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여성의 날인 8일(현지시간) 프랑스 주요 일간지가 전 여자친구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는 남성의 공개서한을 지면에 게재해 독자의 공분을 샀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은 이날 발행한 신문의 1면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내는 편지 한 통’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지면의 절반가량은 여성이 남성에게 제압당하는 삽화로 채워졌다.
기사에는 자신이 전 여자친구를 강간했다고 인정하는 성폭행 가해자의 편지가 그대로 실렸다. 보도에 따르면 편지를 작성한 사뮈엘(가명)이라는 올해 20살인 남성은 지난 2019년 4월 프랑스 정치대학(IEP) ‘시앙스포(SciencesPo)’ 보르도 캠퍼스에 다니는 알마를 성폭행했다고 인정했다.
알마는 시앙스포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지난 1월 자신의 전 남자친구에게 강간당한 충격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촬영해 온라인에 폭로한 알마를 계기로 SNS에서는 시앙스포에서 발생한 성폭행을 고발하는 글이 줄지었고 학교 측도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사뮈엘은 ‘관계’ ‘강간’ ‘식별’ 등을 소제목으로 단 장문의 편지에서 “그(알마)와 나의 관계는 열정적이었다. 우리 둘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강렬함이 나의 평범한 삶을 잊게 했다”고 밝혔다.
사뮈엘은 자신과 알마의 관계, 자신이 연인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르기까지 어떤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는지 기술했고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강간 사실을 인정한다. 내가 스스로 깨달은 덕분에 인정하게 된 게 아니다. 피해자의 주장이 실제로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했다”며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그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인생 일부를 망쳐놨다”며 “내가 입은 어떤 피해도 그(알마)가 느끼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고 말했다.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해당 편지는 10일 전 해당 언론사 이메일로 제보됐다. 이후 리베라시옹은 가해자의 편지를 공개해도 된다는 알마의 허락을 얻었다. 리베라시옹 측은 “알마는 가해자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며 “마음의 준비가 되는 대로 고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또 “이러한 편지를 공개하는 건 언론 윤리적으로는 문제뿐만 아니라 법적인 문제도 제기한다. 가해자의 목소리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가려서는 안 된다”고 밝힌 뒤 편지를 보내온 사뮈엘에게도 프랑스 사법 당국의 요청이 있다면 개인 정보를 넘길 수밖에 없다는 사전 경고를 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리베라시옹 측의 이러한 설명에도 가해자의 주장을 상세하게 보도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논란은 커지고 있다. 프랑스 여성단체 ‘누투트(NousToutes)’는 트위터를 통해 “현재 입원 중인 피해자를 강간한 한 남자의 편지를 신문 1면에 올리고 홍보하는 것은 수십만명의 다른 여성 피해자를 향한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현지 누리꾼들도 “세계 여성의 날에 가해자의 입장이 상세히 적힌 글을 게재하는 건 많은 성범죄 피해 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 “의도와는 달리 폭력적으로 느꼈다” 등의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피해자도 서한 공개를 동의했으니 괜찮다”라는 의견도 나왔다.
노유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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