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요”[이슈&탐사]

Է:2020-06-11 10:35
:2020-06-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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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⑦홀로 서는 그들… 우주에서 별빛 쫓듯 살아간다

눈이 보이지 않고 난청이 심한 조영찬(49)씨는 현재 나사렛대 대학원 신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조영찬씨 제공.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난청이 심한 조영찬(49)씨는 종일 공부만 한다. 나사렛대 대학원 신학과 박사 과정에 있는 그는 얼마 전 전공 책 100권을 읽었다. 논문 작성 전 종합고사 1차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다. 눈이 보이지 않으므로 점자정보단말기에 올라오는 점자를 손으로 만져 읽었다. 아내 김순호(57)씨는 “(남편이) 책을 읽으려면 점자단말기로 읽을 수 있도록 모두 파일 작업을 해야 해요. 그걸 한 줄씩 읽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영찬씨는 박사 과정 이전에 석사 학위를 2개나 땄다. 각각 신학, 기독교상담학 전공이었는데 5년이 걸렸다. 이후 3년간 박사 학위에 필요한 학점을 전부 취득했다. 그는 왜 이렇게 공부만 할까.
영찬씨가 자택에서 점자단말기로 공부하고 있는 모습. 조영찬씨 제공.

영찬씨는 취재팀과 메신저 인터뷰에서 “답답해서 공부한다”고 말했다. “타인과 대화하지 못하고 주변 상황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쌓이다 보니 ‘알고 싶다’는 욕구가 농축되면서 공부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된 것 같습니다.”

영찬씨는 자신을 ‘우주인’에 비유한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현실이 어두컴컴하고 적막한 우주 같다는 이유다. 이런 그에게 공부는 ‘별빛’이다. “우주에는 영롱한 별빛도 있죠. 제 안에 있는 꿈이라는 별빛을 따라 우주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취재팀이 만난 다른 데프블라인드(Deaf-Blind)도 저마다 별빛이 있었다. 시력이 없고 청력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철성(54)씨는 마라토너라는 별빛을 쫓아가고 있다. 철성씨는 처음에는 단거리 선수로 활동했다.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육상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 만큼 소질이 있었다.

시청각장애인 이철성(오른쪽)씨가 8일 서울 남산에서 가이드러너와 함께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다. 이씨는 2010년 풀코스 마라톤에서 2시간59분21초를 기록하며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게 '꿈의 기록'으로 불리는 서브3(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를 이뤄냈다. 윤성호 기자

나이가 들어 기록이 늦춰지자 주변의 권유로 마라톤으로 전향했는데 재능이 빛을 발했다. 2010년 풀코스 42.195㎞에서 2시간59분21초를 기록하며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겐 ‘꿈의 기록’으로 불리는 서브 3(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을 이뤄냈다. 대장암 수술 이후로는 예전만큼 기록이 나오진 않지만 지금도 1주일에 3번씩 서울 남산에서 연습한다. “평소에는 감옥 아닌 감옥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죠. 다른 사람 얼굴을 볼 수 있나, 책을 읽을 수 있나. 마라톤 할 때만큼은 공간이 자유롭게 트이는 느낌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아요.”

시력이 매우 낮고 난청이 있는 차승우(56)씨에게도 마라톤이 삶의 전부다. 그는 풀코스만 300차례 이상 달렸다. 지난달 19일 방문한 그의 집에는 마라톤 대회에서 딴 메달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승우씨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달릴 수 있다’는 문구를 등 뒤에 붙이고 경기도 동두천에서 울산까지 뛴 적도 있다. ‘마라톤이 왜 좋냐’는 물음에 그는 “완주할 때 느낌이 좋아요. 뛸 때는 잘 못 느끼는데 풀코스를 들어올 때 ‘또 완주했구나’ 너무 기분이 좋아”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마라톤 인생이 20년을 맞는다.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려고 후원을 받기로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안 된다고 연락이 왔어요. 다시 후원해줄 업체를 찾고 있습니다.”

시청각장애인 차승우씨가 자신의 마라톤화를 들고 있다. 차씨는 풀코스 마라톤만 300회 이상 달린 시청각장애인이다. 2021년은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지 20년 되는 해다. 차승우씨 제공.

청력을 상실하고 시력만 약간 남은 박관찬(33)씨는 장애인권 월간지 ‘함께걸음’에서 기자로 일하며 자신과 같은 시청각장애인의 목소리를 알린다. 노트북 글자 크기를 80포인트 이상 높여 정보를 검색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그는 올해부터 대구대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기자에게 제일 중요한 게 정보인데 그런 게 부족하니까. 조금이라도 보완하려면 지식을 많이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는 국민일보나 (제가 글을 싣고 있는) 주간경향 같은 언론사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습니다.”

박관찬씨가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장애인권 월간지 ‘함께걸음’을 들고 있다. 관찬씨는 함께걸음의 기자로 일하며 자신과 같은 시청각장애인의 목소리를 알린다. 방극렬 기자

데프블라인드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연세대에 입학한 김하선(20)씨는 장애인 교육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하선씨는 장애인 교육 분야에 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장애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현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적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목소리 낼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렇지만 그에게는 현실적 고민이 있다.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장애 특성으로 소통이 어려워서다. “특히 ‘일 대 다’의 소통이 어려워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요. 정책 전문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저 같은 장애인이 행정고시를 통과한 사례가 없다고 들어서 ‘내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영찬씨도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한국에서는 저 같은 최중증 시청각장애인이 활동한 선례가 없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계속 미지수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시청각장애인이나 현재 한국의 제도권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좀 더 본질에 가까운 신앙을 구현할 방안을 모색해보고 싶습니다.”

시청각장애인 자조단체 '손잡다' 회원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동작구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모임을 갖고 촉수화 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손잡다는 시청각장애인인 조원석(27) 대표가 2017년 초 시청각장애인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자조단체다. 시청각장애인 대부분이 의사소통을 ‘손’으로 한다는 점, 시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회원들과 손잡고 나아간다는 점을 상징하는 단체명이다. 최현규 기자

국내 시청각장애인들은 수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자조 단체 ‘손잡다’는 일주일에 한 차례씩 모임을 연다. 서로의 소식을 나누고 점자, 촉수화 교육을 한다. 시각장애에 난청을 가진 조원석(27) 대표가 2017년 초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자는 차원에서 단체를 만들었다. 3명으로 시작된 모임은 어느덧 20여명으로 늘었다. 시청각장애인 당사자인 ‘헬렌 켈러’ 회원이 15명, 이들을 지원하는 ‘설리번’ 회원이 10명이다. 손잡다는 최근 시청각장애인의 일자리 프로그램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서울 영락농인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농맹인선교회 ‘손끝세’(손끝으로 여는 세상)도 있다. 손끝세는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에 모인다. 농맹인 회원이 17명, 촉수화 통역과 이동을 돕는 ‘손세우미’ 회원이 35명이다. 참가자들은 “대화를 할 수 있고 정보도 얻을 수도 있으며 여행도 갈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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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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