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지인 인도네시아에서 같은 추축국인 독일 여성들마저 성노예로 삼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네덜란드의 탐사보도 언론인 그리셀다 몰레만스는 11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독일 여성들을 성폭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네덜란드전쟁기록원(NIOD)과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등에서 찾은 자료를 근거로 들었다.
1932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연구해 온 몰레만스는 올해 초 관련 사실을 다룬 책 ‘일생의 전쟁(A LIFETIME OF WAR)’을 출간하기도 했다.
몰레만스에 따르면 전쟁 당시인 1942년 3월 초부터 네덜란드령인 인도네시아의 자바섬 동부 블로라 지역에서 일본군 48부대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독일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30명의 여성과 소녀들이 한 건물로 옮겨졌고, 이후 이 건물은 일본군 위안소 역할을 했다.
특히 배우자 및 자녀 앞에서 독일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이 이뤄졌고, 하루 19차례 성폭행당한 여성도 있었다고 한다. 몰레만스는 “1942년 3∼4월에 독일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이 쉬지 않고 이뤄졌다”고 말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 있던 독일 여성들은 “교사였거나 농장주와 석유 기술자의 아내들이었다”고 몰레만스는 전했다. 독일 여성들은 동맹국인 독일 정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을 우려한 장교의 개입으로 사실상의 위안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이 독일에 알려지지 않은 데 대해선 “네덜란드전쟁기록원에 있는 증거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몰레만스는 네덜란드전쟁기록원에 있는 증거 자료가 2026년까지 비공개로 돼 있는데, 변호사를 통해 관련 서류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한 데 이어 네덜란드 여성 얀 루프 오헤른이 피해 사실을 밝히자 네덜란드 정부가 어쩔 수 없이 전 식민지에서의 전쟁 범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면서 1994년에 공개된 보고서 내용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몰레만스는 “비공개 문서에 확실히 65명, 아마도 300명의 여성이 강제로 위안부가 됐다는 진술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 문서가 비공개된 데 대해선 “네덜란드 정부가 희생자들의 전쟁연금 요구를 두려워하고, 일본과의 무역 관계 문제도 있었다. 모두 돈과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몰레만스는 “나의 결론은 2차대전 당시 인도네시아에서만 7만명이 일본군의 성폭력에 희생됐다는 것”이라며 “소녀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인도네시아에서 성폭행 피해를 본 여성들은 네덜란드 본토 출신, 인도네시아 및 파퓨아뉴기니 현지 출신, 미국인, 영국인, 독일인, 한국인, 대만인”이라고 전했다.
몰레만스는 최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 논란에 대해 “나는 독일인뿐만 아니라 35개국에서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면서 “적어도 50만명의 희생자들이 있었는데, 한국인과 중국인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독일을 포함해 더 많은 국가의 여성들에 대해 전쟁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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