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양곤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틀 연속 벌어졌다. 시위대는 유혈 진압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물리적 충돌 대신 비폭력 저항운동에 나섰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는 지난 주말 내내 수만명 규모의 쿠데타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군부에 의해 구금된 아웅 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을 석방하고 쿠데타를 규탄한다는 목적이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우리는 군부 독재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시위를 하러 나왔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수치 고문이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 깃발을 앞세운 시위대는 저항의 상징으로 알려진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차량 운행자들도 경적을 울리며 시위대에 힘을 보탰다.
미얀마에서 양곤 다음으로 큰 만달레이에서도 학생과 의료진을 주축으로 한 쿠데타 타도 시위가 벌어졌다. 동남부 해안 도시 몰라민에서도 100명가량이 항의시위를 벌였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같은 시민 불복종 운동이 거세지는 가운데 군정은 무장 경찰을 배치하고 인터넷 망을 차단하는 등 시위대를 와해하기 위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얀마 도심에는 진압복을 입은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시위를 막아서고 있다. 일부 병력은 방패와 총기로 무장한 채 시위대를 지켜보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경찰과 시민 간의 물리적 충돌로 인한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쿠데타 이후 시민 160명 이상이 체포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날부터는 인터넷망도 차단되고 있다. 네트워크 모니터링 단체 ‘넷블록스’에 따르면 미얀마의 인터넷 접속률은 이날 기준 평소의 16%에 불과하다. 군정은 이미 1일부터 시위대의 결집을 막기 위해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주요 소셜미디어(SNS)의 접속을 차단했다.
토마스 앤드류스 미얀마 특별인권조사관은 “군부는 인터넷망을 차단해 시민들의 저항 운동을 마비시키고 어둠 속에 가두려 하고 있다”면서 “우리 모두는 미얀마 시민들의 편에 서서 확고한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을 마비시킨 것을 시작으로 군정이 미얀마를 완전한 ‘폐쇄 사회’로 만들어 장악하려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필 로버슨 국제인권감시기구 아시아지부 부국장은 “미얀마 군부는 나라의 셔터를 내린 다음 목소리를 내려는 시민들을 제압하고 체포하며 유린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군부가 강력한 대응을 시사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유혈 진압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비폭력·평화 시위로 일관하고 있다. 1988년과 2007년 민주화운동 당시 미얀마 군부는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해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같은 상황이 재연되는 것을 우려한 수치 고문도 쿠데타 당일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되 비폭력으로 대항하라”고 당부했다.
현지 SNS 영상을 보면 시위대는 진압을 위해 배치된 경찰과 거리를 두고 구호를 외치는 등 충돌을 피했다. 바리케이드 등으로 행진 경로가 막히면 방향을 돌려 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에게 다가가 장미꽃을 달아주며 “군정이 아닌 국민의 편에 서달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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