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에 사로잡혀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병을 앓는 아들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박재우)는 9일 A씨(35)의 존속살해 혐의 등 사건 선고 공판에서 검찰이 낸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들어 A씨가 존속살해 또는 존속상해치사의 범행을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고의로 범행했다고 보기에 의심스러운 사정이 있고, 증거관계와 경험법칙상 고의적 범행이 아닐 여지를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면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현병 환자인 A씨는 지난해 11월 19일 오전 1시쯤 정선군 한 민박집에서 아버지 B씨(60), 친척 할아버지와 술을 마시던 중 갑자기 아버지 B씨를 주먹과 발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폭행 직후 “아버지를 때렸다”며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B씨는 민박집 마당에 많은 피를 흘린 채 쓰러져있었고, A씨는 민박집 3층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A씨는 체포 후에도 “내가 멱살을 잡아다가 끊어 버렸다. 내가 죽였다. 나는 죄가 없어. 감방 한 번 갑시다. 내가 잘못했네. 사람 죽였다”라며 횡설수설했다. A씨의 손에는 멍 든 흔적이 없었고, 오른 손가락과 상의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주먹과 발로 피해자를 수차례 때린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사망 원인이 된 두부 손상이 이러한 폭행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다”며 무죄라고 판단했다.
또 A씨가 이 사건 이전에도 폭행, 살인, 자수 등과 관련된 내용으로 수차례 112에 허위신고를 한 점을 들어 “112 신고 당시나 그 직후 경찰에서 한 피고인의 진술을 진지한 범행의 자백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봤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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