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달 초 전 직장의 동료였던 지인의 소개로 강남에 있는 부동산컨설팅 업체를 찾았다. 업체는 경기도 평택에 있는 호텔 부지를 5평(16.5㎡) 단위로 쪼개어 매입하라고 권했다. 지인 역시 100평을 매입했다는 소식에 A씨는 3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A씨는 16일 “컨설팅 관계자가 ‘2년 안에 그 땅에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고, 호텔도 고층으로 지을 계획이라 용적률이 올라가는 만큼 수익도 커진다’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컨설팅 관계자는 ‘현장에 가보면 아직 아무것도 없지만 근방에 지하철과 아파트도 들어올 테니 눈만 감았다 뜨면 값이 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솔깃한 이야기도 건넸다고 했다.
큰 꿈에 부풀어 계약했지만 A씨는 계약 한 달여 만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사전 투기 의혹 관련 뉴스를 접하면서 그제야 이번 투자가 기획부동산에 의한 사기 수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A씨는 “국회의원 가족도 기획부동산 꼬임에 넘어가 1년 넘게 땅을 처분하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불안한 마음에 컨설팅 업체에 전화를 걸었더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며 “사기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되지 않아 팔지도 못할 땅에 괜히 3억원을 묶어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털어놨다.
실제 국회의원 가족 가운데 기획부동산에 속은 것 같은 사례가 속속 알려지고 있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배우자는 3기 신도시 광명시흥지구로부터 5㎞ 정도 떨어진 곳에 임야 179㎡와 142㎡를 소유했다. 이 중 한 필지는 공동소유자가 100명이 넘는 곳이 있어 투기 의혹이 제기됐었다. 김 의원 측은 서둘러 땅을 매각했지만, 필지가 워낙 잘게 쪼개져 있어 처분에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 의원 측은 “기획부동산이 평당 17만원 짜리 토지를 지인들에게 80만~130만원에 매도하고 연락을 끊어 되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고 해명했다.
공직자 가족까지 기획부동산 덫에 걸려 매수한 땅을 처분하지 못하는 사례가 드러나면서 일반 투자자의 우려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일부는 기획부동산의 정확한 개념조차 모른 채 지인 말만 믿고 억대의 대출을 끌어와 토지를 구매했다 낭패를 본 사례도 있었다.
50대 전업주부 B씨도 한 기획부동산 업자의 추천에 5년 전 경기도 시흥의 임야 100평을 평당 45만원에 구매했다. 모두 신용대출과 보험대출로 끌어모은 돈이었다. 이 가운데는 친척에게 빌린 금액도 상당 부분 차지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땅값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지난해 7월부터는 부동산 업자와 연락마저 끊겼다.
B씨는 “당시 부동산 업자가 3~4년 안으로 그린벨트가 풀리면 대학 캠퍼스와 체육공원, 지하철이 들어서고 개발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B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LH 투기도 같은 시흥에서 이뤄졌다고 해서 최근 본인 땅을 상세하게 확인해봤지만 구매한 땅은 개발 예정 구역과 수십㎞ 떨어진 공익용 산지였다. 지분을 공유하는 알 수 없는 사람들만 20명에 달했다.
문제는 이처럼 기획부동산 사기 사례가 판을 치고 있지만 피해자에 대한 마땅한 구제책이 없다는 것이다. 민사 소송을 건다 해도 기획부동산 관계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다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도 희박하다. 만약 승소한다 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획부동산 사기는 통상 본인의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가까운 지인을 끌어들이는 다단계 형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막상 피의자는 빈털터리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토지 거래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중히 고민하고 검토할 것을 강조한다. 업자들은 이미 토지 매입가보다 높은 가격을 붙여 투자자들에게 땅을 되팔기 때문에 땅값 상승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부동산 전문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해당 지자체에 직접 개발 계획을 확인하거나 등본을 떼보고 현장에 가보는 것은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기획부동산 법인 등본에 업체의 존속 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면 사기를 의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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