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급 공무원’ 세습?…‘현대판 음서제’ 별정우체국

‘현대판 음서제’라고 비판받는 별정우체국 제도. 별정우체국장직은 평균 연봉이 6600만원에 이르고 6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데, 자녀나 배우자에게 승계할 수 있어 그동안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정부는 19대와 20대, 21대 국회에 걸쳐 관련 법안을 꾸준히 제출하며 제도 개선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소관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소극적 태도 탓에 번번이 처리가 무산됐다.

별정우체국 제도는 1961년 8월 17일 ‘별정우체국설치법’이 제정되며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부족한 재정 탓에 전국 곳곳에 우체국을 만들 수 없어 민간인이 보유 토지와 시설을 이용해 우체국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정부는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고 국장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도 있도록 했다. 이후 여러 차례 법이 개정되며 현재는 국장 급여를 포함한 인건비와 운영비 전액을 정부가 부담한다. 또 자녀뿐 아니라 배우자나 제3자도 국장 지위를 넘겨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시대 상황이 변하면서 과도한 특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1년 감사원은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지정승계제도를 폐지하고 궁극적으로 별정우체국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감사 의견을 냈다. 전자 상거래가 확산되면서 택배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청년 취업난이 심화되는 등 확 달라진 상황에서 이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별정우체국장은 6급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평균 급여 수준은 지난해 기준 6600만원에 이른다. 퇴직 뒤엔 퇴직연금을 받는데, 이 역시 납부액과 수급액 산정식이 일반 공무원과 동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국 718곳의 별정우체국에서 모두 1차례 이상 승계가 이뤄졌고, 4회 이상 승계한 곳도 128곳이나 된다(지난해 12월 기준).


별정우체국장직을 승계하기 위해 가족이 아닌 이를 양자로 들이는 사례도 있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04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제3자를 양자로 입적시켜 국장직을 승계한 경우가 모두 18건으로 조사됐다. 가족이 아닌 제3자에게도 국장직을 넘길 수 있지만, 그 경우 승계받은 이가 자신의 자녀에게 국장직을 물려줄 수 없다. 결국 승계를 이어가기 위해 무리한 양자 입적까지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전남 임자별정우체국에선 국장이 자신과 고작 4살밖에 나이차가 나지 않는 사람을 양자로 입적해 국장직을 넘긴 일도 있었다.


‘매관매직’ 사례도 심각하다. 경북지방우정청 소속 보문별정우체국장이었던 박모씨는 퇴직 전 처조카인 안모씨를 국장으로 추천하는 대가로 안씨에게서 1억 8500만원을 수수했다. 안씨는 2011년 1월 해당 별정우체국의 국장으로 임용됐다. 이런 식의 비위는 2011년 감사원 감사 및 같은 해 우정사업본부 자체감사에서 적발된 사례만 해도 총 16건에 이른다.

현장에선 이렇듯 문제가 심각한데도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19대와 20대, 21대 국회에 각각 ‘별정우체국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해 국장 승계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려 했으나 이해당사자들의 반발과 국회의 소극적 태도에 진척을 보지 못했다.

정부안과 별도로 21대 국회에선 정필모 민주당 의원이 ‘국장 승계제도의 즉각 폐지’를 골자로 법안을 제출하며 제도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산하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소위)에 계류 중이다.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는 의원들이 당사자 간 합의를 기다리자며 법안 심사 및 처리를 미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5일 소위 회의록을 보면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우정사업본부가 별정우체국중앙회와 꾸린 별정우체국 TF에서 최종 합의가 나오면 그때 논의를 하자’는 취지로 발언한다. 이에 송정수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장이 ‘TF 내에서도 국장 승계제도 폐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됐다. 나머지 지정 취소에 따른 보상 수준은 법 시행 전에 합의해 시행령에 적용하면 된다’고 설명했지만 소위 위원장인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은 일단 법안 심사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의원들은 당사자 합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결국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별정우체국장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법안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는 “여야 할 것 없이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 사회에서 입김이 센 별정우체국장들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법안 처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해당 TF의 합의마저 불발됐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크게 두 군데에서 의견 차가 있다”며 승계 조건과 별정우체국 지정 취소에 따른 보상금 문제를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안은 승계를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인정해주는 대신 승계받은 이가 승계 시점으로부터 20년만 국장직을 맡을 수 있게 한 반면 중앙회 쪽은 승계받은 사람도 정년까지 국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했다. 또 (중앙회 측은) 보상금 수준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의하지 못한 내부 사정을 전했다.

결국 관련 법안 논의는 한없이 미뤄질 전망이다. 국회 과방위에서는 지난해 11월 25일 이후 관련 법안 심사가 이뤄진 적이 없을 뿐더러 앞으로 심사 계획도 잡힌 게 없다. 정필모 의원은 “결과 도출이 어려운 별정우체국TF 차원의 합의를 국회가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국회 차원에서 우선 법안검토를 충실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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