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기사에 댓글로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표현을 적었다가 2심까지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에게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판단을 내렸다. 해당 표현이 기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드러낸 ‘모욕적 표현’이긴 하지만 기사의 성격 등을 따져보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5일 모욕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형법 2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봤다.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 공간에서 작성된 단문의 글에 모욕적 표현이 포함돼 있더라도 객관적 타당성이 있는 사정에 기초해 내려진 의견의 경우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는 판단이다.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정당행위로 처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씨는 2016년 2월 자동차 전문지 기자인 정모씨가 자동차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인 ‘MDPS’의 장점 등에 관해 작성한 기사가 자동차뉴스 ‘핫이슈’란에 게재되자 댓글로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내용의 댓글을 게시해 정씨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의 판단에는 MDPS의 안정성 자체가 당시 많은 논란을 낳았던 점이 고려됐다. 이 사건 기사에는 MDPS의 장점이 서술돼 있는데, 기사 게재 직전 한 방송사에서 MDPS와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이 방송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를 읽은 상당수 독자들이 모 그룹의 MDPS를 옹호하거나 홍보하는 듯한 기사의 제목과 내용, 이를 작성한 기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담긴 댓글을 게시했다”며 “이러한 의견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기레기는 기사 및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서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이고, 이 사건 기사에 대한 다른 댓글들의 논조 및 내용과 비교해 볼 때 이 사건 댓글의 표현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도 밝혔다.
앞서 1심과 2심은 이씨의 모욕 혐의를 인정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도 진술하고 있듯이 기레기라고 함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누군가를 쓰레기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이는 단지 그 단어 뒤에 물음표를 달았다는 사정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며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이 사건 댓글이 작성되기 전에도 ‘흉기레기 기자야’, ‘기레기야’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해 정씨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여러 개의 댓글이 게시돼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유죄 판단을 유지했었다.
대법원은 “단문의 글에 모욕적 표현이 포함돼 있더라도 그 글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위법성이 조각된 것일 뿐, ‘기레기’는 표현 자체는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사안에 따라 모욕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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