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간 유기견 구조 봉사를 해 온 30대 여성 A씨는 몰티즈 ‘순수’를 처음 본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지난해 5월 ‘혹시 도울 아이가 없나’라는 생각에 유기견 앱을 열었다가 순수의 사진을 봤다. 코와 입이 잘려 이빨이 드러난 참혹한 모습이었다. 순수가 지내고 있는 곳은 안락사를 시행 중인 보호소. 2주 안에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순수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뜻이었다.
보호소 측에 확인해 보니 입양 문의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A씨의 예상대로 많이 아픈 아이를 선뜻 데려갈 사람은 많지 않았다. A씨는 그런 순수가 자꾸 눈에 밟혔다. 고통받아 온 아이가 곧 죽게 된다는 사실만큼이나 A씨를 괴롭게 한 건 사진으로만 봐도 명백한 학대의 흔적이었다. ‘사고만으로 저렇게 코와 입이 잘려나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순수를 집으로 데려왔다. 순수라는 이름은 A씨가 직접 붙였다.
그 후로 동네 동물병원과 대학병원을 오가는 정신없는 일상이 반복됐다. A씨의 노력 덕분에 순수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지만 얼굴에 남은 상처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정말 학대라면 반드시 가해자를 잡아야 한다는 분노가 끓어 올랐다. A씨는 SNS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순수 사건을 알렸다. 청원에는 8일 오후 4시20분 기준 4만7000여명이 동의했다.

그가 언론 인터뷰까지 결심한 건 얼마 전 순수를 발견했던 사람과 연락이 닿으면서다. 발견자는 순수가 지퍼까지 전부 잠긴 가방 안에 들어 있었다고 했다. 단순 사고라면 순수가 가방에 담겨 있었을 리 없었다. 그동안 의혹으로만 갖고 있던 생각은 학대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A씨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가방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학대 사실을 확인한 것만 같았다.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순수는 처음 어떻게 발견됐나.
“지난해 5월 4일 최초 발견자분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재개발지역의 한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했다. 쓰레기 더미에 놓인 알록달록한 색의 가방이 꿈틀거려 가까이 다가갔더니 더욱 큰 움직임이 보였다고 한다. 그분이 동대문구청에 신고했고 구청 직원이 와서 함께 가방을 열었더니 코와 입 부분이 잘린 순수가 있었다. 발견자분과 직접 통화해 들은 내용이다.”
-당시 순수의 상태는 어땠나.
“구조 후 순수와 함께 지내면서 느낀 건 순수가 굉장히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아이라는 거다. 그런데 발견 직후에는 가방 안에서 고통이 극심했는지 공격성을 드러냈다고 한다. 코와 입이 잘리고 목에 케이블타이가 조여져 있는 등 겉모습도 참혹했다.”
-이후 치료 과정은?
“유기견 앱에서 보호소에 있는 순수 사진을 보고 지난해 5월 27일 집으로 데려온 뒤 총 7~8차례 수술을 했다. 일단 코가 잘려서 콧구멍만 남아 있었는데, 상처가 스스로 회복되는 과정에서 살이 붙더라. 콧구멍이 사라지니 코로 숨 쉬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콧구멍을 뚫는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
코를 복원하는 수술을 받으려면 발바닥 패드를 떼야 하는데 코 모양만 만드는 것일 뿐 기능이 없기 때문에 순수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수술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입술과 인중 복원 수술을 받았다. 담당 대학병원 교수님이 ‘당겨 올 피부가 부족하지만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해 수술을 진행했는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순수가 사라진 코 부위를 계속 핥아서 수술 자리가 벌어지는 바람에 재수술을 반복했다. 지금은 수술을 너무 많이 받아서 잠시 쉬고 있다. 상처 부위가 너무 크게 벌어지면 재봉합에 대해 상담해 보려 한다. 콧구멍도 다시 작아지고 있는데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목에는 조여 있던 케이블타이 때문에 흉터가 목걸이처럼 남았다.”

-현재 순수의 건강 상태는?
“후유증처럼 계속 재채기를 심하게 한다. 숨을 못 쉬니까 ‘켁켁’ 거리기도 한다. 초반에는 곁을 잘 안 주고 눈치를 봤는데 노력하니까 지금은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다.”
-학대라고 확신하는 근거가 있나.
“수의사분들이 순수의 치아와 잇몸은 멀쩡한데 코와 입술만 일자 단면으로 깨끗하게 잘려 있다고 하더라. 칼 등 예리한 연장에 의해 후천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는 소견서도 받았다. 케이블타이만 봐도 그건 누군가가 일부러 묶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최근 최초 발견자분과 대화하고 나서 확신이 생겼다. 구청 관계자를 통해 최초 발견자분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순수가 담겨 있던 가방이 지퍼까지 모두 잠겨 있었다고 하더라. 사람이 한 짓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뒤늦게 신고하게 된 이유는?
“처음에는 순수가 큰 수술을 받아야 해서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컸던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오랜 기간 유기견 구조 봉사를 해 왔지만 이렇게 끔찍한 사건은 처음 접해봤다. 너무 참혹해서 ‘정말 이렇게까지 했다고?’라는 생각이 계속 들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그런데 이렇게 넘어가기에는 순수에게 너무 미안하더라. 누가 봐도 학대가 명확한데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고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언론 제보, 공론화를 위한 SNS 운영 등도 하고 있다.”
-홀로 싸우고 있는 건가.
“SNS 등으로 순수의 사연을 접한 분들이 도와주고 계신다. 적극적으로 나서 주시는 분은 1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순수의 사연을 알리기 위한 전단지를 배포해주시고, 커뮤니티에도 관련 글을 공유해주고 있다. 수술도 처음에는 전부 사비로 했는데 지금은 교통비를 제외하고 대부분 후원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순수 사건을 통해 알리고 싶은 부분이 있나.
“반려동물 분양 절차에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학대의 근본적인 원인은 생명 존중 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지식도 없이 기본적인 교육도 받지 않고 반려동물을 분양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분양숍에 물건처럼 예쁘게 진열된 반려동물을 보고 혹해서 샀다가 뒤따르는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쉽게 버리는 것 아닌가. 유기도 유기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학대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기르는 경우를 봉사하는 동안 정말 많이 봤다.
따라서 분양받으려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원 확인이 되면 좋겠다. 동물 학대, 폭력 등의 전과가 없는지 확인하고 소재지 정도는 파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양업자와 관련해서는 자격증제가 도입돼 최소한의 훈육법이나 윤리의식 등을 분양받으려는 사람에게 의무 교육하게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분양받으려는 사람이 기본적인 강의를 이수하는 방식도 효율적일 것 같다. 이를 어길 시 강력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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