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훈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동면’이 출간됐다. 50편의 시가 4부로 나누어 구성된 시집이다.
정세훈 시인은 시집 권두의 ‘시인의 말’에서 “우리의 문학은 산업화와 자본으로부터 점령당한 인간의 삶의 본질을 찾아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며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여 우리 사회를 진정한 인간의 삶을 위한 장으로 구축해가야 한다”고 밝혔다.
시집 제목으로 내세운 ‘동면’이란 겨울이 지난 후 봄에서 가을까지 이어질 새로운 삶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겨울 동안의 긴 잠이다.
“전철역엔 함박눈 대신 스산한 겨울비가 내린다
이른 아침 출근길을 적시었던
때아닌 겨울비가
깊은 밤 뒤늦은 귀갓길 광장에
번들번들 스며들고 있다
가까스로 빗방울을 털어낸
고단한 발길들
승산 없는 생의 승부수를 걸어놓고
총총히 빠져나간 불빛 흐린 전철역사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하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얼어붙은 노숙자의 잠자리를
실금실금 파고들고
정해진 궤도를 따라 달려온
마지막 전동차
비 젖은 머리통을 숨 가쁘게 들이밀고
들어온 야심한 밤
생이 무언지 제대로 젖어보지 못한
우리들의 겨울날은
때아닌 겨울비와 통정을 하며
또다시 하룻밤 동면에 들어가고 있다”(시 ‘동면’ 전문)
이성혁 평론가는 해설에서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이 산다는 것, 다시 말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면서 어떤 악조건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열매를 맺으며 숲을 이룬다는 것은 사막과 같은 세상을 전복할 세계 내부의 잠재성이 땅 위로 현실화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라고 평가했다.
1955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정세훈 시인은 지난해 노동문학관건립위원회를 조직, 홍성에 사비로 국내 최초의 노동문학관을 건립해 주목을 받았다.
정 시인은 중학교 졸업 후 소년노동자가 되어 소규모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1989년 등단했다. 제32회 기독교문화대상과 제1회 충청남도 올해의예술인상을 수상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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