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 시흥 지역에서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으로 보이는 명의로 이뤄진 농지 투기 의심 사례도 여럿 파악됐다.
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시흥시 과림동 논 2필지 4897㎡(약 1481평)는 2018년 7월 광명에 살던 A(78)·B(68)씨에게 20억1000만원에 팔렸다. 자금은 대부분 대출로 충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논을 매입한 뒤인 2019년 4월 경북 울릉군의 21.64㎡(약 6.5평)짜리 LH 신축 공공임대아파트로 주소를 바꿨다. 현행 농지법상 농지를 가질 자격이 있는 농업인은 1000㎡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 등을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을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온실·비닐하우스 등을 설치한 사람, 축산업 종사자 등이다.
A씨가 매입 시점에 영농계획서를 제출했더라도 서류상 주소인 울릉군에 실제로 거주한다면 과림동에서 농사를 짓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농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판단이다. A씨 사례는 지난 17일 이들 단체가 발표한 농지 투기 의심 리스트 37건에 포함됐다.
실제로 A·B씨가 산 논에는 벼 대신 고철을 취급하는 업체가 들어와 있다고 참여연대 등은 설명했다. 과림동 일대에 즐비한 다른 고물상이나 폐기물 처리장처럼 이 농지에서도 수년째 이런 업체가 영업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논을 산 뒤 A씨가 입주한 아파트도 의심을 자아내는 부분이다. 이 아파트는 LH가 울릉도에 공급한 110세대 규모 국민임대주택이다. LH의 신도시 개발이 예상된 시흥 농지에 지분 절반으로 최소 10억원가량을 쓴 인물이 서류상으로는 울릉도의 주거 취약층을 위한 국민임대주택에 입주한 셈이다.
A씨는 광명의 한 전통시장에 있는 지상 4층·지하 1층(연면적 약 473㎡) 건물과 토지(165㎡)도 소유하고 있다. 개별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토지 가격만 4억원이 넘는다. 무주택도 아닐뿐더러 LH가 국민임대주택 입주 신청 자격으로 설정한 세대구성원 총 자산가액 기준(2020년 기준 약 2억3000만원)을 초과한다.
과림동 밭 5072㎡(약 1534평)를 4명과 공동 매입한 C씨(54)도 주소지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농지는 3기 신도시 발표가 나기 직전인 올해 1월 21억4700만원에 거래됐다. C씨의 등기부등본상 주소는 원예업체들이 모인 과천 주암동의 한 창고다. 창고와 토지는 C씨가 아닌 다른 인물 소유였다가 지난해 7월 LH가 공공용지로 취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토지보상 전문가는 “집도 없어 창고에 사는 사람이 비싼 농지를 살 수는 없다”며 “신도시 계획 발표 한 달 전 땅을 샀다면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을 텐데 매수자가 누구인지를 숨기기 위한 행동일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고 매체에 전했다.
공직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투기 의심 사례가 나오고 있는 것은 관할 지자체 등의 허술한 농지 관리가 이런 시도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변 관계자는 “시흥시의 경우 2018~2019년 농지 실태 조사를 하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비농업인의 농지 매입이나 방치가 계속 이뤄질 수 있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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