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기록된 땅, ‘성지’ 가운데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가슴 속에 또렷이 각인된 건물 하나를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성지에서 보았던 수많은 기념교회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눈을 감고 예루살렘을 생각해도 또렷이 떠오르는 것은 성전산에 세워진 이슬람의 황금사원이다. 황금사원은 언제나 회색빛으로 젖어있는 예루살렘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이것이 예루살렘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황금사원이 더욱더 깊고 또렷이 각인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황금사원이 세워진 장소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서 모두 성지라고 말하는 곳이다. 유일신을 믿는 3대 종교의 성지에 예루살렘의 랜드마크처럼 된 황금사원을 세운 쪽은 무슬림이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곳을 성지로 여기는 이유는 창세기 22장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받치려 했던 모리아산이기 때문이다(창22:2). 해발 734m의 모리아 산에 바위(길이 약 18m, 폭 13m, 높이 1.25~2m)가 있는데 이곳이 번제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솔로몬 왕이 처음으로 이곳에 성전을 세웠다(대하3:1). 그리고 주전 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이 산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 여겨졌다(왕하25:8-9, 대하36:19).
그 이후 주전 20년경 헤롯은 성전축대를 확장하고, 성전을 증축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감행했다. 이때 완성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예루살렘에서 보게 되는 서쪽 490m, 동쪽 474m, 남쪽 283m, 북쪽 321m의 거대한 축대이다. 이때 만들어진 성전의 모습을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성전의 겉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그저 놀라움만 자아낸다. 화려한 금관으로 두루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햇빛이 성전을 내리비추는 날에는 불빛처럼 반사되어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이곳을 옛 이름 ‘모리아산’이라고 부르기보다 ‘성전산’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헤롯이 만든 성전 뜰에서 사람들을 속이는 장사꾼들을 내쫓았으며,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진노하셨고, ‘포도원 농부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를 가르치셨다(마21-22장). 그러니 유대교와 예수님의 사역현장을 찾아 기념교회를 세웠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이곳이야말로 성지 가운데 성지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성전산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유대교 성전이나 기독교의 기념교회가 아니라, 황금색으로 단장한 이슬람의 사원이다. 성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이후(4~6세기를 비잔틴 시대라고 부른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된 장소에 기념교회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과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기념교회를 지키고 유지해 왔다. 그런데 이 중요한 성전산에 이슬람의 사원이 우뚝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 비잔틴 시대 콘스탄틴(Constantine) 황제는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하여 베들레헴에 ‘예수님 탄생기념교회’, 골고다에 ‘예수님 무덤교회’ 그리고 감람산에 ‘예수님 승천기념교회’를 세웠다. 그중에서도 예수님 무덤교회는 그 길이가 150m나 되는 거대한 교회로 예루살렘의 상징물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성전산은 기독교인들의 관심 밖이었고 폐허로 방치되었다. 이 사실이 메드바 모자이크 지도(요르단 메드바, 성 조지 교회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 형태의 지도, 주후 6세기)에서 확인되었다.
왜냐하면 초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결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으며, 또한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마23:38, 눅19:41-44). 그래서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서 폐허가 된 성전산을 방치해 두고, 한편으로는 예수님 말씀이 성취된 현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을 박해하는 증거로 이용한 것이다.
주후 638년 이슬람의 칼리프 오마르(Caliph Omar)가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그들에게 이곳을 성역화하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슬람 사람들은 마호메트가 ‘부라크(번갯불)’라는 희귀한 말(여자 얼굴을 한 말로, 양어깨에 날개가 달렸고, 공작의 꼬리를 지녔다고 전해진다)을 타고 가브리엘 대천사의 안내를 받아 메카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와서 황금사원 중앙에 있는 바위에서 승천했다고 믿고 있다(코란 제17장). 바위 표면에 움푹 팬 곳은 마호메트의 발자국과 가브리엘 대천사의 손자국이라고 믿는다. 또한 최후의 심판 때, 이 바위에서 심판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며, 알라신은 바로 이 바위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믿고 이곳을 성역화했다. 이러한 전설과 함께 우마야드 칼리프 아브드 알-말릭(Umayyad caliph abd al-Malik)은 주후 687~691년 이곳에 사원을 완성했다. 그리고 메카, 메디나와 함께 예루살렘을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십자군 시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회복했을 때, 이곳을 개조하여 주님의 교회(Temple of the Lord)라고 이름 붙였다(주후1099). 그러나 이곳은 다시 1187년 이슬람을 재통일한 살라딘(Saladin)에 의해 점령된 후, 약 700년 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접근금지 구역이 되었다. 그리고 납으로 도금된 사원의 지붕을 1964년 알루미늄과 청동의 합금으로 보수하여 황금사원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90년대 초 지붕은 다시 18금으로 갈아입었다.
사도 바울과 성지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제롬 머피 오코너에 따르면 7세기 초 이슬람 사람들이 성전산을 성역화하고 처음으로 이곳에 사원을 세운 것은 종교적으로 치밀히 계산된 행위였다.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의 성지에, 이슬람 사원을 세워 유대교의 여호와보다, 기독교의 하나님보다 이슬람의 알라가 더 위대하다고 선포한 것이다. 동시에 유대교와 기독교로부터 박해를 받아온 이슬람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로 만들어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게 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1964년 사원의 지붕을 황금색으로 단장한 이후로는 예루살렘을 다녀온 사람들의 가슴에 말없이 황금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그러니 이슬람 사람들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황금사원이 박힌 1달러짜리 파노라마 사진을 한국에 돌아가 선물로 주려고 수십 장씩 구입하기도 하고, 황금사원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한다. 우리가 오코너의 말을 한 번쯤은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성전산(Temple Mount)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드리려 했던 장소(창22:2)
솔로몬이 모리아 산에 성전을 건축함(대하3:1)
하나님이 다윗에게 나타나심(대상21:15-22:1)
예루살렘 성전(Jerusalem Temple)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두실 장소(신12:11, 왕상9:3, 왕상9:7)
바빌론에 의해서 파괴됨(왕하25:8-9, 대하36:19)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마23:38, 눅19:41-44)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심(마21:23)
요세푸스(37~100)
제사장 가문인 마타디아스와 왕족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대 땅을 로마가 점령하고 있을 시기인 37년경에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그는 역사가이자 동시에 사제로, 군인으로, 학자로 활동했다. 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유대 군을 이끌다가 로마군의 포로가 된 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 시민이 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유대전쟁사와 유대고대사 등이 있다.
살라딘( 1138~1193)
쿠르드 무슬림으로서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시조로, 1187년에 십자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으며, 제3차 십자군도 격퇴하여 세력을 확보하였다. 재위 기간은 1169~1193년이다.
김상목 성경현장연구소장(국민일보 성지순례 자문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