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부산행 열차를 덮친 의문의 좀비 바이러스. 곳곳에서 창궐한 좀비들을 피해 가까스로 탈출했던 정석(강동원)은 다시 반도에 뛰어들기로 한다. 거액의 달러가 든 트럭을 가로채 밑바닥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반도는 이미 좀비 떼가 득실거리는 생지옥. 4년 전보다 더 빠르고 기괴해진 좀비와 631부대원들이 정석 일행을 습격한다. 이들을 과연 더 거대해진 재앙에 맞서 반도를 탈출할 수 있을까.
연상호 감독의 ‘반도’가 15일 개봉한다. 총제작비 190억원 규모 블록버스터에 칸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 선정, K좀비 시대를 연 1000만 영화 ‘부산행’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까지. 여름 성수기 대작 첫 주자로 나서는 영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한 극장을 되살릴 구원투수로 꼽힌다. 기자들로 만원을 이룬 지난 9일 언론배급시사에서 영화는 액션과 스토리를 함께 잡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13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연 감독은 “‘부산행’과 마찬가지로 큰 스크린을 통해 박진감을 전달하는 ‘체험적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영화를 잘 안 보시는 내 어머니도 재밌게 보실만하신 작품을 추구했다. 오락적 요소와 드라마를 함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반도’가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에 대한 모티브는 ‘부산행’ 촬영 장소를 찾아다니던 중 만난 폐기차역들에서 비롯됐다. 황량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과 오목교 부근의 생경한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다. 영화 ‘매드맥스’를 떠오르게 하는 20분가량의 카체이싱도 백미다. “‘부산행’ 열차 액션을 넘을 야심 찬” 이 추격전은 100% CG 작업을 통해 생생하게 구현됐다.
극을 근저에서 튼튼히 받치는 건 강동원 이정현 등 주·조연 배우들이다. 연 감독은 “강동원 배우는 카메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 컨트롤이 뛰어났다”며 “이정현 배우는 촬영에 들어가면 완전히 딴사람이 되더라”며 치켜세웠다.
작품성에 중점을 두는 칸 영화제 초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도’를 그저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부산행’에서 좀비로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성을 은유했던 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631부대원들을 통해 인간을 고찰한다. 631부대원들은 대재앙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좀비와 생존자를 닥치는 대로 사냥하는 악랄한 조직이다. 연 감독은 “내 관심사는 좀비의 그로테스크함보다는 좀비를 마주한 인간 군상의 변화”라며 “631부대는 자극과 쾌락만을 좇는다는 점에서 ‘변종 좀비’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반도’는 마동석 공유 등 남성 액션 중심의 ‘부산행’과 달리 여성 액션에 초점을 맞췄다. 트럭을 몰고 다니며 좀비를 날려버리는 소녀 준이(이레)가 특히 돋보인다. 준이는 연 감독이 “마동석 배우의 맨손 사투를 능가할 캐릭터로 애정을 쏟은” 인물이다.
연 감독은 멀티 플랫폼 시대를 자유로이 활보하는 이야기꾼으로 유명하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을 선보인 애니메이터 출신의 연 감독은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웹툰 ‘지옥’을 만화가 최규석 작가와 손잡고 연재 중이다. 지난 2월 드라마 작가 데뷔작 tvN ‘방법’으로도 호평받은 그는 영화와 드라마로 포맷을 바꿔가며 시즌1 뒷얘기를 풀어내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서울역’ ‘부산행’의 세계관을 잇는 ‘반도’의 뒷이야기도 존재할까. ‘열차’와 ‘반도’에 이어 다음은 ‘세계’로 배경을 확장할 것이냐는 물음에 연 감독은 “오히려 반도를 다루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종말 이후에 반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겠어요. 국회의사당을 누군가 점령하고 있을 수도 있고, 기이한 광신도들이 생겨났을 수도 있죠. 반도만 해도 무궁무진한 세계관입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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