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답사를 하다 보면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 성벽의 남쪽을 지나 시온산을 통과하게 된다. 산봉우리의 남동쪽 기슭에 회색 지붕의 커다란 교회가 언제나 눈에 띈다. 지붕 위에 황금색 닭이 세워져 있어 웬만한 눈치가 있는 사람이면 이 기념교회가 베드로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이 사복음서(마26:69-75, 막14:66-72, 눅22:56-62, 요8:15-27)에 기록된 사건을 기념하는 베드로 통곡기념교회이다.
이 기념교회는 프랑스 계통의 성모승천 남자수도회(아숨시옹)에 의해서 1925년 세워져 오늘날까지 관리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찾아가는 베드로 통곡기념교회는 가야바 대제사장의 집터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가야바 대제사장 집터의 위치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숨시옹 수도회에서 처음 이곳에 교회를 세울 때 이 지역에 대한 발굴 작업을 시행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로마 시대 및 비잔틴 시대의 유물들(집터, 마구간, 물 저장 탱크)이 출토되어 간접적인 증거를 얻기도 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곳이 가야바 대제사장의 집터였다고 확증할 결정적인 증거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자들은 가야바 대제사장의 집터는 시온산 정상 부근(아르메니아 정교회 소속 공동묘지와 구세주 성전, 그리고 아르메니아 순교자들의 기념 성당이 자리한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가야바 대제사장과 같은 권세가들이 시온산 주변에 살았다는 것은 기록이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특정 지역을 대제사장 집터였다고 단정하는 일은 결정적인 단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성지 답사객들과 함께 현장에서 이와 같은 사실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험상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기념교회가 성경 사건의 현장 위에 세워졌다고 확신하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런 설명은 자칫 실망감을 줄 뿐만 아니라 성지답사 자체의 가치마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동을 주기 위해서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가 성지 답사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성경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착각을 바로잡고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둔갑되는 잘못을 허락하지 않기 위함이 아닌가? 그래서 성지순례가 아닌 성지답사가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일거에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 기념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기념한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의 내용을 기억하고,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교훈으로 삼는 교육현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베드로 통곡기념교회 역시 기념교회로서는 전혀 손색이 없다.
이 기념교회에는 그때 그 사건을 생각하고 음미할 수 있는 것들이 이곳저곳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교회 내부 벽면과 천정을 온통 장식하고 있는 모자이크 그림들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손이 묶인 채 가야바 집으로 들어서며 머리를 돌려 멀찍이 서 있는 베드로를 바라보는 예수님을 그린 모자이크다. 순간 어떠한 생각들이 이 둘 사이에 오갔는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다.
기념교회 내부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돌을 파서 만든 감옥이 나타난다. 우물과 같이 깊은 웅덩이로 만들어져 중죄인을 가두는 곳이 있는가 하면, 손과 발목에 쇠고랑을 채워 바위 구멍에 매어 놓았던 감옥도 있다. 군병에 끌려온 예수님께서 다음날 빌라도 앞에 서기까지 하룻밤을 이와 같은 감옥에서 보내셨으리라 생각하니 모두가 숙연해진다.
지하 감옥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발굴해 놓은 집터들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진 유물들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주목하는 것이 하나 있다. 시온산에서 실로암을 연결하는 로마 시대의 돌계단이다. 그 일부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 베드로 통곡기념교회 옆을 지나고 있다. 이 돌계단이야말로 그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적이다.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을 향하던 예수님의 비장함이 묻어있는 돌계단이다.
이 돌계단 옆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 로마 군병, 그리고 한 어린아이, 그리고 목 놓아 울고 있는 사람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가야바 대제사장의 뜰에서 벌어진 한 사람의 처절한 패배를 암시해주는 이 조각상 앞에 서는 순간 머릿속엔 또 다른 그림들이 마구 떠오른다. 그날 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유대인들이 초법적인 광란의 밤을 보냈던 모습, 그 앞에서 오직 침묵과 진실만을 말했던 예수님의 모습 말이다.
동상 앞에서 베드로가 아니라 더 다양한 모양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나를 보게 되고, 세상을 보게 된다. 닭 울음소리에 통곡하고 가슴을 쥐어짜는 베드로가 아니라, 닭 울음소리에 귀가 먹고 마음이 무감각해져 버린 나를 발견하고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진실보다 온갖 변명으로 분주한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김상목 성경현장연구소장(국민일보 성지순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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