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살 계엄군 41년 만에 참회의 눈물

Է:2021-03-17 16:16
:2021-03-1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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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가해자 계엄군 당시 고백하고 희생자 유족 만나 사죄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진압 작전에 참여한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발포로 숨진 희생자의 유족을 찾아 무릎 꿇고 사죄했다. 가해자인 계엄군이 총격으로 광주시민을 숨지게 했다고 고백하고 희생자 유족을 만나 공개 사죄한 것은 처음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전날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 당시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A씨가 희생자인 고(故) 박병현 씨 유족을 만났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박씨 유족들에게 5·18 당시 총격으로 시민을 죽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로 인해 숨진 희생자의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A씨는 이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그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 “저의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았다”라며 큰절을 했다.

이어 “지난 40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면서 “이제라도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울먹였다.

이에 대해 당시 숨진 박씨의 형 종수(73) 씨는 “늦은 사과지만 고맙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면서 “용기 있게 나서줘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다.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며 A씨를 안아줬다.

조사위는 과거 5.18 당시 A씨가 사살한 인물이 고 박병현 씨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25세였던 박 씨는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 보성으로 가기 위해 광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지나가다 순찰 중이던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 A씨 등의 사격으로 현장에서 숨졌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순찰 중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민간인 젊은 남자 2명이 공수부대원을 보고 도망가자 정지할 것을 명령했는데 겁에 질려 도주하길래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인의 사망 현장 주변에서는 총기 등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며 “대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

계엄군 등 당시 신군부는 1980년 총기로 무장한 시위대로부터 신변을 지키는 ‘자위권’ 차원의 발포만 이뤄졌다고 주장해왔다.



조사위는 그동안 조사 활동을 통해 이번 A씨의 고백과 같은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조사위는 향후 계엄군과 희생자 유족 간 상호 의사가 있는 경우에는 만남을 적극 주선하고 사과와 용서를 통해 불행한 시대적 아픔을 치유해갈 계획이다.

송선태 조사위 위원장은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이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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