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99. ‘전쟁과 항쟁’ 치유와 구원의 서사 <전쟁의 슬픔> <슬픔과 씨앗>

Է:2020-11-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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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악몽에 시달리는 동시대의 <전쟁의 슬픔>과 <항쟁>

한국 사회의 참혹하고 잔인한 역사의 기록과 5·18광주 항쟁의 그날을 떠올리게 되는 소설이 있다.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의 작품 <전쟁의 슬픔>(1991)이다.

“마지막 고통에서 사지를 부르르 떨며 발버둥 치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적병의 몸에 못을 박듯 한 발 한 발 방아쇠를 당겼다. 피가 용솟음 쳐 끼엔의 바짓 가랑이를 적셨다.(중략) 그는 죽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죽음조차도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고 흥밋 거리도 되지 않았다”

<전쟁의 슬픔>에서 주인공 끼안이 적군(敵軍)을 향해 당긴 방아쇠 사이로 튀어 오르는 죽음의 핏물로 투영되는 주인공 끼안을 작가 바오 닌은 분신(分身)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가 전쟁에서 승리한 북 베트남 군으로 참전한 살육(殺戮)의 전쟁터를 잔혹한 베트남전쟁(1962-1975)의 참상의 악몽으로 그려내고 있다. 탱크로 살점을 짓누르며 달려오고 시체는 전선을 막아서는 산더미가 되어 핏물은 강으로 변해버릴 것 같은 잔혹한 역사를 생생하게 소환하며 오늘도 전쟁터를 배회한다.

이러한 다층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바오닌(Bao Ninh)의 작품 <전쟁의 슬픔>의 원작을 동시대로 재 해석해 공연되는 영상 쇼케이스가 올해 5주년이 된 국립아시아전당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물 개발>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코로나19로 창작 작업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해 부터 창·제작 워크숍을 마련하고 올해 영상 쇼 케이스를 거쳐 2021년에는 두 작품을 세계 초연을 목표로 <전쟁의 슬픔>,<슬픔과 씨앗>이라는 공연으로 45분 분량 영상에 담아 국립아시아전당 예술극장1에서 상영회(10.30~11.1)를 거쳤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극단민들레의 <전쟁의 슬픔>(각색, 연출 송인현)과 오딘극단으로 세계 무대에 알려진 연극인류학의 거장(巨匠) 유제니오 바르바가 이끄는 NTL(Nordisk Teaterlaboratorium-Odin teatret, 이하 오딘극단으로 통칭>은 <슬픔과 씨앗> (연출 카이 브레홀트, Co-Director Kai Bredholt, 공동 연출 이동일, 한국 유라시안연극 연구소 소장) 으로 원작을 동시대성으로 재 해석하고 배우들은 무대의 현존성 유지하며 곡예서커스, 신체연기, 아크로바틱, 춤, 노래, 한국적인 문양과 전통, 문화상호주의적 수용, 바터(문화 나눔)지역 공동체들도 개방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며 바오 닌의 원작을 동시대의 언어로 확장했다.


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ACC) 원작의 수용

이번 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이 아시아 문학 중 한국 사회와 동시대가 공감 할 수 있는 주제이자 현재에도 그 아픔과 악몽이 진행 중인 전쟁과 5·18 광주민주화 항쟁(抗爭) 이라는 키워드를 녹여내는데 있어 2018 광주 아시아문학상 수상작<전쟁의 슬픔>을 원작으로 수용하고 있다.

전쟁과 항쟁이라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인 사실은 박제되어 진실이 은폐된 채 그 통증이 살아지지 않고 있는 오늘의 역사다. 홍콩 사태는 한국 사회의 80년대의 현실을 비추고 세계는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를 겪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동 창·제작의 텍스트로 삼고 있는 베트남 작가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에 내재된 것 것은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이며, 치유되지 못한 현재이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흐르고 있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작이라는 점에서 텍스트의 수용은 진실의 은폐, 야만적인 폭력과 전쟁의 참혹함을 투사(透射)하며 <전쟁>과 <항쟁>이라는 역사적 키워드를 연극의 언어로 구현해 내는 적합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두 작품이 원작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 해석 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민들레의< 전쟁의 슬픔>은 원작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우리의 전통과 연희로 풀어내고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을 인간의 혼돈과 기억, 여전히 치유 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치유의 씻김 굿판을 벌이며 망자의 혼령을 달래고 치유하려는 시선, 한국적인 무대 수용의 태도, 전통과 연희의 양식으로 원작을 수용하려고 했다는 점이 이번 국립아시아 전당 <국제 공동 창·제작 공연물 개발>의 기획 의도를 살려내고 있다.

두 번째 작품은 <슬픔과 씨앗>인데 , 동·서양이 융합된 문화 상호주의 표현성으로 서사적 거리 두기를 통한 <전쟁의 슬픔>을 광주와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넘어 세계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오브제로 삼고 있는 ‘씨앗’은 다양한 의미의 층위를 무대에서 생산해 내며 한국 사회로 멈추어버린 죽음, 공포, 삶, 인간, 역사, 기억 등 다양한 의미로 확장해 전쟁과 광주항쟁의 비극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하얀 종이로 연을 만들어 한국 사회로 날리는 씻김의 행위는 극단의 현대적 언어로 표현 된다. 슬픔의 씨앗은 한국 사회의 토양(흙)을 뚫고 생명의 빛을 받으며 현재 시간으로 잉태 될 수 없는 죽음의 씨앗으로 표상되며 다양한 기호로 변주된다.

배우들도 고정된 역할로 분하지 않고 있는데, 역할 바꾸기를 통한 극중 인물은 프엉과 끼안의 내면을 치유하며 참혹한 전쟁의 역사와 폭력성을 때로는 가해자와-피해자의 시선으로 교차시켜 전쟁의 폭력과 동시대의 절규를 그려내고 있다.

이번 영상 쇼 케이스는 코로나 19로 해외극단들이 한국 관객과 대면 공연을 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에서 참여 극단들은 작업 과정부터 줌(ZOOM)을 통한 화상회의, 배우 선발, 대본구성과 연출, 피지컬스코어(신체악보)등 훈련 방법 등을 공유하며 제작 과정에 참여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번 제작과 창작 과정의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유라시안 연극의 뿌리와 새로운 전망’을 주제로 오프라인 토론회와 오딘극단의 ‘달 아래 위대한 도시들’ 상영회를 거쳐 ‘연극의 원형성과 교류, 미래 전망을 모색 할 수 있는 온라인 토론회’도 개최했다.

특별한 점은, 상영회가 끝난 뒤 ZOOM을 통해 NTL극단의 연출과 드라마투르기가 생방송을 하듯 관객과 대화를 이끌며 작품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소통하는 신선한 방식을 취했고 관객은 질문과 높은 관심을 보였다.

45분의 영상으로 표현된 두 작품은 실제 무대 공연 못지않은 현장성을 담아냈는데 특히 NTL 극단의 <슬픔의 씨앗>은 무대를 담아내는 영상미를 공간, 인물, 등장인물의 내면성, 장면의 구도와 인간의 갈등과 심리의 변화와 태도 등 육체와 표정으로 쏟아지는 감정들을 영상으로 포착해 입체적으로 그려내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영상미를 연출했다.

단순한 기술적인 촬영 접근 방식 보다는 연극의 특성과 무대 미학을 영상으로 유지하면서도 장면을 매혹적으로 살려내 드라마의 집중도를 높였다. 극단 민들레는 파편적인 끼안의 악몽을 원작의 배열로 따르면서도 우리의 전통과 연희, 태극권과 인도무술인 깔리리빠야트로 풀어내며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을 한국 사회의 전쟁과 상처로 찢겨진 인간의 혼돈과 기억, 여전히 치유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시선으로 풀어냈다.

특히 끼안의 악몽은 참혹한 전쟁의 야만적인 폭력으로 한국 사회를 맴돌고 있는 전쟁의 영웅들과 민주 열사의 혼령을 위로하고 망자의 슬픔을 치유하는 망자천도 굿인 진오귀 굿 12거리 형식으로 악몽의 기억을 따라 굿판을 벌이며 혼령들로 분한다.


오딘극단은 문화 상호주의와 3세계의 시선으로 재 해석해 한국전쟁, 5·18광주항쟁의 폭력과 잔혹한 전쟁의 잔상을 비추고 민주화 운동의 열사들을 소환해 한국 사회의 악몽을 동시대성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잔혹한 전쟁과 야만적 폭력과 역사의 악몽을 거세할 수 있는 것은 가해자의 내면으로 자기 반성적 속죄를 통해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치유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공연을 본 아이들과 학생, 덴마크 시민, 배우와 공연 관계자들이 하얀 연 모양을 만들어 마치 한국 사회로 날려 보내는 장면은 전쟁과 폭력의 폐허로 차디찬 한국 사회의 땅에 박혀있는 죽음과 민주열사의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구원의 씻김 행위를 표상하고 있다.

생명력이 말라버린 씨앗을 연극적 오브제로 표현하고 서사적 거리 두기를 통해 동시대의 잔혹한 역사의 시간과 인간의 혼돈, 폭력과 무질서, 프엉의 내면의 불안함과 상실, 순수한 자아의 파괴와 내면의 몰락을 씨앗으로 다층적 의미(태극기, 죽음, 인간, 내면, 삶, 자연, 무질서, 혼돈과 파괴) 로 생산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무대 공간의 오브제로 사용된 씨앗의 언어는 원작에 한 문장으로 드러난다.

“솔직히 이 끝도 없는 전쟁을 위해 뿌려지는 씨앗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끼안의 대사에 드러나는 씨앗은 전쟁의 폐허로 뿌려지는 죽음이며,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태양을 마주할 수 없는 전쟁과 폭력의 역사로 무참히 버려진 운명이다.

살육의 전쟁터에서 폭력의 시대에서 5·18 광주민주화 항쟁에서, 무참히 쓰러지고 죽어간 전쟁의 전사자들과 열사의 혼령들이다. 씨앗은 역사에 숨겨지고 망각된 기억을 꺼낸다.

원작 후반에 프엉의 영혼과 육체가 야만적인 강간과 폭력으로 파괴된 내면의 상처를 씻겨내기 위해 연못과 덤불숲에서 목욕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끼안은 프엉을 떠난다. 이 장면을 오딘극단 배우 시닐투위센(Signild Thygesen)는 프엉의 혼돈스러운 내면과 파괴 된 자아와 영혼을 완벽한 연기로 프엉의 내면으로 그려진다. 검붉은 씨앗으로 몸을 닦아내고 몸속으로 씨앗을 밀어 넣는 행위를 반복하는데 씨앗은 프엉의 몸을 공격하는 야만적 폭력으로 형상화되기도, 삶이 파괴된 내면을 씻어내며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절규로 형상화된다.

오딘극단의 배우는 프엉의 비극적 절규와 삶의 욕망을 순수한 영혼으로 표현하고 연출은 동시대를 타격하는 언어로 완벽한 미장센으로 장면을 구축했다.


원작 <전쟁의 슬픔>의 시대, 그리고 오늘

작가는 1969년 민족 해방을 위해 북베트남군 27여단에 입대해(17세) 6년 동안 최전선에서 승리의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뒤에도 6개월 동안 베트남 전쟁 전사자들 유해 발굴단에서 활동한 후 전역을 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에 찾아온 베트남의 평화에도 전쟁의 기억은 악몽으로 재현되고 바오 닌은 아이너리 하게도 전쟁의 잔혹함과 악몽을 씻겨내기 위해 장편소설 <전쟁의 슬픔>을 썼다. 이 작품은 그가 겪은 베트남 전쟁의 기억을 서술하는 자전적 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바오닌의 고백적 서사를 완성해 갈 수 있도록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등장인물 (끼안)으로 동일화 시킨다. 이 주인공을 바오 닌의 현재처럼 작가이자 참전 군인으로 등장시키며 나의 시선으로 끼안의 이야기를 소설로 완성해나간다.

즉 ‘나’는 바오닌의 시선이며 끼안은 작가의 내면과 악몽 같은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들추어 낼 수 있는 분신(分身)인과 동시에 내면의 ‘나’인 것이다. 이 작품은 참전한 전쟁의 시간 흐름으로 전개되는 서술 구조를 취하지 않는데, 작가가 겪고 있는 악몽처럼 파편화 된 이야기를 끼안·프엉·나의 시선으로 전쟁의 잔혹한 참상을 교직(交織)으로 배열하고 있다.

<전쟁의 슬픔>을 단순히 전쟁이야기나 체험적 서술로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끼안은 작가 바오 닌 과 동일하게 악몽에 시달린다. 전쟁터에서 그가 바라본 죽음의 잔혹한 참상과 기억의 시선은 타락한 인간의 욕망, 폭력과 죽음, 성(性)의 유린과 착취, 허무만이 존재하는 전쟁터이며 화해·용서·속죄·치유가 상실된 현재로 드러난다.

끼안은 동료병사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밀림 고이 혼에서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 하면서 악몽의 기억은 살아 움직인다. 베트남 남·북 전쟁의 참혹함을 마치 기록서사로 서술하고 있는데 끼안(작가)을 중심으로 잔혹한 악몽과 비극은 살아나며 현재 나의 시선과 내면으로 중첩되어 <전쟁의 슬픔>은 바오 닌의 고백적 서사가 된다.


<전쟁의 슬픔>이 베트남전쟁의 잔혹한 현장과 프엉과의 비극적 이야기는 현재(나/바오 닌)-과거 (참전군인/끼안/나)-현재(작가/끼안/나)로 기억을 더듬으며 기록의 글을 써야만 악몽을 끊어 버릴 수 있는 나와 끼안의 시선으로 교차되는 이중구조를 취하고 있다.

소설은 전쟁 악몽이 재현되는 것처럼 탈영병 동료병사(깐)의 처참한 죽음, 피비린내가 진동 하고 폭탄으로 육신이 잘려나가도 홍마초를 피며 환각상태로 고향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만나 죽음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동료병사들의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배열된다.

세 여자를 밤마다 찾아다니던 병사들, 시체더미를 탱크바퀴로 짓누르며 전선을 누빈 T54 탱크 운전병 브엉과 소대장(꾸앙)이 수류탄을 든 채로 쏟아내는 죽음과 절규들 소리들이 문장을 뚫고 전쟁의 잔혹함을 그려낸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바오 닌이 끼안으로 분신화 해 또 다른 나로써 끼안을 등장시키며 “잊기 위해 써야 하고 기억하기 위해 써야”하는 행위는 비극적인 여인 프엉을 향한 구원(救援)의 속죄이며 문장으로 표현되는 구술적 절규다. 속죄와 참회로써 그를 괴롭히는 악몽의 무의식을 씻겨내기 위한 자기구원으로써 씻김의 행위 인 것이다.

끼안의 악몽과 꿈을 배회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 겪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작품 후반부터 서술 되는 끼안과 프엉의 사랑은 전쟁의 폐허와 인간의 야만적인 욕망과 잔인한 폭력으로 무참하게 짓밟혀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포탄이 떨어지는 군수품 수송 열차에서 프엉은 강간을 당하게 되고 출정을 준비하는 북베트남 군인들이 머물고 있는 폐교에서도 프엉의 순수한 영혼은 유린당한다.

끼안은 프엉의 파괴된 자아와 전쟁의 폭력을 외면한 채 보충대로 입대를 하게 된다. 제대 후에도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 프엉을 치유와 속죄로써 삶이 균열된 프엉의 삶을 받아들이는데 이 작품에서 타격하고 있는 것은 폭력과 야만성, 프엉(여자)의 파괴된 영혼과 삶의 몰락, 끼안과 프엉이 겪었던 전쟁과 야만적 폭력의 기억과 악몽이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평화가 찾아온 뒤 끼안의 악몽은 프엉의 파괴된 영혼을 ‛가해자’로서 상처의 내면을 보듬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사랑하는 여인 프엉이 전쟁으로 파괴될 때 끼안의 내면은 피해자로써 프엉을 바라보지 못했고 악몽은 여전히 그의 꿈속을 괴롭힌다. 현재에도 프엉을 사랑하고 조각난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끼안의 태도는 속죄, 용서의 의미이며 이것이 수행되었을 때 가해자로서 끼안은 자기반성적 치유를 통해 악몽을 제거하게 되고 “기억하기 위해 써야”하는 작가의 글쓰기는 속죄하는 구원의 수행 과정이 된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이 한국전쟁과 베트남 참전, 5·18민주화항쟁을 지나온 한국 사회에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인 이유다. 전쟁과 야만적인 폭력의 역사에 산자는 끼안처럼 악몽에 시달리고 망자의 혼과 넋을 위로해줄 속죄와 가해자는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잔혹한 전쟁과 야만적인 폭력의 역사를 악몽에서 제거 할 수 있는 것은 속죄이며, 가해자의 반성적 행위가 일어났을 때 악몽은 제거되고 멈추어버린 역사의 시간은 치유로 용해되어 살아날 수 있다.

‘전쟁과 항쟁’ 치유·구원의 서사, 극단 민들레 <전쟁의 슬픔>

두 극단이 바오 닌 소설 <전쟁의 슬픔>을 다른 관점에서 재 해석하고 동 시대적 관점(전쟁의 비극, 광주항쟁, 민주와 항쟁의 세계, 속죄와 치유)에서 그 의미를 무대로 시도하려는 점이 특별했다. 끼안의 악몽과 작가로서 글쓰기의 치열한 사투는 자기 반성적 치유로써 행위로 재현되는데 이것은 잔혹한 전쟁과 비극을 겪은 끼안의 내면을 투사하며 제거할 수 없는 프엉과의 비극을 구원하고자 하는 의식이다.

전쟁의 내전을 치른 뒤 6개월 동안 유해 발굴에서 동료 병사들의 유골들을 마주할 때 마다 악몽과 기억은 현재에도 전쟁터를 배회하고 끼안의 과거는 제거할 수 없는 현재로 악몽은 전이(轉移)된다. 잔혹한 전쟁의 기록들 속에서 재현 되는 죽음과 비극은 ‘승리의 평화’가 아니라 ‘죽음의 평화’로 망자들의 혼령은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전쟁의 슬픔>을 재구성 하고 있는 끼안의 분열된 자아는 과거의 기억을 서술하는 (나), 치열한 기록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작가/나) 그리고 과거의 나(끼안)로 분열되며 현재-과거-현재로 파편적으로 조합되고 악몽은 꿈처럼 불규칙적으로 배열되며 전쟁과 비극의 역사로 멈추어 버린 분열된 자아를 투영한다.

우선 극단 민들레는 <전쟁의 슬픔>에서 내재되고 있는 악몽·기억·무의식·사랑과 이별·삶과 죽음 등 전쟁터의 잔혹한 죽음들과 비극의 기억을 제거할 수 없는 끼안의 분열된 내면과 악몽을 바라본다.

여전히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망자의 혼령(魂靈)들을 망자천도 굿(진오귀 굿) 12거리 형식으로 장면마다 배열해 치유의 행위로써 망자의 넋과 혼을 달래는 굿판을 열고, 령(靈)들은 탈(가면)으로 환치 되어 망자의 이미지를 나타내며 배우들은 신체, 이미지, 오브제, 피지컬스코어를 활용한 이미지 극으로 장면을 구현한다.

한국적인 타악의 소리와 리듬은 배우들의 심리와 내면의 불안과 갈등으로 증폭되고 끼안의 내면과 균열을 따라 <전쟁의 슬픔>서사를 끼안의 악몽을 따라 파편적으로 재구성한다. 무대는 베트남이라는 시공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은 대나무의자로(오브제) 대체되고, 베트남 아오자이는 우리의 전통과, 베트남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수용했다.

여전히 악몽이 지배하고 있는 끼안의 현재, 전쟁과 비극의 슬픔을 치열한 글쓰기로 기록하려는 현재 나의(작가의 방)은 구겨진 종이 더미로 공간을 형상화 하고 있고 나열되는 장면의구성은 배우들의 움직임과 이미지 형상으로 소설의 특정한 장면을 투사한다.

악몽은 과거-현재-과거-현재로 파편적으로 이탈해 베트남 전쟁의 잔혹한 비극을 구현한다.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재 (나)의 분신 극중 인물 끼안은 “나는 반드시 써야 해” 라고 말을 하며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으로 돌아가 광활한 서사는 입체적으로 재현된다.


<전쟁의 슬픔>에서 끼안의 악몽을 맴돌고 있는 중심적인 서사는 프엉과의 비극적인 이야기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끼안의 아버지와 프엉, 군 수송 열차 안에서의 프엉의 강간 사건, 수송 열차 이후 폐교 인근 연못과 덤불 숲에서 여성의 순수를 훼손 당한 프엉의 비극적 내면의 균열을 굿과 이미지로 끼안의 악몽으로 투사되고 무대는 현재와 과거의 두 인물로 끼안을 중첩시킨다. 화물 열차 장면은 프레임 박스와 배우의 움직임, 소리로 이미지화 되고 악몽이 짓누르는 끼안의 혼돈, 슬픔과 상실, 불안과 우울, 공포와 절망성은 언어를 최대한 절제한 이미지로 소환된다.

마치 무대는 그의 악몽으로 재현되는 이미지다. 전쟁, 탈영병 이야기, 탱크 병사, 프엉과의 비극적 이야기, 어머니의 편지, B3 전선전역에서 죽음의 사투를 벌인 고이혼과 홍마초 병사들 이야기 등이 마치 악몽의 이미지로 재현되고 군제대 후 끼안은 “전쟁은 끝났는데 나한테는 남은 건은 아무것도 없어. 전쟁의 환영만 남았을 뿐이야” 속죄와 자기구원으로써 끼안은 절망을 드러낸다.

전쟁은 ‘승리의 평화’가 아니라 ‘죽음의 평화’로 망자의 혼령과 전쟁의 아픔을 치유할 수 없는 현재가 된다. 글쓰기의 기록은 끼안의 속죄이며 프엉과 전선에서 참혹하게 죽은 망자를 향한 치유의 행위로써 끼안의 글쓰기는 정당화 된다. 전쟁의 승리 뒤에도 카바레를 전전하며 노쇠한 타인과 살아가는 프엉을 여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끼안의 태도는 속죄와 용서의 행위이며 기다림은 프엉을 향한 구원과 자기 반성적 속죄이자 자기 치유로써 행위이다. 악몽의 파노라마들이 파편적으로 재 구성되고 폐교 인근 연못에서 열차 안 사건 후 프엉의 내면은 물( 연못과 덤불 숲)과 관계된다.

프엉에게 물은 파괴된 육체와 자아를 씻겨내려는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는 치유로서 행위로 나타나는데 프엉은 “근처에 물가가 있으면 좋을 텐데 씻어야 겠어. 피부를 벗겨낸다고 달라진 건 없어” 자신의 파괴된 몸을 씻겨 내고자 하는 프엉에게 물은, 여성의 순수한 과거로 회복하기 위한 내면의 욕망이며 치유이다.

이어, 망자들의 유희 공간으로 변하는데 유해 발굴에서 전사자 유골과 기타를 수습할 때 고이혼 숲에서 들리던 망자의 슬픈 멜로디는 ‘전쟁’과 ‘항쟁’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망자의 혼을 위로하듯 연출은 진오귀 굿 ‘시왕베가르기’로 망자의 혼령을 달래는 의식 행위를 한다.

악몽으로 재현되는 이 장면부터 끼안과 프엉의 어린 시절, 군입대 전, 아버지와 프엉의 관계, 프엉과의 비극적 외연과 내면들이 끼안의 무의식으로 둘러 쌓여 악몽과 과거를 마주하고 끼안은 악몽과 과거의 시간을 거세 하는 화염식의 행위를 하는데, 아버지 그림과 액자, 원고들, 프엉의 비극, 어린 시절은 끼안에게 혼돈의 시간이 된다.


현재로 되살아나는 악몽은 화염식을 거쳐 거세하고 싶은 내면의 욕망으로 소각되는데 이것은 악몽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끼안에게 프엉과 전쟁의 망자들을 향한 구원과 속죄로써 행위이다. 프엉과의 비극적인 이별 사이로 무대는 망자들의 혼령들로 넘쳐 나고 작가의 방에 쌓여진 기록의 원고 더미는 상문풀이 굿판으로 죽음의 혼령과 끼안을 치유하는 의식 행위를 한다. 상문풀이는 끼안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악몽들과 혼령들을 위한 넋 달래기다.

마지막 장면에서 연출은 프엉에게 가면을 씌운다. 가면을 씌움으로써 프엉의 존재는 전쟁과 항쟁의 피해자로써 죽은 자의 시선이다. 이어 무대는 끼안이 다시 속죄의 기록을 서술하기 위한 치열한 글쓰기의 사투가 진행되고 끼안과 그의 악몽을 배회하고 있는 시대에 죽어간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씻김의 굿판을 벌인다.

끼안의 글쓰기는 자기 반성적 치유이자 속죄이며 시대와 전쟁의 죽음으로 구천을 맴돌고 있는 전쟁의 전사자들, 5·18광주민주화항쟁으로 끼안처럼 악몽에 시달리며 치유 받을 수 없는 시대에 살아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향한 속죄와 용서, 구원으로써의 씻김 굿(상문풀이)판을 벌인다.

극단 민들레의 <전쟁의 슬픔>은 시대와 역사 그리고 여전히 끼안처럼 위로와 치유 받을 수 없는 산 자와 죽은 자를 향해 우리 전통과 굿으로 혼(魂)을 달래고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끼안의 악몽을 연희, 굿, 피지컬스코어를 통한 이미지극으로 바오닌의 소설을 재구성하고 있다. 살육(殺戮)의 전쟁터와 프엉과 끼안의 비극적 이야기들을 굿과 우리의 리듬, 프엉과 끼안의 비극적 이야기들을 동시대로 소환해 망자의 혼을 달래고 치유와 구원의 행위로써의 우리전통의 수용은 공감하지만 동시대로 전이되고 있는 비극과 전쟁, 항쟁의 아픔을 정조준해 타격하지 못한 것 같다.


전쟁의 비극과 항쟁을 위로하는 오딘극단의 <슬픔과 씨앗>

애국가, 임을 위한 행진곡, 아리랑, 5·18광주항쟁의 열사(烈士)들, 태권도, 광주항쟁, 시민군과 계엄군, 홍콩사태와 스님의 분신, 풍선, 미군병사의 엘비스프레슬리의(넌 단지 그냥 개일 뿐이야), 비틀스의 노래(우주를 가로질러, 전쟁의 달인들), 탱고와 베트남 음악을 장면과 에피소드로 배합하고 배열해 바오 닌 <전쟁의 슬픔>을 동시대로 재해석했다.

전쟁의 비극과 항쟁을 죽음과 치유, 역사의 체험을 진지하면서도 광활한 놀이터로 실험적이며 경이로운 무대(영상)로 구축한다. 코로나 19로 영상으로 표현되는 50분 분량인데도 연극 무대를 이탈하지 않고 배우의 내, 외면의 연기를 포착해 내는 영상은 또 다른 바오 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을 오딘극단의 언어로 재 해석된다.

배우들의 미세한 움직임, 섬세한 표정들과 인물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포착해 내고, 전쟁의 역사와 5·18광주 항쟁의 살아있는 한국 사회의 아픔을 오딘극단의 독특한 실험적 배합으로 동시대를 타격하고 투사한다.

오딘극단의 표현방식은 세계적인 언어와 메시지로 무대와 영상을 반사시키고 배우들의 경이로운 현존연기, 곡예, 음악, 서사극적 거리두기를 통한 특정 역사를 이탈한 시공간에 탑승한 배우들의 눈빛과 몸으로 흐르는 감정의 전류는 전쟁과 광주항쟁의 산 자와 망자의 슬픔을 흘려보내고 전쟁과 인간의 비극을 품어낸다.

연출은 무대를 베트남·한국·세계의 동시대 공간으로 용해시켜 끼안의 악몽을 진지한 놀이의 서사로 역사의 잔혹한 시공간에 거리를 두면서도 전쟁 비극과, 광주 5·18 항쟁의 참혹함을 투영한다. 비극의 역사가 인간의 악몽으로 배회하고 있으며 그 아픔과 죽음이 치유되지 않고 있는 동시대의 악몽으로 살아나 배회하는 망자의 혼과 참혹한 전쟁터, 프엉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박제(剝製)된 역사가 아니며 오늘도 망각한 채 걷고 있는 한국 사회의 끼안과 프엉으로 그려진다. 여전히 잔혹함으로 한국 사회 구천을 배회하고 있는 항쟁의 열사들과 악몽을 제거 하지 못하고 살아가며 악몽을 마주하는 우리의 이야기다.


무대 공간은 검붉은 씨앗(해바라기)으로 덮혀 있다. 씨앗은 자연의 생명을 마주할 수 없는 죽음의 씨앗들이다. 씨앗은 한국전쟁, 광주항쟁, 세계전쟁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망자들의 혼을 담고, 오늘날 전쟁과 항쟁의 폐허와 공포로 잔혹하게 살점에 떨어져 나간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씨앗이다.

오브제 활용은 다양한 의미로 변주가 되는데 전쟁, 광주항쟁, 세계 전쟁에서 처참하게 죽어 구천을 맴돌고 있는 망자의 혼(魂)을 담아내는 씨앗으로 투사되기도 하고 끼안의 기억과 악몽 속에서 재현되는 전쟁터, 고이혼의 숲, 태극기, 포탄의 잔해, 핏물이 베여진 흙, 무덤, 유골, 총 소리, 죽음, 악몽, 혼령으로 표상된 무대는 죽음의 무덤과 망자의 시선으로 형상화 된다.

무대가 열리면 아오자이를 입고, 갓(笠)을 쓰고 장대 빗자루를 든 거리를 청소하는 아줌마는 해설자로 원작 <전쟁의 슬픔>의 서사를 들려준다.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으로 분한 극중 인물은 해설적 역할자로 분함과 동시에 치유를 하는 행위자로써 죽은 자의 혼을 부르고 산자와 망자를 치유하는 무당(巫堂)의 역할이다.

끼안의 악몽과 글쓰기, 프엉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베트남의 시공간를 초월해 한국, 캄보디아, 중국, 홍콩 등 전쟁의 내전을 겪었거나 오늘날 전쟁의 신호음과 민주 항쟁과 함성 소리가 들리는 국가로 이동된다. 배우가 부르는 단소의 슬픈 멜로디는 더 한국적이다. 무대는 평화로운 한 마을을 그려내는데 무대 공간 4면은 배우들은 장면(에피소드)에 따라 역할을 바꾸고 관객들 사이로 배우들은 자유로운 등·퇴장을 반복하고 관객들은 역할 인물로 분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오딘의 <슬픔과 씨앗>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의 서사를 체험하게 된다.

꽃을 파는 사람, 시를 낭독하는 학생, 거리를 청소하는 아줌마, 자전거 곡예를 하는 사람, 음식을 요리하는 조리사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이 뒤섞여 있는 평온한 마을의 풍경을 비추고 배우는 한국말을 섞어가며 장면을 설명한다.

무대는 전쟁터의 죽음과 망자의 혼으로 배회하는 끼안의 악몽이 현재와 과거로 이동되는데, 연출은 이 장면에서 끼안이 서술하는 작가의 공간에 나무 의자가 놓여진다. 전사자의 유골이 넘쳐 나는 전쟁터는 대형 그물망으로 무대를 두르고 무대를 채우는 검붉은 씨앗은 망자의 혼령과 무덤이 된다. 끼안에게 평화는 살아갈 수 없는 죽음과 악몽의 연속이다.

유해 발굴 당시 녹 쓴 쇠 그릇은 한국 사회 유품이 되고 군 수송 기차안에서 잔혹한 폭력과 프엉의 참혹함은 배우들 몸의 언어로 연주된다. 몸을 자유로운 감정의 리듬과 선으로 곡예를 하며 뒤섞이는 두 배우의 몸은 고이혼 병사들의 타락한 욕망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프엉의 내면을 치유하고자 하는 끼안의 처절한 욕망으로 표현된다.

누군가 죽어야 살 수 있는 전쟁의 전선에서 삶의 존재를 잊고자 하는 홍마초(환각) 장면과 죽음이 무감 하게 공존하는 전쟁터 카드 놀이들은 애절한 슬픔의 바이올린 소리로 교차되어 장면이 그려지는데 이러한 전선의 행위는 죽음의 공포를 초월 하고자 하는 일탈행위다.

전쟁터 병사들의 타락한 인간의 욕망은 굶주린 개처럼 형상화 되고 병사의 총은 계엄군의 잔혹한 총으로 투사된다. 적군에서 생포된 병사(여자)는 적의 총을 마주한 채 애국가를 한국말로 부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 윤상원과 박기순 열사(烈士), <금희의 오월> 이금희, 민주 열사 이정연, 미성년의 나이로 전남도청 집단 발포로 계엄군의 총탄으로 참혹하게 희생된 이성자 열사의 이름을 호명한다. 바오닌의 전쟁터 총탄은 5·18 광주항쟁의 비참한 죽음의 그날을 타격한다.

연출은 전쟁의 비극과 항쟁을 위로하는 진지한 놀이의 서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정서적 체험이 될 수 있도록 감정이입을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사용하는데 (국경을 초월한 음악, 노래, 곡예, DJ라디오 방송, 경계를 초월한 낮선 풍경들, 사진과 영상)으로 환기시킨다.

한 미군 병사가 DJ한테 엘 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넌 단지 그냥 개일 뿐이야>(ypu ain’t nothin’ but a Hound dog)를 틀어 달라고 하고 연주되는 엘비스 노래로 변주되는 씨앗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죽음의 잔해들로 넘쳐 나는 죽음의 평화이며 참혹한 학살의 가해자는 잔혹하고 야만적인 죽음을 집어 삼키는 개로 상징된다. 씨앗은 망자의 혼이다.

이어 무대는 아시아 도시들이 죽음으로 불타는 장면, 승려의 분신, 광주의 항쟁, 홍콩 새 보안법 반대 시위 등을 영상으로 내보낸다. 뉴스를 들은 한 시민(배우)은 몸으로 곡예퍼포먼스를 연출하는데 인간(시민)의 불안함과 공포, 죽음을 마주하는 상실감, 참혹한 시대의 절망과 동시대의 우울을 표현한다.

이어 무대는 전쟁터의 잔혹한 현장과 죽음의 축제를 즐기는 환희로 채워지고 죽음과 삶, 잔혹한 전쟁터, 프엉의 비극은 순수한 영혼이 유린되고 박탈당한 죽은 자로 표상된다. 이 장면에서 씨앗은 프엉의 무덤으로, 파괴된 한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의식 행위의 오브제로 변주되면서 프엉의 죽음은 5·18 광주항쟁으로 죽음의 현장과 열사의 죽음들로 환치 되는 상징성을 투사한다.

극중 인물 거리의 청소부는 또렷한 한국말로 “정연아 이제 괜찮아.이제 가자”하며 유린당하며 죽은 망자를 혼령을 무당으로써 씨앗의 무덤에서 깨운다,

이어 무대는 베토벤의 월광소나타가 아코디언과 피아노 연주로 이어지고 끼안은 기록하기 위한 사투를 한다. 연출은 구겨진 종이로 씨앗을 떨어트리는 미장센으로 고뇌를 그리는데 씨앗은 끼안의 무의식을 감싸는 죽음과 악몽들의 잔해이며 무대 공간 바닥에 흩어져 있는 씨앗은 태극기로 변형된다. 밥 딥런의 <전쟁의 달인들은> 죽음의 축제를 즐기는 함성이 되고,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며 배우들은 태권도 발차기를 하며 씨앗으로 그려진 태극기를 향해 한국 사회를 투영하고 거리의 청소부는 태극기를 지우는 행위를 함으로써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잔혹한 죽음의 시간과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비춘다.

마지막 무대는 죽음과 비극의 무거움 사이로 끼안의 악몽으로 기억되는 단어들(죽음, 전쟁, 27대대, 머리, 유골, 잔혹한 죽음들)을 랩으로 호명하며 무대를 환기시키며 이어 특별한 장면이 구현되는데 프엉으로 분한 배우는 순수의 영혼으로 돌아기 위한 욕망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씨앗은 물로 변주되어 배우의 신체(몸)는 프엉의 영혼을 담아 절망과 슬픔으로 연주되는 탁월한 연기로 표현한다.

그 장면 사이로 버스에 올라 계엄군과 대처하는 광주의 그날은 한 장의 사진으로 삽입되고 배우들과 관객들이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씨앗은 국악 타악기 장구를 향해 던져지며 망자의 넋과 혼령을 달래는 의식행위가 된다.

청소년, 어린이, 성인 관객들은 씨앗의 무덤에 누워 희생된 망자의 죽음을 체험하고 이어 관객들과 배우들은 무대 밖으로 퇴장하면서 한국전쟁 때 유틀란디아호 병원선과 의료 인력을 파견한 덴마크 시민으로 돌아와 한국전쟁, 5·18 광주항쟁 등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역사의 죽음, 오늘날 여전히 치유 되지 않고 있는 망각되어 가는 죽음을 체험한다. 배우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영상은 5월의 광주의 그날을 비추며 하얀 풍선에(오늘 밤에도 별이 스치운다)라는 글씨를 적어 실을 매달아 날려 보낸다. 풍선은 망자의 혼을 달래는 오딘극단과 시민들이 한국 사회로 보내는 치유의 씻김행위다.


진지한 놀이의 서사

NTL(Nordisk Teaterlaboratorium-Odin teatret, 이하 오딘극단)의 배우들과 공동 연출(카이 브레홀트, 이동일)이 동시대로 재해석한 <슬픔의 씨앗>은 전쟁과 광주의 비극, 그리고 여전히 포탄의 잔재들이 박혀있거나 잔혹한 전쟁과 항쟁의 역사를 체험하는 광활한 비극의 놀이터가 된다.

이 놀이터는 오딘극단의 특별한 연극 구현 방식을 통해 역사와 현재의 아픔을 공감하고 감정을 투영하면서도 시공간을 돌리는 낫선 효과를 통해 잔혹한 죽음과, 5·18 광주항쟁을 비극의 놀이로 구현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연출은 감정이입을 차단하면서도 한국전쟁 때 병원선 한 척을 한국전쟁 때 덴마크에서 보낸 시민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광주의 참혹한 역사와 동시대의 비극을 공감할 수 있는 ‘진지한 놀이의 서사’로 한국 사회 역사의 잔혹한 죽음을 은유하는 ‘치유의 서사’로 구현했다.

배우의 곡예와 서커스는 단순한 연기 표현 방식의 연출 의도를 넘어 배우의 자유로운 표현의 선율은 동시대의 비극과 죽음의 슬픔을 안고 있는 멜로디이고, 서사이며 시극(詩劇)의 언어가 된다.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은 오딘 극단에 의해 (프엉의 비극, 끼안의 악몽, 고이혼과 죽음의 전선)을 제외 하고는 해체되고 재 해석된 <슬픔과 씨앗>은 베트남 전쟁의 시공간을 초월해 한국 사회로 광주의 5·18항쟁의 그날로, 죽음과 비극을 포획해 항쟁, 전쟁과 죽음도 치유되지 않는 동시대를 연결한다.

여전히 잔혹한 역사와 산 자와 망자의 영혼이 치유되지 않고 있는 현재이다. 비극의 진지한 놀이 행위는 씨앗을 비롯한 다양한 오브제로 활용되고 비극적이며 진지한 놀이 행위는 관객들에게 연극적 체험의 의식 행위로 살아난다. 배우들의 동양적인 의상은 끼안의 악몽을 배회하는 몽환적인 이미지로 투영되어 역사의 비극과 광주항쟁의 죽음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오늘을 타격한다. 특히 오딘극단의 표현 방식과 타악 연주, 장구, 아코디언, 피아노, 태권도, 그리고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배우의 곡예는 인물의 정서와 감정을 신체악보의 멜로디로, 연주되는 경이로운 표현으로 구현했다.


◇미니인터뷰(ACC 박주리 사무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5주년이 됐다. 기획제작극장으로 역할은?

올해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나는 광주 없었다>(연출 고선웅), <시간을 칠하는 사람>(연출 윤시중)를 선보였다. 특히,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광주의 그날을 경험하지 못한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업이 됐다. 2018년 ‘광주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스토리 공모 사업을 했는데, 선정된 ‘시간을 짖는 건축가’(송재형 作)을 희곡으로 쓰고 연극으로 제작된 <시간을 칠하는 사람>은 독특한 무대 메커니즘과 은유적 표현으로 호평을 받았다.

-바오 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을 ACC가 국제 공동 창·제작을 한 특별한 이유는?

ACC는 아시아문학을 소재로 해외 예술 단체와 한국 예술단체가 교류, 협업을 통해 공연을 개발하고 있다. 2018년 제2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작인 <전쟁의 슬픔>은 ACC아시아 문학페스티벌의 결과로 문학을 연극 언어로 재창작 할 수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츠 개발의 선순환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워크숍을 마련하면서 작품 제작을 하게 됐다. 코로나19 상황에도 내년에는 세계 초연을 목표로 무대에서 공연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나의 원작 소설을 연극으로 구현해 내는 각 나라의 특별한 문화적 색깔로 창작하는 게 목표다. 실험적이며 동시대가 공감 할 수 있는 연극 언어로 극단 민들레와 유제니오 바르바가 이끌고 있는 NTL극단이 협업을 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ACC예술극장은 어떤 역할을 하나?

국제 공동창제작 공연 사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연극 분야에서 음악, 무용, 다원예술, 융합예술로 장르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공연유통 뿐만 아니라 방송콘텐츠로도 기획하고 작품을 개발시켜 나갈 생각이다. 앞으로 작품 주제와 아시아연극 및 공연 예술의 육성을 연극학과 인류학 등 시대에 필요한 담론형성에도 노력할 생각이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ACC 사업으로 세계에서 존경 받는 예술가, 문학가가 배출되길 희망하고 이는 ACC예술극장 사업프로그램의 취지이기도 하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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