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명의 희생자를 낸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건설현장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경찰 수사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은 “분향소 밖을 나서면 우리만 빼고 다른 세계가 열린다. 할 수 있는 건 기다림 뿐”이라며 고립감을 호소한다.
대형 참사는 관련자 처벌부터 손해배상까지 기본적으로 수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참사는 대중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지워지지만 유가족의 부담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된다. 중대 산업재해일수록 진상규명까지 수많은 장애물이 존재하고 민사 소송에선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 험난한 법적 다툼이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유가족 소송 대리인을 맡았던 홍지백 변호사(법무법인 나눔)는 7일 “형사소송은 처벌 당사자가 뚜렷하고 사실 관계도 복잡하지 않아 1년 반이면 마무리된다”면서도 “수사 단계에서 진상규명이 늦어지면 상황은 완전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천 화재 참사는 ‘첫 단추’인 수사 단계부터 난항을 겪는 대표 사례다. 법조계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수사 속도가 더디다.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는 사건 성격상 이번 이천 참사와 자주 비교되지만 수사 속도는 완전히 달랐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당시 사고는 발발 일주일 만에 중간 수사 결과가 발표돼 관련자가 구속됐고, 유족과 회사 간 배상금 협상도 이뤄졌다.
사전에 배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형사 처벌이 이뤄지더라도 민사 소송으로 이어진다. 더욱 기나긴 싸움이 유가족을 기다리는 것이다. 2017년 12월에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1년 반 만인 2019년 5월 건물주에게 징역 7년형이 내려졌다. 문제는 민사 소송이었다. 유가족 80명은 지난 2월 건물주를 상대로 낸 11억2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건물주는 배상 능력이 없었다. 결국 유가족 측은 충북도를 상대로 책임을 묻기 위해 추가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건 마무리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된 사례에선 수사부터 배상까지 국가와 사고업체의 적극적인 의지가 돋보인다. 2014년 5월 경기도 일산 고양버스터미널 화재 참사는 9명의 희생자를 냈다. 터미널 지하에서 용접 공사를 하다 불이 난 것이 원인이었는데 당시 수시로 비공식 브리핑을 할 정도로 유가족과 수사기관의 소통이 원활했다고 한다. 업체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에 나서 화재 발생 3주 만에 유가족과 합의를 봤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볼 때 유가족과 사고업체 간 정보 격차가 수사 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목한다. 경찰 조사 중 당사자 간의 진술이 엇갈릴수록 사건이 해결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대 재해일 경우 현장감식에 나선 전문가들마다 사고 원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민사소송은 이해관계자가 많다는 점이 부담이 된다. 유가족마다 청구하는 금액이 다르기 때문에 일단 소송에 나서게 되면 법원은 모든 사례를 검토해봐야 한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의 경우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4년이 지난 2018년 7월에야 1심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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