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 살 동갑내기 청년 진보씨와 보수씨는 지난달 25일 난생처음 유튜브에 접속했다. 안내자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유저들이 모인 광장 곳곳을 탐방했다. 계정을 만들고 처음 본 홈 화면엔 스포츠, 영화, 동물 관련 콘텐츠가 즐비했다.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을 내린 다음 날이었지만 정치 관련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진보씨와 보수씨는 관심사였던 ‘노무현’과 ‘박근혜’를 각각 첫 검색어로 선정했다. 이후로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상위 영상만을 따라가며 하루 1시간씩 시청하는 유튜브 여정을 일주일간 계속했다.
첫날 시청이 끝나자 진보씨 메인 화면에 걸린 추천 영상 16개 중 4개(25%)가 진보 채널로 바뀌었다. 구독한 채널이 없었는데도 홈 화면에 뜬 진보 채널 숫자가 2일째 1개, 4일째 6개, 7일째 8개로 늘었다. 보수씨도 첫날 일정 이후 5개의 보수 성향 콘텐츠가 추천됐고, 일주일 후에는 16개 추천 영상 중 9개가 보수 채널로 바뀌었다.
진보씨와 보수씨는 국민일보가 알고리즘 실험을 위해 만든 가상 인물이다. 1990년 1월 1일생 신규 계정을 개설하고 각각 진보 영상과 보수 영상을 매일 1시간씩 시청하게 했다. 날마다 영상 시청 전후 홈 화면에 노출된 추천 영상 16개씩을 분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홈 화면 영상은 각자가 선택한 이념성향으로만 수렴되는 양상을 보였다.
알고리즘 실험

특정 성향의 채널을 구독한 상태에서는 수렴 속도가 더 빨랐다. 또 다른 실험을 위해 설계한 진보씨와 보수씨 계정은 성향별 구독자 상위 5개 채널씩을 구독하게 하고 1주일간 알고리즘 여행을 떠나게 했다. 진보씨는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딴지 방송국’ ‘팩트TV’ ‘서울의 소리’ ‘민중의 소리’를 구독했다. 보수씨도 같은 날 ‘신의 한 수’ ‘진성호방송’ ‘신인균의 국방TV’ ‘배승희 변호사’ ‘김태우TV’ 구독을 시작했다.
첫날 노무현재단 영상을 시청하자마자 추천 리스트에 진보채널 이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추천 영상리스트 20개 중 5개(25%)가 친여 성향 영상이었다. 보수 채널 콘텐츠는 전무했다. 보수씨도 신의한수 영상을 처음 클릭하자 추천 영상 20개 중 16개(80%)가 보수 채널로 바뀌었다. 나머지 4개 콘텐츠는 SBS, YTN, KBS 등 전통 언론사 뉴스였다.
구독 일주일째 진보씨에게 추천된 영상 20개 중 진보 채널 영상은 14개에 달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보수 성향 채널은 그의 추천리스트에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진보씨가 알고리즘 안내를 받아 따라간 곳에는 열성 여당 지지자들만 모여 있었다. 실험 마지막 날 방문한 광장에선 “(조국 딸에 대한) 표창장을 최성해 총장이 허락해주지 않았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사원 공화국도 아닌 나라에서 감사원장이 대통령 국정과제 성공 여부를 판단하려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광장 문패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였다. 이를 함께 듣던 유저들은 댓글 창에 “조국 가족의 고통에 마음이 아프다” “추다르크를 응원한다”고 화답했다.
보수씨도 다르지 않았다. 알고리즘만 따라 탐방만 했을 뿐인데, 일주일 후 그에게 제안된 영상은 20개 중 19개가 진성호방송, 배승희 변호사 등 보수 채널이었다. 보수씨가 지나온 광장에선 여권에 대한 분노, 현실에 대한 개탄이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었다.
추천 영상을 따라간 여정에선 유저가 편향된 정보에 갇혀버리는 ‘필터버블’ 현상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실험 일주일 째 둘의 종착지는 친여와 반여로 갈린 극단의 광장이었다. 진보씨나 보수씨가 상대편의 의견을 들을 기회는 전무 하다시피 했다.
유튜브 세계를 부유하는 여행자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왔다. 검색 행위를 제외하면 유튜브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는 알고리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내자가 데려다 준 장소는 대부분 유저 취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문까’와 ‘국뽕’의 경로

진보씨와 보수씨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념 편향성이 심한 채널이 추천됐다. 이런 채널은 이미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추천 알고리즘 내 연결성이 높고, 유저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국민일보 12월 10일자 5·6·8면 참조).
그런데 이념이 편향된 광장은 중립 성격의 단어를 검색한 유저들까지 끌어당기는 ‘깔때기 효과’도 발휘하고 있었다.
‘최저임금’ ‘일자리’를 키워드로 넣었을 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2단계 연결망을 추적해 봤다. 유튜브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키워드 관련도가 높은 5개의 기준 동영상을 추출했더니 모두 125개의 하위 동영상이 수집됐다. 이들 동영상은 모두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배치된 것이다.
‘정책의 배신 최저임금 인상은 어떻게 청년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는가’라는 영상을 시청했을 때 추천된 5개 중 4개가 현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주로 코로나19 정책, 주52시간 제도를 주제로 정부와 여당에 날을 세우는 내용이었다. 이들 영상은 다시 ‘잘못된 재벌개혁이 중소·중견기업을 죽이는 이유’라는 영상으로 이어졌다. ‘최저임금→코로나 재정정책 실패→주52시간 제도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잘못된 재벌개혁의 병폐’라는 추천 동영상 연결고리가 형성돼 있었다. 알고리즘이 최저임금 이슈를 찾았던 유저를 보수적인 정치 성향의 영상들로 이끈 것이다.

‘K방역’으로 시작한 여정은 주로 애국심을 자극하는 경로로 구성됐다. ‘K-방역 모델, 이제는 세계 표준으로!’라는 산업통상자원부 제작 영상과 연결된 7개 영상 중 5개는 K방역을 칭송하거나 정부를 찬양하는 친여 성향 콘텐츠로 연결됐다.
그중 한 경로는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을 여권 입장에서 해석하는 영상으로까지 연결됐다. 윤 총장 직무배제와 관련해 윤 총장과 언론이 판사를 압박하고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에 달린 댓글은 ‘검사는 쓰레기’ ‘총장은 거짓말쟁이’ 등 친여 성향이 주를 이뤘다. 코로나19 방역 자체를 궁금해 했던 사람들을 친여의 필터버블 속으로 안내한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금태섭’ ‘탈당’을 검색했을 땐 ‘침묵 깬 윤석열, 검찰총장 법무부 부하 아냐’라는 언론사 콘텐츠가 연결성이 가장 높은 기준 동영상으로 꼽혔는데, 이 영상과 추천으로 연결된 영상 14개 중 8개가 보수 영상이었다. 그중 하나는 개인 유튜버인 진성호방송의 영상으로 여권의 부동산 정책 인식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진보채널 영상은 3개 뿐이었다.
우물에 갇힌 개구리의 고백

유튜버 케일럽 케인(27)은 지난해 3월 ‘대안 우파의 파이프라인으로 추락한 경험’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는 2014년 경제적 문제와 우울감이 겹치면서 자조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추천 목록이 그를 스테판 몰리뉴라는 극우 유튜버와 연결시켰다. 처음 접한 영상은 자기개발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몰리뉴가 제작한 다른 콘텐츠는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 성향이 강했다. 케인은 “몰리뉴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가 비판하는 방식이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고백했다.
자유주의자였던 그는 몰리뉴의 영상을 접한 이후 5년간 보다 많은 극우 유튜버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 여정을 이끈 게 알고리즘이었다. 알고리즘은 ‘민주당이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등의 음모론을 확산시킨 계정으로까지 그를 안내했다. 케인은 그해 6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당시) 극우 성향 영상에 세뇌당했다. ‘토끼굴(rabbit hole)’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굴속에 들어가면서 이상한 세상을 경험하게 된 것처럼 알고리즘이 자신을 위험하고 이상한 세계로 이끌었다는 뜻이다.
유튜브가 태생한 미국에서는 이미 1년여 전부터 알고리즘으로 인해 극단주의에 빠졌다는 자기고백이 줄을 잇고 있다. 알고리즘이 안내한 대로 따라가다가 극단의 우물에 갇혔다는 것이다. 이들의 고백은 진보씨나 보수씨의 알고리즘 여정과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알고리즘에 의한 극단화를 체감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를 운영하는 임경빈(39)씨는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이 좀 넘었는데 그동안 극단화가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유튜브 알고리즘 정책하에서는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기가 힘든 구조”라며 “같은 취향의 영상을 반복적으로 추천하는 형태이다 보니 확증편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구글과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 개발팀에서 일했던 프랑스계 인공지능학자 기욤 샬로(Guillaume Chaslot)의 우려와도 일치한다. 그는 2018년 2월 가디언 인터뷰에서 “유튜브 세상은 현실과 닮아있는 것 같지만 시청자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왜곡돼 있다. 추천 알고리즘의 최우선 순위는 시청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며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또 “추천 알고리즘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아니다”며 “유혹에 최적화돼 있고, 결국 필터버블이 강화돼 사람이 단순화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이미 유저들의 알고리즘 의존도는 높다. 닐 모한(Neal Mohan) 구글 수석부사장 겸 유튜브 최고제품책임자(CPO)에 따르면 유튜브 시청의 70%는 알고리즘 추천으로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본성과 알고리즘이 결합하면 분열된 집단 간의 결집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데 발달한 기술과 알고리즘이 여기에 드는 비용을 극적으로 줄여주기 때문이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알고리즘은 비슷한 걸 보여줘야 사람들이 유튜브에 오래 머문다는 걸 알고 있다. 결국 유저들에게는 반대편의 의견 노출 기회가 떨어진다”며 “정치는 갈등을 조절하고 타협하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 중간지대가 허약하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고 우려했다. 이상호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인간이 합리적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설사 유튜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만든다고 해도 이용자가 그렇게 쓰지를 않을 것”이라며 “이용자는 보는 것만 보고 싶어 하고, 알고리즘은 그런 방향으로 이용자를 안내하면서 점점 분열이 가속화 한다”고 말했다.
임주언 전웅빈 문동성 박세원 기자 eon@kmib.co.kr
[극단으로 안내하는 알고리즘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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