 지금 주방에 있는 게 밥, 곧 버려야 하는 나물 몇 종류, 계란, 냉동식품뿐”이라며 “이 식단을 1년 반째 거의 똑같이 먹고 있다”고 했다. 이어 “부담스러울 정도로 물가가 많이 올랐다. 과일은 못 먹은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임신 초기, 저체중이던 박씨는 출산 이후 급격히 살이 쪘다. 임신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들었다. 그는 “임신 8개월 때는 거의 먹지 못해서 사람들이 뒤에서 보면 임신할 줄 모를 정도였다”고 했다. 출산 후에는 미혼모 센터에서 지원해주는 라면만 삼시 세끼 먹었다. 말랐던 몸이 금새 비만이 됐다고 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박씨에게 밥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는 “식사의 질이 매우 낮다. 개선하려고 노력해봤으나 포기했다. 빠듯하게 살다보니 식사의 질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더라”고 했다.

아이의 건강 상태 역시 우려된다. 박씨는 “나보다 아이가 더 걱정”이라며 “아이가 아픈 곳이 많아 병원을 자주 찾는데 병원에서는 양질의 단백질과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한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미혼모와 양육 아동이 적절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관계자는 11일 “미혼모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식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음식을 만들어먹기 위한 기본 식재료를 사기 어려워 인스턴트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재단은 ‘2015년 양육미혼모 모자가정 건강실태보고서’에서 “양육미혼모 신체 건강검진 결과 비만, 지방간, 위염 등 질병의 유병률이 높게 확인됐다”며 “균형적 영양 섭취와 관련한 건강상의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했다. 이어 “양육미혼모 가정의 건강 개선 및 건강 증진 행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 편의점에 점심거리를 사러 오는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매일 오는 듯 익숙한 걸음으로 들어와 도시락 코너에서 도시락 몇 개를 집어 들고 증정품 음료를 품에 안는다. 마지막으로 계산대 앞에 마련된 희망급식바우처 대상 상품 진열대에서 간식으로 먹을 유제품 몇 가지를 고른다.


희망급식바우처로 끼니를 해결하는 김정우(가명)군을 만났다. 김군은 재택 수업이 있는 날이면 집 근처 편의점을 방문해 점심으로 도시락을 사 간다. 이날 김군이 점심거리로 산 품목은 도시락 2개, 사과주스 3개, 요거트 3개, 탄산음료 2개다. 그 중 사과주스와 요거트는 2+1 품목, 탄산음료는 도시락을 사면 주는 증정품이었다.

해당 도시락의 내용물에서 채소나 과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밥과 닭강정, 닭갈비, 소불고기, 제육볶음, 돈까스, 계란말이, 김치로 구성된 도시락은 열량 667㎉에 나트륨 1029㎎이었다.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청소년의 경우 일일 권장 섭취 나트륨양은 1500㎎이다. 김 군이 사간 도시락의 경우 일일 권장 섭취량의 약 68%로, 도시락 두 개를 먹으면 하루 나트륨 권고 섭취량 이상을 섭취하는 셈이다.


홍제동의 한 편의점 점주는 “결식아동들이 끼니로 사가는 것들은 주로 도시락인데 아무래도 편의점이다 보니 메뉴 선택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발표한 서울시 꿈나무카드 지원 예산 결제액 분석 결과에 따르면 사용 내역의 75.2%가 편의점·제과점 등 즉석조리 식품 판매 업종에 집중됐다. ‘희망급식 바우처’의 경우 사용처를 편의점으로 제한해 식사를 위한 선택지 자체가 즉석조리 식품에 제한돼 있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 조사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신선한 과일을 먹지 못하는 아동 비율은 전체 평균 3.24%인데 비해 빈곤 아동은 32.39%였다. 또 12~18세 아동의 소득수준별 주당 채소류 섭취량을 살펴보면 소득 3~5분위 아동에 비해 1~2분위 아동이 10%가량 낮았다.

아동종합실태조사 연구팀은 “성장발달기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것은 이후 건강과 삶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빈곤아동의 영양불균형 문제에 좀 더 정책적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승연·김아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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