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발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인터뷰]

Է:2021-05-09 09:57
:2021-05-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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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창정형제화연구소 남궁정부 소장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 제작
오른팔 잃고 특수화 제작길 25년

남궁정부 소장. 김아현 인턴기자

평범하고 순탄한 걸음 사이에 보이는 흰 천을 칭칭 감은 발. 보통 사람들과 다른 형태의 발을 가지고 있어 신발 대신 천을 두르고 걸음을 옮기는 이의 발이다. 땅을 딛고 서거나 걸을 때 신는 게 신발이라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이들을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남궁정부(81)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남궁 소장은 1995년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후부터 27년째 특수화를 만들고 있다. 그는 소아마비로 다리 길이가 다른 사람, 사고로 발의 일부를 잘라낸 사람 등 장애와 질병으로 일반 신발을 신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특수화를 제작해 건넨다.

남궁 소장의 손을 거친 구두 덕분에 천을 끌고 다녔던 남성은 비가 와도 당당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고, 장애를 가진 한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다.

‘오른팔이 없는 게 아니라 오른팔만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구두를 만들었지만, 한 손으로 구두를 제작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신발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누군가는 신발을 신고 다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은가.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남궁 소장은 왼손 가득 희망을 끌어안았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세창정형제화연구소에서 남궁 소장을 만났다.

특수신발 유형을 설명하는 남궁정부 소장. 김아현 인턴기자

-주로 어떤 신발을 제작하고 있나.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신발인 ‘특수화’를 만든다. 이곳에는 똑같은 신발이 단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소아마비 환자들은 양쪽 다리 길이가 달라 불편함을 겪는다. 또 당뇨병이나 관절염 등으로 발이 뒤틀리고 뭉개진 사람들도 있다.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를 당한 환자들도 일반 신발을 신기 힘들다. 특수화는 이들의 신체 일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특수화는 없어서는 안 되는 신발이다.

-언제부터 특수화를 만들었는지.

구두 만드는 일은 12살 때부터 했다. 1995년까지는 일반 구두를 만들었고, 특수화를 만든 지는 25년 정도 됐다. 95년에 지하철 사고를 당했고, 사고 이후 오른쪽 팔을 잃었다. 당시 병원에 있으면서 걷기 불편한 분을 많이 봤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나의 재능을 사용하자고 결심했다. 당시에는 주변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했지만 특수화를 만들기 위해 전문서적을 보고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특수화에 대해) 공부했다. 장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의 아픔과 불편함을 잘 모른다. 나도 사고가 나기 전에는 그랬다.

석고 말 모형과 특수화. 김아현 인턴기자

-그동안 몇 켤레의 특수화를 만들었나.

25년 동안 약 3만명의 특수화를 만들었다. 신발을 몇 켤레 만들었는지 수를 세보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당 적어도 두세 켤레는 만들어 간다. 그렇게 계산해보면 6만~9만 켤레가 되지 않겠나.

-신발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특수화는 보기에 비슷해 보이더라도 신발 높이나 안쪽 형태가 다 다르다. 장애나 기형의 정도에 따라 작업해야 하는 100% 맞춤 수제화다 보니 손이 많이 간다. 단 1㎜라도 신발의 각도가 틀려선 안 된다. 이를 위해 찾아오는 손님의 다리나 발 특징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어디가 불편한지 파악한 후에 석고를 이용해 발 모형을 만든다. 이 모형을 가지고 재단, 봉제 등의 과정을 거쳐 단 하나뿐인 신발을 만든다.

아동 특수화 제작 중인 남궁정부 소장. 김아현 인턴기자

-제작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한 손으로 신발을 만들려니 힘든 건 당연하다. 왼손으로 신발을 만들 수 있기까지 4~5년이 걸렸다. 갑자기 장애를 갖게 되면 계속해서 옛날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한다고 해서 없어진 팔이 다시 생기진 않는다. 그래서 장애를 빨리 받아들였다. 의수를 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수가 있다고 해서 양손을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로서는 의수를 하고 다니는 데 더 나을 것도 없을뿐더러 안 하는 게 더 편하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나.

정말 많다. 어떤 사람은 지팡이를 짚고 왔다가 놓고 가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처음 신는 구두 덕에 양복을 입을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발에 맞는 신발이 없어 천 조각을 맨발에 감고 다니던 분이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발에 천을 대고 그 위를 붕대를 이용해 감고 걸었다. 그렇게 다니다 비라도 오면 다 젖을 것 아니냐. 그분 이야기를 듣고 신발을 마련해 드렸다. 지금은 오래된 친구가 됐다.

특수화 제작 공간. 김아현 인턴기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특수화 제작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수제화는 기성화와 달리 조립으로 만들 수 없다. 모든 과정에 기술자가 필요하고 기성화보다 만드는 속도도 느리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신발 개수도 기성화보다 훨씬 적다. 그래서 처음에는 직원들에게 제날짜에 월급을 주지 못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수입이 적어 가게 문을 닫게 될 형편에 이르자 단골들이 돈을 모아 가져왔다. 이곳이 아니면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손님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손님들이 가끔 가게를 찾아와 ‘이 신발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한다. 선물 같은 말이다. 사실 진짜 선물도 종종 받는다. 회도 떠다 주시고 돼지를 잡아주시기도 한다. 그런 날은 직원들과 회식을 한다.

남궁정부 소장. 김아현 인턴기자

-목표가 있다면.

몸이 불편해도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평생을 즐겁게 살 수 있다. 가능하다면 특수화 제작 기술을 가르치는 기숙사를 짓고 싶다. 커다란 공간에서 장애가 있는 분들과 같이 일을 하고 싶다. 그들이 특수화 제작 기술을 배워서 직업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작은 기술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지 않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움직일 수 있는 한 여기 남아서 손님들하고 대화도 하고 신발도 만들며 살고 싶다. 나는 ‘모두 있고 오른팔만 없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김아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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